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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도 Sep 10. 2023

머스트잇과 스탕달

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 창문 밖으로 뭐지 싶은 광경이 펼쳐진다. 오픈까지 아직 몇 시간은 더 남았는데, 백화점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두꺼운 겉옷을 입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뉴스에서나 보던 명품족들을 실제로 목격했을 때의 문화적 충격은  강했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정말 지독하다. 2022년에는 1인당 명품 소비액 전세계 1위를 차지하였고,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들이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덕분에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 명품 플랫폼도 날개를 달고 고속 성장했다. 각각 수백억 원 대의 투자를 유치하고, 톱스타를 자사 모델로 기용하며 승승장구했다. 물론 최근 코로나가 종식되고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명품 구매 습관이 살아나면서 위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언론에서는 이러한 명품 열풍을 두고 온갖 해석을 내놓는다. SNS 보편화로 인한 과시 효과와 모방 효과, 신분 상승을 바라는 마음에서 특정 물품을 구매하는 파노플리 효과 등을 원인으로 제시하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과소비와 허영을 꼬집는 식의 기사들이 많다. 맞는 말이고 대부분 내용에 수긍이 간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 이런 원인들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데,  이 나라는 사회 전체가 이토록 거센 열풍에 휩싸인걸까. 강도의 세기와 범위가 유달리 커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  아닐까.



집단적 신분 상승정신적 혼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자신이 속한 낮은(혹은 가난한) 신분에서 높은 신분으로 상승을 원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본래 속했던 신분의 세계관 및 가치관과 이별할 것. 그리고 자신이 고자 하는 신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새로 받아들일 것. 이는 매우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적 시련 과정이며, 상승의 속도가 빠르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강도는 배로 증가한다.


태생적으로 주어져 숨쉬듯 편안했던 환경을 떠나, 매순간 의식하고 교정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면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마치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이 원어민과 달리 말할 때마다 본인의 발음과 문장이 정확한지 눈치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영혼을 버렸으나 새로운 영혼은 얻지 못한 상태. 공허함이 몰려오고 현기증이 느껴진다. 이를 달래고자 애써 상류층의 물건에 집착하거나 또는 그들의 인정에 매달리게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급격한 신분 상승을 경험하고 이에 동반되는 정신적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은 있. 그런데 가끔 일부 인원이 아닌 사회 전체가 집단적으로 급격한 신분 상승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기가 있다. 마치 20세기 중후반 한국처럼. 전쟁 후 폐허에서 시작해 지난 70년 간 한국은 급속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경제발전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 하에 '잘 살아 보세' 주문을 외우며 그토록 원하던 물질적 풍요를 일구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간직했던 문화와 철학, 미학, 세계관을 폄하하고 부정하며 폐기처분했고, 대신 서구 선진국에서 들여온 낮선 사상과 정신으로 영혼을 채우려 노력하면서 사회 전체가 불안감과 공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한국이 받아들인 선진국의 철학과 가치관은 한국이 만든 게 아니다. 선진국이 만들었다. 그러니까 한국을 평가하고 채점하여 끌어올릴수도, 단번에 바닥으로 박을 수도 있는 주체는 그들이다. 자연히 선진국의 인정을 목말라하고 집착할 수 밖에 없다. 명품을 구매하는 심리도 결국 그들이 만든 세계에 우리가 받아들여지길 희망하는 마음 아닐까. 그러나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한다고 해서, 눈치보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선진국이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의 변덕에 달렸을 뿐이다. 기분 좋으면 띄워주고, 기분 나쁘면 찍어누른다. 불안과 혼란은 더 커진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점은, 집단적 신분 상승과 정신적 혼란의 과정을 겪은 국가가 한국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 전 사회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들은 현재 우리가 배우고 따라하는 서구 선진국들이다.



1830년대 프랑스, 적과 흑의 시대


작가 스탕달이 살았던 시절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완고했던 구체제가 무너지면서 귀족들 아래 신음하던 민 계급이 오랜 피지배 생활을 청산하고 위로 상승할 수 있는 문이 열린 시기였다. 마침 나폴레옹이라는 훌륭한 군사적 지도자의 등장으로 프랑스 민들은 다른 유럽 왕과 귀족들의 군대를 격파하는 승리의 경험을 했고, 이 때 얻은 자신감으로 신분 상승의 야망을 더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 왕국들의 연합으로 나폴레옹 제국이 몰락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지며 프랑스는 다시 구체제로 돌아갈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이미 자유로운 신분의 맛을 민 계급은 다시 숨막히는 피지배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하 않는. 그렇다고 봉건 귀족들의 세계관을 대체할 본인들만의 대안적 세계관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이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귀족들의 세계에 편입되는 방법 외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엥은 이 딜레마 속에서 극도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며,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신분 상승의 야망을 품고 자신이 증오하는 귀족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다. 그는 똑똑한 머리를 이용해 학식을 쌓아 귀족 집안인 레날 시장의 가정교사로 고용된다. 그리고 자신이 귀족 세계에 충분히 어울리는,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레날 부인을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다. 레날 부인은 쥘리엥의 섬세함과 학식, 그리고 강한 자존감에 끌려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으나 쥘리엥에게 레날 부인은 그저 하나의 상징, 자신이 귀족 신분에 적합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했다.


"그의 사랑은 아직도 야심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처럼 불행하고 경멸받는 가련한 존재가 그처럼 고귀하고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소유하는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이후 불륜이 적발되어 레날 부인의 집에서 도망친 쥘리엥은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하게 되는데, 여기서 후작의 딸 마틸드를 만난다. 다시 한번 쥘리엥은 마틸드를 유혹하고, 그녀를 임신시켜 마침내 귀족 집안의 사위가 되기 직전에 이른다. 하지만 레날 부인이 자신과 쥘리엥의 사이를 폭로하며 결혼은 무산되고 만다. 이에 분노한 쥘리엥은 레날 부인을 찾아가 총을 부상을 입히고, 결국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생을 마감한다. 귀족들을 증오하고 혐오하였으나, 신분 상승을 위해 그들의 세계에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쥘리엥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을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의 인물이었다.



1920년대 미국,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


그로부터 약 100년 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포드의 자동차 혁명 등을 통한 경제발전으로 평민들이 중산층 계급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유럽 강대국을 상대로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고, 전쟁 특수로 인한 호황으로 전 사회에 신분 상승의 열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군사적으로 강성해졌음에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유럽 선진국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미국에서 상류층의 삶이란 곧 유럽 상류층을 모방하고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생활을 영위함을 의미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쥘리엥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분 상승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장교 복무 시절 상류층 가문의 딸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이후 제대하여 당시 판매가 금지되고 있던 술을 유통하며 큰 돈을 벌게 된 개츠비는, 이미 결혼한 데이지의 집 근처에 저택을 마련하고 그녀와 재회하고자 한다. 그에게 데이지는 신분 상승의 확실한 증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 집안을 유럽 스타일로 치장한다. 중세 봉건시대 풍 저택 안에 마리 앙투아네트 음악실과 왕정복고 시대 살롱을 배치하고, 서재는 옥스퍼드 풍으로 꾸몄다. 그리고 샤르트뢰즈 술을 권하며 영국에서 수입한 온갖 소재의 셔츠를 자랑한다.


"그는 한 번도 데이지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보이는 반응 정도에 따라 자기 집의 모든 것을 재평가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실제 눈앞에 있는 이상 다른 그 무엇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듯이 그는 이따금씩 자신의 소유물들을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한번은 그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지의 남편 톰이 이를 알아차리고 데이지에게 개츠비의 정체를 폭로하며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의 친구를 사주하여 개츠비에게 총격을 가하게 만든다. 평생을 상류층에 속하고자 노력해왔던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토록 뛰어난 능력과 거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기성 상류층의 세계관에 필적할 대안이 없었기에 신분 상승을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방법 밖에 없었지만 최후에는 그곳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내쳐진 것이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적과 흑>과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모로 유사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주인공이 신분 상승의 야망을 품고 자신이 원래 속했던 계층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버리고, 상류층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상류층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표로서 귀족 부인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다 최후에는 상류층 세계로부터 버림받고 씁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둘 다 낭만적인 연애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대에 신분 상승의 희망을 품은 누구라도 느꼈을 갈등과 좌절을 그린 작품이다.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각국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아직까지도 공감받고 사랑받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2023년 한국


쥘리엥도, 개츠비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현실의 프랑스와 미국은 달랐다. 그들은 신분 상승의 세 번째 단계를 완수했다. 기성 상류층의 세계관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의 창조. 집단적으로 신분 상승한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공간의 탄생.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 미술가 등이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자신들만의 철학과 미학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도전했다.


적과 흑 시대 이후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 앙리 베르그송,  폴 사르트르, 미셸 푸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이 등장해 봉건 귀족 세계관을 대체할 부르주아 세계관을 만들었다. 위대한 개츠비 시대 이후 미국에서는 토머스 쿤, 존 듀이, 엘빈 토플러, 밀턴 프리드먼, 레이 커즈와일, 앤디 워홀, 월트 디즈니,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나와 유럽의 세계관을 대체할 월가와 실리콘밸리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 세계관의 산물이 루이비통과 샤넬이고 애플이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은 그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


레날 부인과 데이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쥘리엥과 개츠비처럼, 2023년의 한국인들은 명품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고 명품 플랫폼을 방문한다. 100년 뒤 후손들은 현재 한국의 명품 열풍을 어떻게 바라볼까. 혹시 그 때쯤에는 한국도 서구 선진국의 세계관을 대체할 독자적인 철학과 미학을 새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선진국들의 인정과 호의를 바라며 안절부절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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