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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J May 16. 2024

30대에 처음 정신과 방문인데 우울증이 맞나요? (2)

30대에 처음정신과에 갔는데... 우울증이 맞나요? (2)     

  - 나다  


        

#1. 네 번의 진료

  지난 3월, 처음으로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떠들고 정답 없는 검사지에 답을 적어내고 났다. 결과는 ‘우울’과 ‘불안’이 평균치 이상이라는 것.

 그렇게 벌써 네 번의 진료를 받았다. 약도 벌써 한 달 째 먹고 있고 약의 용량은 한번 바뀌었다.      

  뭐가 달라졌나요? 하는 말에 선뜻 답을 내릴 수가 없다.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다들 정신과 치료는 길게 잡아야 한다던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게 이렇게 변화 없이 돈과 시간을 쓰는 일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내 기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신과 예약을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나도 2주치의 예약을 잡고 왔다. 덕질 빼고는 모든 약속이 부담스러운 나는 (하고 싶을 때 해야함) 병원 예약 때이 잡힌 날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라는 글을 적고 한 번 더 진료를 받았다.     

 

#2. 매너리즘에 빠진 환자 (벌써

  약의 용량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이제 꼬박꼬박 챙겨 먹던 약도 하루, 이틀, 사흘 .. 몇 번을 빼먹고 먹기도 한다. 어제도 약을 빼먹었다. 올 10월 완전한 독립을 꿈꾸는 나는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있는데 생각보다 벅찬 일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인지 기운이 많이 떨어졌다. 일상이 무너지고 꼬박꼬박 가던 운동도 일주일에 3일만 겨우 간다.      

  내게 진짜로 도움 되는 건 약이 아니라 덕질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돈을 벌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한동안 열심히 쓰던 일기장에 빈 페이지가 늘어만 간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대신 나를 피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것 역시 그저 피곤해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우울증이 아닌 것 같아요. 뭐 그런 말씀.      


#3. 새로운 검사인데역시 최고점을 찍어버린.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검사를 받았다. 네 번째 진료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끝이 났는데 이번엔 상담 도중 세 개의 검사가 추가되면서 꽤 긴 시간 진료를 받았다. 테스트 이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회 불안성 척도 뭐 이런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당연하지, 나는 원래 그렇다.      

  내가 아는 나를 설문지 형식을 빌려 확인하는 일은 좀 쪽팔리기도 했다. 내 기준 부정적인 질문에 ‘매우 그렇다’를 체크하며 또 점수가 높게 나오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개는 ‘보통이다’ 정도에 체크를 했다.  

  꼼수는 안 통했다. 그렇게 정상 범주에 머물고 싶었던 나는 이번에도 평균치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이번 내용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왜 항상 나는 평균 이상의 불안과 회피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번에야말로 ‘정상이랜다’ 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4. 제가 궁금한 건왜 세상이 저한테 이렇게 박하냐는 거예요

  그렇다.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왜 나한테만 세상이 못되게 구냐는 거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더 심해졌다. 나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일의 의뢰를 받아 돈을 버는 직업인데 사실상 일을 따기 위해서 뭔가를 어필했던 적은 없다. 다만 증명했을 뿐이다. 제대로 증명한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자꾸 일을 주기에 내가 영 일을 못하지는 않나부다, 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남들에게 아니꼽게 보일 줄 몰랐다.     


  “우리가 생각해봤는데 네가 그 일을 따게 된 건, 아무래도 네가 여우짓을 해서 그런 것 같아.” 

  “네?”


 이건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2,3년차 쯤 들었던 말. 나는 그때쯤 나보다 6개월 선배의 일을 다 해주느라 매일 밤까지 회사에 남아 일을 했었고 그 모습을 누군가 어여쁘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 난리를 겪고 나서 그 일을 준 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어이없어했다. 자신이 나다 씨에 대한 평판을 하나도 안 알아보고 일을 줬을 것 같냐며. A씨는 애초에 자신의 후보군에 없었다며. 하지만 여전히 난 여우짓해서 일을 딴 여자애였다. 중요한 건 담당자는 여자였다는 것이다.      


  “나다 씨는 사람들(정확히는 일을 주는 사람들)하고 잘 지내잖아요.”

  “엥, 전혀요. 전 회사도 잘 안 나오는 걸요. ”

  “에이~ 누구 씨랑 친하잖아요”

  “친한..가? (나는 점심때 밥 먹을 사람도 없다.)”     

 

  아, 이건 최근 1년 사이에 들었던 말. 그러니까 나의 동료(?)들은 내가 10년 넘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여우짓 어쩌구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최대한 출근도 안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들은 나의 몸에 대한 언급도 서슴없이 한다. “나다 씨는 평소에 잘 안 먹어서 그렇게 살이 안 찌는 거죠?” 전혀 아니다. 나 같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식욕 조절이 잘 안 된다. 그러므로 폭식을 자주 한다. 게다가 어머니를 닮아 군것질을 좋아하며, 아버지는 비만이다. “많이 먹고 운동을 진짜 열심히 한다”고 대답하면 “얄밉다”는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난 결코 아이돌 같은 몸을 가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럼 덜 억울했을 것 같다.) 그저 가슴이 없을 뿐이다. 현실은 바지가 꽉 껴서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다닌다고요.

 라는 이야기를 진료실에서 했다. 차마 여기에 적지 못한 에피소드 몇 개를 풀고 나니 엄청나게 심장이 뛰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사실은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구요.”   

  

  그때 선생님이 뭐라고 답을 하셨던가. 심장이 너무 뛰어서였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이번에도 정작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말았네.      


#5. 한 달치 약을 받았다

  약의 용량은 그대로이고 다음 예약을 잡기가 어려워 한 달 뒤에나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주는 너무 힘들었다. 안 힘든 줄 알았는데 주말에 잠을 미친 듯이 자는 걸 보니 알 수 있게 되었다. 하고자 계획한 일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고 악몽을 꿨고 땀 흘리며 일어났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보고 왔고 새로운 일도 시작했는데 왜 나는 힘들지. 힘든 와중에 지울 수 없는 생각 하나는 나는 지금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 누군가에게 욕먹을 것 같다는 불안이다.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을 것이 분명한데 나는 왜, 지나간 일에 이렇게 마음을 쓰고 있는 걸까. 이 치료가 길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6. 근데 원래 병원 가면 이렇게 징징거리게 되는 건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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