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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큰아버지

by 황마담
큰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나와 동생. 뒤로 나란히, 부모님의 모습도 보인다^^ (오른쪽 할머니는 전혀 모르는 분이다;;;)

젊은 시절, 큰아버지의 모습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우리 큰아버지는,

조선이 독립될 때까지 일본 미야자키에 거주.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기억에서도..

큰아버지는 한국말보다 일본말이 더 유창했다.




큰아버지는,

동생인 우리 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이 났다.


두 분 사이에, 무려 4명의 고모가 있었으니..

단순 계산을 해봐도, 10살 이상이 차이날 수밖에-


결혼도 매우 일찍 하셨어서-

상대적으로 늦게 결혼을 한 아버지가

나를 낳았을 때, 큰아버지의 2남 3녀는

모두 다 왠만큼 자라 있었고..


(큰아버지의 장녀인 사촌언니의 아들이,

삼촌인 내 막내동생보다 1살 많을 정도로..

터울이 심하다;;;)


그 덕에 나는, 오랜만에 생긴 아이로-

큰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엄마와 다른 친척들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땅을 거의 밟지 않고 다녔을 정도로,

큰아버지가 물고 빨고 이뻐하면서, 안아주셨고..


나 역시.. “아빠, 아빠~” 라고 불러대며,
하루종일 큰아버지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보다 큰아버지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큰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커다란 목공소를 갖고 계셨는데,
거기서 뚝딱뚝딱- 가구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무슨 마술사의 마법을 보는 듯-
엄청나게 멋지고 근사했다.


때때로, 남은 짜투리 나무들을 활용해서-
목각 인형이나 팽이, 썰매도 만들어주셨는데..
그걸 가지고, 정말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시골에 내려가면.. 목공소가 나의

놀이터가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고,


일하는 큰아버지의 곁에서,

수북하게 쌓여있는 톱밥을 가지고 놀고, 뒹굴면서-


중앙에 놓여있던 난로에
나무 조각이나 톱밥 등을 태워, 불을 지피고..

거기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정말 달콤했다.




내가 사춘기의 청소녀가 되면서,

큰엄마라는 걸림돌(?!)을 깨닫게 되고..


수험생이라는 그럴듯한 핑계까지 생기자,

큰 집에 갈 일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레.. 큰아버지와도 멀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느라 바쁘게 지내던 와중이었다.


큰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고,

그 와중에도 나를 찾으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대구에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찾아갔었다.


병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큰아버지는
(병명은 기억이 안나지만) 수술 후에-

목에 뚫린 구멍으로 연결된 호스를 이용해서,
죽도 드시고, 가래도 뽑아내고 계셨는데..


"아이고~ 우리 나리 왔네~
나리 보니까, 내가 다 나은 것 같다."


힘겨운 병중에도, 나를 반갑게 맞으시며..

너무나도 밝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런데 이 날의 만남이,

큰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었다. ㅠㅠ




그 날 나는, 빨리 회복해서 건강해지시라고-

또 오겠다고- 굳게 굳게 약속 했었는데..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장례식에 가서야, 임종하시기 직전까지도
자식들이 아닌, 나를 애타게 찾으셨다는...
큰엄마의 다소 원망 서린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 나의 큰아버지... ㅠㅠ

영정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큰아버지의 영정 사진이다.


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어느덧 25년이 다 되어간다.


때늦은 후회와 회한들로...

나는 아직도 큰아버지만 생각하면, 울컥! 하는데-


몇 해 전. 놀랍게도!!

사촌들을 통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큰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마치 봉인이 해제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쏟아져 나온 이야기들과 경험담은

대부분 나쁜 기억들이 훨씬 많아서..

처음엔 충격이었고, 점점.. 참으로 희안해졌다.


모두에게 차갑고 이기적이었던,

심지어 당신 자식들에게까지 냉정하고,

때론 잔인했던 큰 아버지가 왜 나한테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는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꼭 여쭤봐야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최고였던, 나의 큰 아버지...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저.. 지켜보고 계시죠?


당신의 크신 사랑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잘 살다가..

언젠가 저도 그곳으로 가게 되면,

그땐 지겹도록, 꼭! 옆에 붙어 있을께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고 계세요...

너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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