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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Jul 16. 2024

미사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저는 주말이 되면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립니다. 가끔 마음이 웅장해지거나 뭉근해지거나 울컥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의무감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기계적으로 의례에 참여합니다. 성호를 긋는 때가 되면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외는 순서엔 몸이 기억하는 대로 기도문을 웅얼거리고 성가가 시작되면 악보에 그려진 음을 쓰여진 글자로 소리냅니다. 언제 끝나나, 이제 절반 했네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다가 미사가 끝났다고 하면 그제야 활기찬 얼굴로 성당을 나섭니다.


미사는 저에게 하나의, 통째의 의식이었습니다. 참 길고 그래서 잡생각 할 시간이 충분한 의식.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성당에 다니며 가장 많이 외웠던 기도를 또 되내는데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이 한 문장이 불쑥 저를 붙잡았습니다. 예식은 저만큼 흘러가는데 저는 그 문장과 처음 맞닥뜨린 것처럼 대면한 채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가장 대표되는 기도문에 이 문장을 넣은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바르고 옳은, 행복하고 기쁜 세상을 향한 소망과 그것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마음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후 사제가 미사를 이끄는 문장들과 신자들이 올리는 기도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허투루 선택된 단어들이 아니겠구나, 셀 수 없이 많은 바람과 희망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담았겠구나 생각하니 미사가 문장 단위의 조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어쩌면 삶 역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났으니까 이만큼 살아왔고 아침에 눈 떴으니 오늘을 살죠. 가끔 가슴 벅찰 때도 있지만 많은 날을 큰 감흥 없이 살아갑니다. 봄을 맞고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마저 보내면 또 비슷한 얼굴, 별다를 것 없는 마음으로 계절을 다시 통과합니다. 퇴근시간은 언제오나, 이제 겨우 수요일이네 하면서요.


생을 조각내야겠습니다. 조각 내서 가만 들여다보고 귀기울이면 지금껏 그냥 지나쳐왔던, 허투루 내게 온 것이 아닌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마음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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