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의 정신줄 잡기 프로젝트
#1. 자살 시도
어렸을 때부터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장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고 해서 죽고 싶지 않은 건 아니므로 그렇게 한 30년 가까이를 살았다. 자살 시도도 해봤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시도해봤는데 솔직히 그건 홧김이었다. 엄마가 내 말을 안 들어줘서가 이유였던 것 같은데 엄마가 놀라서 같이 뛰어 올라온 기억이 난다. 솔직히 완전히 뛰어내릴 맘은 없었다. 거긴 4층에 불과했고 여기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죽진 않을 거니까. 그 다음 시도는 수면제 구하러 다니기였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약국이었는데 할아버지 약사님이 계셨다. 할아버지 약사는 ‘수면제’를 구하는 초등학생을 몇 번이나 봤을까, 아직도 생생한 건 그 할아버지의 돋보기안경이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나를 뚫어지게 보시더니 그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기분이 좀 상했던 것 같다. 수면제 구하기 실패로 인해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선풍기를 얼굴에 갖다 대고 강제로 낮잠을 잤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쬐다가 죽은 일가족의 기사가 무척 감명 깊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것도 실패였고, 애꿎은 감기만 걸렸다.
#2. 그렇게 병원에 간 계기
요즘은 살인 충동이 들 만큼 미운 사람과 미래에 대한 불안, 10년 넘게 해오던 일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실수에 대한 좌절, 밤마다 울고싶어지는 기분 등에 시달린다. 그래서 친구가 오랜 시간 권하던 정신과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친구는 꽤 오래 전부터 내게 병원을 추천했다. 나는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오늘.........병원에 갔다. 갈 수 밖에 없었다.
예약부터가 힘든 병원이었다. 지난 주 전화했는데, 이번 주는 진료를 보기 힘들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히 주말은 2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 있다고,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월요일 오전 10시 전에 오면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전날부터 일찍 잠이 들었는데 결국 새벽 2,3시에 잠들어서 9시쯤 눈을 떴다. 빠르게 준비하려면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므로 역시나 지각했다. 10시 13분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10시 16분에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 선생님의 첫 마디가 “10시 전에 오라고 했는데”였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희한하게 나오지 않았다. 긴 기다림이 있을 것 같아 책도 한 권 들고 갔는데 그 사이에 이것저것 검사도 하고, 1차 상담도 받고, 또 추가 검사도 하고 2차 상담까지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3. 정신과는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검사지를 막 체크하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상담 시간이 잠시 비었는지 나를 부르셨다. 진료실로 갔다. 홈페이지에 등록된 사진보다 훨씬 젊은 느낌의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경직된 느낌도 아니고, 그래서 마음이 편하면서도 불안했다. 첫 마디는 무슨 일로 오셨냐는 거였다. 처음에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부터 했나, 싶어서 돌이켜보니 요즘 좀.. 우울해서요. 라는 말을 했던가, 아무튼 친구가 추천해줘서 오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는 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다음에 몇 가지 이야기들을 꺼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들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했다. 선생님은 딱히 긍정과 부정을 하지 않은 채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들어주셨다.
- 자꾸 약속시간이나 마감 시간이 있으면 아슬아슬하게 세이브하거나 좀 늦는 경우가 많다.
-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 최근 이런 일 때문에 괴로웠고 살인 충동도 느낀다.
- 기분의 업다운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 식욕제어가 잘 안 된다. 먹을 때는 엄청 많이 먹고 안 먹을 때는 참는 게 아니라
진짜 안 먹고 싶은 기분이라서 먹지 않는다.
-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웁니다. 술은 안 마셔요. (진짜 안 마심, 약속 있을 때만 마심)
나도 기억 안 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꺼내고 나니 선생님이 몇 가지 추가 검사를 제안했다. 조울이랑, 자살 관련한 거였는데 뭐였더라.
#4. 검사지 체크
대여섯개의 검사를 했다. 같은 질문을 말만 바꿔서 여러 개 하는 게 많아서 나중에는 동태눈깔로 임했다. 거짓을 걸러내려고 하는 거구나, 싶어서 이해는 했지만 너무나 지루했다. 하지만 해야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나름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앞에 것도 복기하면서 체크를 했다. 문장검사라는 것도 했는데 “나의 미래는 _________________” 다. 뭐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던지는 내용들이 많았다. 나의 답은 “잘 모르겠다” 였다. 진짜로 모르겠으니까. 이렇게 짤막하게 적은 것도 있었고 좀 길게 적은 것도 있었다. 포인트는 직관적으로 작성하는 거였기 때문에 영혼 없이 마구마구 갈겨 나갔다.
그 중 곤란한 테스트가 하나 있었다. 나중에 추가된 검사였는데 “가장 행복했을 때 (마음의 넘침상태라고 하던가)를 기준으로 나는 어땠는지”를 체크하는 거였다. 그 테스트는 정말 괴로웠다. 왜냐하면 행복했을 때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마음으로는 “아이돌 볼 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병원에서 떠올렸던 건 친구들과 미친 듯이 밤유흥을 즐겼던 때였다. 당연히 그 기준으로 하니, 일상생활과 직장생활 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문항에서는 극과 극의 답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은 조울이 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5. 결과
모든 검사지의 지표는 다 평균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시스템이 이 병원에서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쓰는 거라는데 등록된 모든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울, 불안 등의 수치가 매우 높다고 하셨다. 숫자와 도형이 나오면 한없이 약해지는 나도 그 수치 그래프만은 정확하게 파악이 됐다. 솔직히 충격받거나 슬프지 않았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이 “이건 왜 이렇게 나왔을까요?”라고 하면서 다시 내 검사지를 보여줬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선택한 나였으니까. 선생님이 오늘 이 시간은 ‘티저’에 불과하다며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풀어보자고 하셨다. 엄청난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원래 정신과 진료란 이런 것이니까. 나아지려면 썰을 풀어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벌써 스트레스를 받는다.
#6. 40살이 되면 죽는다고 생각해요.
“왜 사는 걸까요?”
“살아있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이 상담 초반부에 “오늘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했다. 아쉬움 없이 인생을 즐겨서가 아니라 내일이 별로 기대되지 않아서였다. 일이 잘 돼도, 만남이 즐거워도, 덕질에 과몰입할 때도 그냥, 오늘 기분이랑 상관없이 끝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데드라인을 정한다면 마흔 정도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왜 마흔이냐면 그렇게 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인생을 안 즐겨본 나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얘기는 선생님께도 말한 이야기다.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우리 치료의 목적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답을 못 찾을 것 같은데 기대에 부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네네”라고 답했다.
#7. 떡밥 회수 예고
상담 말미,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흠, 내내 거슬렸던 건데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 검사지는 제 주관이 많이 들어간 건데, 제가 좀 오버해서 체크한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이 말에 선생님의 눈이 커졌다. 이게 앞으로의 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떡밥이 될 거고 나중에 회수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엥? 도대체 이게 왜요. 어쨌든 끝은 “감사합니다” 였다.
약한 우울증과, 불안증 약을 처방 받았다. 처방전 들고 약국 가야하는 줄 알았는데 정신과는 의약분업 예외과라서 (이것도 나중에 검색해서 알았음) 병원에서 바로 약을 받을 수 있었다. 초진 비용은 약 10만 원이 못 되었다. 저녁 약만 처방 받아서 한시간 전 쯤 먹어봤는데 좀 잠이 오는 것 같기도. 아니면 그냥 피곤한 건가. 살짝 속도 안 좋고 잘 모르겠다. 다음 주 월요일에 또 간다. 3월 말에는 바쁜데... 그 전까지 약에 얼른 적응돼서 병원에 자주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귀찮으니까.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