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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Oct 20. 2023

첫사랑에게 걸어갔다. Andante

스물네 걸음

 2024년, 지형과 유성과 밥을 먹다가 현수가 말했다.


 “야, 지형아. 너 고은새 생각나?”


 “응.”


 지형이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걔 결혼한대. 올 사람 오라는데 갈래?”


 지형은 잠깐 멍하더니 픽 웃었다.


 “걔가 너 보고 싶대.”


 지형이 한 번 더 웃었다. 한참 말이 없는데 유성이 입을 열었다.


 “야, 고1 때 축제 때, 강당에 있었는데 고은새가 갑자기 찾아왔다.”


 지형이 유성을 돌아봤다.


 “가만히 서서 날 쳐다보는 거야. ‘왜?’ 내가 그러니까 뚱딴지같은 소릴 해.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엥? 갑자기?”


 현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성이 이어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어. 강당 떠나가도록. 강당에 있던 사람들 다 조용해져서 쳐다봤어.”          





 지형과 은새는 목동에 있는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결혼한다면서?”


 “어. 우리 남편 사진 보여줄까?”


 지형은 핸드폰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뭐 하는 분이야?”


 “공무원이야.”


 “오, 괜찮다. 잘생겼어.”


 “그런가?”


 “어떻게 만났어?”


 “친구가 소개시켜줬어.”


 우동을 먹다가 은새가 조용히 말했다.


 “나 그때 너 많이 좋아했었다.”


 지형이 우동을 씹다가 킥킥거렸다.


 “정유성 조지러 갈까?”


 “어, 맞아. 그 이름이었어. 그 씨…으휴.”


 킥킥 웃다가 은새가 너도 뭔가 말해보라는 눈으로 지형을 봤다. 지형이 편하게 자세를 고쳐앉더니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난 너가 나한테 마음도 없는 줄 알았기도 했고, 그냥…모르겠어. 그때는 그냥 귀찮고 친구가 더 좋았어. 근데 헤어지고 나니까 뭐가 허전하긴 하더라고. 2학년 때 넌 이과 가고 난 문과 갔고, 3학년 때부턴 어쩌다가 한 번씩 복도에서 지나칠 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반갑더라. 뭔가 말 걸어보고 싶었고.

 스물세 살 때, 너가 구로에 있는 대학교에 간 줄 알고 그 학교 앞 피시방에서 알바를 했어. 회원관리에 너 이름 쳐봤어. 나오더라. 생년월일로 동명이인 셋 중에 알아봤지. 전화번호도 나도 모르게 보자마자 외웠어. 근데 연락할 용기를 못 냈어.

 피시방 그만두고 난 다음엔 그 학교 구내 서브웨이에 들어갔어. 정신없이 샌드위치 만들면서 너일 것 같은 손님이 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어.

 그 대학로 와플 집에 앉아 와플을 먹는데 한 여자애가 지나가며 날 쳐다보길래 너인 줄 알았어. 대학로 끝에 있는 시장을 걸어 나올 때 한 여자애가 친구들이랑 지나가며 날 쳐다보길래 너인 줄 알았어. 너는 내 신기루였어. 가끔은 너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의심스럽더라. 어린 시절 친구들 모두를 영원히 못 만나는 대신 너 하나를 만나게 해준다고 하늘이 그런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어. 후회된다. 그냥 용기 낼걸. 철판 깔고 전화해서 고백할걸. 너가 내 첫사랑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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