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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J Oct 17. 2024

2024 여름 일기, 방문을 닫지 못하는 여름

서른의 독립 

  정말 끈질긴 여름이었다. 매년 폭염이 반복된다지만 올해 여름은 잔인할 만큼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알람보다 더위에 먼저 잠을 깨고 쏟아지는 땀에 빨랫감이 늘고 별안간 열에 시달리며 몸이 아프다가도 속에선 화산처럼 분노가 솟구치는 그런 여름. 그리고 열을 식히기 위해 반드시 에어컨을 틀어야했던 그런 밤, 그런 밤들.      


  나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다. 올해 반드시 동거인과 사는 집에서 나와 살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게 떨어진 일감을 감사히 받았다. 한 번의 거절도 없었다. 모든 의뢰에 항상 오케이를 외쳤고 이틀 동안 겨우 세 시간을 자며 원고를 보냈다. 내키지 않는 미팅 자리에 가 체할 것 같은 점심을 먹으며 또다른 일터로 차를 돌렸다.      


  악착같이 일한 것에 비해 집을 구하는 데는 끈기가 없었다. 발품 한 번 팔지 않고 한번 본 집을 덜컥 계약했다. 주차가 편리하고 평지에 있고 지척에 도서관과 마트가 있고 어쨌든 믿을만한 아파트의 가장 작은 평수. 그 아파트는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좁은 주제에 보증금이 높았다. 하지만 은행의 힘을 빌린다면 영 못할 것도 없었다. 부동산에 들른 지 일주일 만에 보증금의 5퍼센트를 걸었다. 주변에선 섣부르다고 했다. 왜 더 매물을 둘러보지 않았냐며 걱정했다.      


  실은 그런 걱정은 동거인만 했다. 역시나 “잘 됐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혼자이고 싶었다. 에어컨 때문에 방문을 닫지 못하고 일을 하는 여름날 밤을 지나며 더더욱 섣부르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오랜 공실이었다는 그 집으로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를 배려하지 않은 커다란 티비소리는 여전했고 거실을 차지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써큘레이터에 의존한 채, 더러운 방 안에서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었다.      


  그렇지만 섣부르게 내린 결정 덕에 조금은 참을 수 있었다. 이제 더이상 이런 여름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무릎 뒤에 고이는 땀도 열날 때마다 올라오는 알러지도 다 참을 수 있었다. 후끈한 열기에 말라 죽어버릴 것 같은 여름밤을 그렇게 견뎠다. 방 밖은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지만 결코 방문을 열지 못했던 2024년의 여름, 나는 정말로 이 여름이 빨리 끝나버리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9월이 오기를 10월이 오기를, 방문을 닫고 있어도 살만한 계절이 오기를 정말로 바랐다. 그렇게 악착같이 여름을 보내고 나니 기특하게도 지병이 도졌다.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생기는 병, 일 년만의 재발이었다. 좌절했지만 그 또한 여름이 끝났으니 다 괜찮았다.      


 더위가 가신 계절에도 매일 새벽 4시를 넘겨 잠이 든다. 벌려놓은 일이 워낙 많아 수습하는 게 일이다. 일하는 중간중간 인터넷으로 가구들을 구경하고 별안간 힘이 솟아 이삿짐을 조금씩 싼다. 조금씩 정리하며 나온 정신과 약 봉투는 차마 버리지 못했다. 사실은 버렸는지 안 버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늘은 깨끗이 씻은 써큘레이터를 조립했다. 며칠 전엔 제습기도 다시 포장 박스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여름을 포장하고 이것들이 모두 새집으로 가는 밤을 상상한다. 그 집에서 맞이하는 2025년의 여름, 아. 어쩐지 이런 상상을 하니 눈물이 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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