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영국땅에서 키우고 있다. 한국 학제로 중 3이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내가 잘 모르는 주제들을 숙제로 가져오기 때문에 도우려면 엄마인 나도 학생처럼 배워야 한다. 영국 중고등학교 커리큘럼 중 영문학을 보면, 한 학기 동안 단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작품, 캐릭터, 시대상 등 말 그대로 씹어먹듯이 분석한다. 그리고는 학기말이면 이 작품 또는 관련 작품으로 무대에 극을 올리고는 마감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번 학기 주제는 밤의 방문객(An Inspector calls)이다.
An Inspector Calls는 영국의 작가 J.B. 프리스틀리가 1945년에 쓴 희곡으로, 한국에서는 인스펙터 콜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으며, 2000년대 이후 특히 극단이나 대형 공연장에서 자주 공연되었다. 한국의 주요 극장에서는 연출가들이 한국적 사회 현실을 반영한 요소들을 추가해 새롭게 각색하는 경우도 많다. 이 연극은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으며 독자와 관객들에게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줄거리
연극의 배경은 1912년 영국의 부유한 벌링 가문으로, 아서 벌링의 딸인 시알라가 크로프트사의 제럴드 크로프트와 약혼하면서 갖는 가족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는 한국 재벌끼리의 혼맥과 비슷한데, 아버지 아서는 이 결혼이 마냥 반갑다. 기업 운영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사 작위 수여에도 도움이 될 큰 이벤트이기에 성대하게 그리고 어떤 잡음없이 치루려 한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축하하던 중 구울이라는 수수께끼의 수사관이 집에 찾아온다. 수사관 구울은 가난한 여성 에바 스미스의 죽음을 알리며 그녀의 죽음에 벌링 가문이 끼친 영향을 하나씩 밝혀낸다.
마지막 반전에 허를 찔린 듯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 에바의 삶에 미친 영향은 사실이며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저 덮으려 하는 자, 그 안에 책임을 통감하는 자 등 각자의 도덕성과 책임 의식을 시험받게 된다.
사회적, 역사적 맥락
연극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인 1912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작가가 쓴 시점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다. 이는 큰 사회적 변화를 겪은 두 시대를 대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연극이 설정된 1912년은 계층 구분이 명확하고 상류층이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시대였다. 반면, 연극이 발표된 시점은 사회 개혁과 평등, 노동자의 권리, 복지 정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던 시기였다. 프리스틀리는 과거의 시기를 배경으로 선택함으로써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를 강조하고, 타인에 대한 공동 책임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구조와 극적 장치
작가 프리스틀리는 '완성된 희곡(well-made play)' 구조를 사용하여 긴장감을 점점 쌓아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등장인물들과 함께 도덕적 질문을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된다. 특히 극의 순환적 결말—또 다른 검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관객에게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타인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되새기게 한다.
TV 시리즈 인스첵터콜 포스터 사진 @pintrest
그냥 내가 읽은 대로 답 쓸래.
다음 주 에세이를 제출하고 시험을 봐야 하는 딸과 함께엄마인 나는, 작품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시험에 나올만한 각각의 캐릭터가 대변하는 사회상, 계급사회를 열심히 분석하다 말고 딸이 말한다.
“엄마, 분석할수록 너무 재미없어. 그냥 내가 읽은 대로 할래.”
희극은 그리고 소설 작품은 독자가 가져가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때 빛난다.시험준비한다고 자꾸 사조를 엮고 의미를 붙일수록 그 감정은 옅어져 간다. 내가 학창 시절 국어 특히 문학 부분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너무나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