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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서 Apr 21. 2024

안녕, 프랑크푸르트 (네 번째 이야기)

아내는 다시 독일에 돌아왔지만이미 서먹해져버린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우리는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을 뿐 화학적으로는 여전히 결합하지 못한 상태로 지냈다아내는 이전에 다녔던 H사에 재취업을 해 출근을 했고퇴근 이후에 우리는 주로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내만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 관계는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 확신했었다그러나 이것은 나의 오해와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아내는 우리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나 역시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우리는 그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처럼 침묵과 무관심으로 서로를 대했다


나 다시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더 늦기 전에 가서 자리 잡아야 할 거 같아.” 


혼자 들어간다는 말이지?”




아내는 퇴근길에 또다시 혼자서 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나는 아내의 변덕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만한 논리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결국 아내는 번복에 번복을 거듭한 끝에, 이곳에 온지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그렇게 매정하게 떠난 아내가 무척 원망스러웠지만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곳에서 계속 생활해나가는 게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긴 했다본인 계획대로 써지지 않은 논문과 언어의 자유로움에서 피할 수 없는 회사생활게다가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아이도 생기지 않자 이곳에 있어야 할 의미가 상당 부분 사라진 듯싶었다평소 나는 아이가 없더라도 우리 둘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게 아니냐고 몇 번을 말했지만그녀는 허공을 응시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손바닥 뒤집듯 한 결정에 더 이상 줏대 없이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이제는 이혼을 하든한국으로 그녀를 뒤따라가든 뭔가 나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에서 이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었다평소 나는 이혼이 뭐 별거냐고함께 살아서 불행한 것보다 이혼해서 행복한 쪽이 훨씬 나은 게 아니냐고 주위사람들에게 쿨 한 척 말해도정작 내 자신은 포함되지 않은 말이었다나에게 이혼은 여태껏 쌓아놓은 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과도 같았고이러한 초라하고 비극적인 장면을 주변사람에게 보이는 게 나 스스로에게 용납되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전화해서 당장 한국에 귀국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아내는 대체 한국에 들어와 뭘 해서 먹고 살 건지 따져 물었고나는 당분간 부모님 식당일을 도와드리며 주말부부로 지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아내는 식당일이 그리 쉬운 줄 아냐며정 들어오고 싶으면 해외영업팀이 있는 회사에 지원해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같이 살자'는 말에 기쁜 마음이 컸다. 아내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 않을 거란 짐작 때문이었다여하튼 우리는 세부적인 건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빠른 시일 내 한국에서 만나기로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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