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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Sep 24. 2024

이탈리아 소박한 음식, 폴렌타

이탈리아 북부 음식 옥수수죽 폴렌타(Polenta)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르가모(Bergamo)로 향한다. 이곳은 롬바르디 지역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고산 도시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저 멀리 알프스 산맥의 시작이 보인다. 16세기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베르가모 구 시가지 광장 옆 숙소를 구했다. 발코니가 있어 그곳에 앉으면 광장을 지나가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오후, 전통 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날씨지만 남자 무희들은 짐승의 털옷을 입은 목동의 모습이고, 여성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일하는 여성 복장이다. 문득 관광 문화가 아닌 베르가모의  모습을 느껴보고 싶다.

전통 춤 공연 모습 by 세반하별

전통 레스토랑을 찾기 쉽지 않았다. 대부분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팔고 있다. 한참을 돌고 돌아 오래 운영되어 온 분위기가 물씬 나는 레스토랑에 찾아 들어간다.


돌을 쌓아 올린 건물로, 테이블마다 옛스러운 붉은 식탁보가 덮여 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장식물들이 벽 여기저기 걸려 있다.


대를 이어 음식점을 운영하는 30대 남짓한 여인은 손님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메뉴 추천을 부탁한다. 옥수수를 부드럽게 갈아 만든 폴렌타(Polenta)에 토끼 고기나 닭고기와 같은 육류. 거기에다 감자 같은 오븐에 구운 구황채소들을 함께 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토끼고기와 함께 서빙된 폴렌타 by 세반하별

미식의 나라로 유명한 이탈리아 관광명소의 대표음식이 '옥수수죽'이라고 하니 의외다. 북부 사람들 별명이 폴렌토니(Polentoni) 일 정도로 많이 먹는 음식이다. 그 의미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는데 '빡빡하고 느린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나는 토끼고기를 골랐다. 익숙한 닭고기나 돼지고기보다는 평소 먹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기를 내본다. 서빙된 그릇에는 기대하던 노란빛의 폴렌타가 놓여있다. 매쉬드 포테이토라는 으깬 감자비슷한 모습으로 꾸덕한 호박죽 같기도 하다. 그 폴렌타의 한 중간에 조그마한 구멍을 만들어 그레이비소스(육즙)를 부어 놓았다. 안에서부터 촉촉해지도록 만들어 풍미를 더한 아이디어다. 그 옆에는 오븐에 구워 겉은 바삭하고 안은 포슬포슬한 감자 몇 조각이 놓여있다.


토끼고기 맛은 닭고기의 그 맛과 비슷하다. 하지만 잔뼈가 많다. 살아 뛰 놀았을 자그마한 몸이  상상되어 마음이 좀 불편하다. 전형적인 농부의 한 상이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 받은 기분이다. 붉은 지역 와인과 함께 하니 여행지의 여유로움까지 더해진다.

 

베르가모 구 시가지 광장 모습 by 세반하별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베르가모가 지금은 관광명소로 잘 사는 고장이 되었지만, 자신의 아버지 세대만 해도 끼니를 걱정하던 가난한 곳이었다고 한다.  


주변 지역에 옥수수가 잘 자라다 보니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옥수수에 전분을 더해 부드럽게 만든 폴렌타가 주식이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경우 니아신이라는 비타민 B3가 부족해 설사나 피부염증을 유발하는 ‘펠라그라’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이나 홉이 귀했던 시절, 옥수수는 기근을 막아준 귀한 곡물이었던 것이다.


주인장은 고장의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가난하지만 자식이 열 명이 넘는 어느 가정이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엌 식탁 천장에 말린 생선 한 마리를 걸어놓고 가족들이 폴렌타 한 접시를 받아 그 주위에 둘러앉는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 말린 생선을 한 번 만지고 그 손으로 폴렌타를 집어 먹으면서 생선을 같이 먹는 듯한 기분을 즐겼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는 '자린고비 이야기'가 있다며 전해준다.

도시의 옛 모습을 엿볼수 있는 벽 사진들 by 세반하별

한국과 이탈리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나라에 어쩌면 이리 비슷한 옛이야기가 있냐며, 음식점 주인장과 나는 한참을 마주 보고 웃었다.


음식값을 지불하러 카운터에 갔던 엄마가 돌아올 생각이 없다며 두 딸이 아빠에게 투덜거렸다고 한다. 나는 되려 이 맛있는 음식에다가 덤으로 전통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이냐며 큰 소리를 친다. 여행지의 고즈넉한 밤, 한껏 들뜬 나는 룰루랄라 숙소를 향해 앞장서 걷는다.

  

비록 짧은 여행 중이지만, 만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다만 이 레스토랑 주인장처럼 영어 사용이 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탈리아어를 좀 배워서 다시 와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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