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2학기 때..
아주 넓고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2층의 양옥집이었는데, 화단이 있는 넓은 마당에-
한쪽으로 욕실을 겸한 화장실과 창고가 있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집 외부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층에 거실과 4개의 방과 2개의 부엌이,
2층에 거실과 2개의 방과 1개의 부엌이 있었다.
1층에서 2층은,
외부의 돌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었는데..
계단 중간쯤에는,
장독들을 놓을 수 있는 너른 공간이 있었고..
2층의 집 앞에도,
평상이 놓여 있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이렇게 큰 집을 우리가 독차지 했냐고?
설마... 그럴 리가.... 없다! ㅎㅎㅎ
이 집에선, 도합해서 3집이 같이 살았다.
2층은 당연히 독채로, 세를 주었고..
1층도 반으로 쪼개서, 세를 주었고..
우리는 1층의 반.
그나마 메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거실과 부엌이 딸린 2개의 큰 방에서 살았는데-
그래도, 이전까지 살았던.. 산동네.
단칸방에 비하면, 정말 궁궐이 따로 없었다. ^^
처음에 나는, 이 집이..
우리 소유의 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머지 않아..
사실은 외할머니 소유의 집이었다는 걸 알고-
외할머니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얹혀 살 수 있었다고-
그래서 정말 고맙다고,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그것도 한참 후에..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즈음-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분노해서 쏟아낸,
한 맺힌 말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이 집의 비밀과 진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때,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라는 사람이 딸한테는,
그렇게 악랄하게 자기 집도 월세를 놓고-
아무리 힘들다고 사정을 해도,
한 푼도 안 깎아주거니와, 한 번도 안 빼 먹고,
악착같이 월세를 다 받아 가더니..
그 잘난 장남한테는,
아예 집을 몇 채씩이나 덜렁- 그냥 줘서,
홀랑- 다 말아먹으니까 좋으냐고..
엄마 집에 월세 산다고 하면-
혹시 사람들이 엄마를 흉 볼까봐,
아무한테도,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거렸던 내 속을 누가 아냐고...
겨우 월세 살게 해주면서,
다른 집들 월세 다 받아서 갖다주고-
집 전체의 유지, 보수, 관리까지-
온갖 잡일들을 다 공짜로 마구 부려먹고..
어떻게 엄마가 딸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애들 아빠 보기도 정말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엄마의 말을..
외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오는,
엄마의 외할머니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
나도 그때는 엄마의 감정에 완전히 동조되어,
외할머니가 무척이나 미웠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엄마도, 외할머니도.. 그냥 모두 다 가엾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외할머니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어쨌든, 외할머니 덕분에..
너무 좋은 집에서, 5년 가까이 살 수 있었고-
거기서,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