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처음이지만, 미국김치데이를 응원하며
대표적인 한국음식 하면 김치가 단연 1등일 테다. 오래전부터 외국인 친구들이 김치 레시피를 종종 물어보곤 했다. 내가 김치를 담가먹진 않아도 어릴 적부터 엄마의 김장을 옆에서 보아왔기에 레시피 정도는 뚝딱 알려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아마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미국에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아직까지 김치를 담가 먹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은 한인마트가 많아서 사서 먹거나 주변에서 조금씩 얻어먹는 것으로 근근이 연명했다. 그러다 보니 늘 김치가 부족했다. 라면먹을 때만 먹고, 김치찌개가 정말 먹고 싶을 때에만 먹었다. 그야말로 나는 김치 빈곤층이었다.
최근 물가도 오르고 사 먹는 김치로는 감당이 안 되겠다 싶어 이제는 막김치라도 좀 해보아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주변 어르신들께서 김장 이벤트를 하려고 하는데 함께 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그렇게 결혼 후 난생처음, 김장이란 걸 하게 되었다.
배추를 씻고, 절이고, 각종 양념을 만들고, 재료손질만도 한참이 걸렸다. ‘김장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속으로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옆에 계신 어르신이 최근 연방정부가 김치데이 지정에 관한 뉴스를 이야기하시며 미국인들도 이제는 김치 담그는 행사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김치데이가 며칠인 줄 알아? 11월 22일이야” 김치데이는 한국에서 김치의 효능을 알리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한 날이다. 추후 김치의 효능에 대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도 버지니아주, 뉴욕주, 조지아주, 하와이주, 미시간, 워싱턴 DC 등 ‘김치의 날’로 제정되었는데 최근 연방정부에서 공식 지정일로 의결이 올라옴에 따라 조만간 미 정부가 지정하는 공식적인 날이 될 예정이다.
“11월 22일인 이유가 김치 재료가 11가지가 들어가고 22가지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있대. 그래서 내가 재료를 세어봤잖아” 나도 재료손질을 하며 얼핏 재료들을 세 보았다. 배추, 무, 마늘, 고춧가루, 생강 등. 11가지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치 재료 하나하나(11)가 모여 면역 증진, 장 내 환경 개선, 비만·노화 방지 등 22가지 이상의 건강기능적 효능을 갖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혹시라도 친구들이 김치 냄새난다고 할까 봐 외출하기 전에 절대 한식자체를 먹지 않았었는데 확실히 김치의 위상이 높아졌다. 지금은 한인마트뿐 아니라 미국마트에서도 김치를 쉽게 볼 수 있으니 이제는 한국인의 김치가 아니라 세계인의 김치인 셈이다.
그런데 김치 종주국인 우리는 점점 김장을 하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한다. 김치를 사 먹는 사람 비율이 훨씬 높아지고 있단다. 일명 김포자(김장 포기자)들이 늘어난 것. 고물가에 김장재료를 사는 것보다 김치를 사 먹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어서이기도 하고 1인 가구 비율도 늘어나기도 해서이다. 김치를 좋아하지만 나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어떤 집은 며느리나 엄마만 고생하는 고행의 날일 수도 있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서도 김치데이가 만들어지는데 김치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김장 문화가 사라지면 서운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김장은 저녁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새삼 엄마는 어떻게 이걸 혼자 매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의 김장 문화도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두가 나지 않아 할 생각조차 못했던 나도 여러 명이 함께 하니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이벤트가 있는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김장을 지역문화나 가족 축제처럼 진행하면 조금 더 쉽고 재미나게 전통이 이어지지 않을까? 의무감보다는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김장문화가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양손 무겁게 김치통을 들고 집에 오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래서 김장을 하는구나’ 뿌듯했다.
올 겨울, 이제는 빈곤층 탈출이다. 나는 김치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