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연휴를 마치고 북서부 맨체스터 시댁에서 출발, M6 고속도로를 타고 남서쪽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잉글랜드에서 런던 다음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 버밍엄 부근은 상습 정체 구간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하다. 평소 집까지 네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던 귀성길이 오늘은 일곱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온몸이 뻐근하니 장시간 비행을 한 기분이다. 몸은 좀 고달프지만 4박 5일간의 크리스마스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낸 후라 마음은 부자가 되어있다.
시댁 가족들과 맞았던 첫 크리스마스가 기억난다.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와 며느리로써 처음 방문한 참이었다. 가족들이 지역 본토박이신 가운데 한국 며느리는 핫 이슈이기에 충분했다. 새댁인 나에게 다들 반갑게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시는데, 통성명에 결혼 축하 그리고 오는 여행이 어땠는지 정도는 눈치코치로 알아듣고 대답했지만, 그 이상 대화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어려웠다. 아직 낯선 데다가 영국 북서부 지역 방언이 워낙 강한 분들이라 미국식 영어 교육을 잔뜩 받은 나에게는 영어인 듯 영어 아닌 언어였다. 새 며느리 인사를 한 바퀴 돌고 주위를 돌아보니 삼삼오오 대화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시차 겸 외계 언어의 홍수 속 멍해져 있던 나에게 시 숙모님이 슬쩍 다가오셔서는 “저분들 말 알아듣겠어요?” 하신다. 수줍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고백하니 “나도 그래요” 하시면서 윙크하신다. 이 분은 나 이외에 유일하게 한 사람, 타 지역 출신으로 런던분이신데, 지역마다 표현이 얼마나 다른지 예를 들어가며 나의 말 벗을 자청 하신다. 20여 년 전 자신이 새댁으로 첫인사 왔을 때가 기억 나신다면서 말이다. 시댁에는 집안 식구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 친구들까지 인사하러 방문하셨는데 크리스마스이브부터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복싱데이까지 2박 3일 내내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월이 지나 시부모님 두 분 다 정년 퇴임을 하시니 성탄절 모이는 방문객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코비드 락다운 이후 크리스마스 파티는 직계 가족 중심이 되었다. 올해는 시 아버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생사를 오가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이후 퇴원하셨지만 예전보다 눈에 띄게 기력이 약해지신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쇠러 가도 되는 것인지 조심스럽다. 남편 이야기에 따르면 시부모님 두 분이 올해도 평소처럼 꼭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시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시 어머님 말씀과 함께 말이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시 아버지께 안부를 물으면 바로 “나 괜찮아” 대답하신다. 건강 염려보다는 그저 평소처럼 지내고 싶어 하시는 눈치다. 크리스마스날, 시댁 근처에 사는 아들네가 정찬 준비를 자처했고, 평소처럼 대가족이 모여 따뜻한 성탈절 정식을 나눠 먹은 후 각자 집으로 돌아온다. 시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음식들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다 토해내신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시기에 최대한 걱정 표현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눈으로 귀로 아버님의 사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느껴진다. 이 때 부엌에 켜 놓은 라디오에서 겨울 왕국 “ Let it go” 노래가 나오는데 시 어머니께서 "그 의미가 무엇이든 Let it go 다 흘려보내”라고 말씀하신다. 가족 모두 표현하지 않지만, 언제든 슬픈 소식이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위해 주어진 시간인 것만 같다.
시 아버님이 하루 온전히 앓고 나시더니, 좀 편해지셨는지 가족들이 모여 있던 아래층 거실에 오신다. 함께 TV 퀴즈쇼를 몇 편 봤다. 덕분에 세대 차이를 넘어 라떼는 말이야~ 옛날 유행 소재 이야기도 하고, 올해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고로 성공한 아트스트였다는 이야기도 나눈다. 평소처럼 다들 농담도 하고 서로 웃고 있는데, 오랜만에 뵌 시 숙모님이 슬쩍 옆에서 물으신다. “요즘은 좀 어때요? 다들 하는 얘기에 좀 익숙해졌어요?” 나는 활짝 웃으면서 “이젠 속삭이시는 말들도 다 들려요” 하니 모두 웃으신다.
물론 지금도 영국에서 원어민들과 그들의 언어로 어울려 사는 것이 편안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문화나 경험들을 알아야 진정한 소통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해질수록 좀 더 익숙해지기는 한다. 이젠 이 집안 며느리로 딱 들어맞게 성장하고 있는 나는, 좀 더 오래 시부모님과 같이 농담하며 지내고 싶은 소망을 담아 기도해 본다. 이제는 의사소통만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나누는 영어 생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