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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미동 Aug 22. 2023

국밥으로 위로받는 하루

춘천역 순대박사

작년이었나. 춘천으로 출장을 갔었다. 레고랜드 사태로 좀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강원도청은 조용했더랬다.

여튼 뭐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레고랜드는 춘천역과 가까웠다.


뭐 워낙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터라, 레고랜드는 그저 그림 속의 풍경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가까이서 레고랜드 간판으로 보니, 그냥 막연히 꿈속의 공간만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배고픔이 느껴져 남은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남짓. 주변엔 막국수 식당은 보였는데, 막국수에 소주 한잔 빨기는 좀 그랬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고 조금 걸었더니 순대박사라는 식당이 나왔다... 일단 이름만으로 뭔가 자신감이 느껴지는데...


근데 막상 가보니 새로 지은 건물처럼 말끔하고 널찍했다. 그리고 입구와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있어 주문방식이 매우 현대식이었다. 뭔가 전통적인 순댓국 식당을 생각했던 나로서는 약간 당황스러웠으나 나는 시간이 없고 배가 고팠다. 입장하자마자 직원이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기를 권했다.


기본인 듯한 사골순대국밥과 소주 한 병을 누르니 곧 브레이크타임이라 술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눈을 최대한 슬프게 뜨고는


"아유 일 끝나고 서울 가는데 차 시간이 남아서 그래요... 조용히 빨리 먹고 갈게요... "


힘 빠진 소리로 얘기했더니 고맙게도 허락을 해주었다.



사골순대국밥은 도로 치우기 쉽게 소반에 나왔다. 나도 따로 내리지 않고 소반에 담긴 채로 먹었다.


그리 푸짐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주 한 병과 허기진 배 채우기에는 적당했다. 더욱이 요즘의 나는 살이 쪄서 보는 사람마다 뭐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테이블 한편에 있는 들깨가루와 후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추기름을 부었다. 특별히 양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휘저으니 국물이 붉어졌다.


사골국물이라 그런지 새우젓으로 기본 간을 하고 소금으로 입맛을 맞추니 고소함이 올라왔다. 건더기는 당면순대, 머릿고기, 소창순대 등 여러 가지가 골고루 들어서 소주 한잔과 하기에 딱 좋았다.



요즘의 순댓국은 이젠 더 이상 만만한 국밥은 아니다. 그래도 돈 만원 안짝으로 고기과 국물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순댓국만 한 것이 없다.


고기를 대충 골라먹고 남은 국물엔 밥을 말아 남은 배를 채운다. 밥을 말으니 국물이 더 진득해지고 도 구수해졌다. 더러 국물 속에 남은 고기도 함께 먹으면 생각지 못했던 융합의 맛이 느껴진다.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 아닌가.


적당히 새콤하게 익은 깍두기도 하나 얹어 먹으면 군침이 먼저 반긴다. 생각지도 않게 계속 고기로 소주 한잔씩 하다 보면 금세 병의 바닥에 다다른다.



여행은 아닌 것으로 혼자 이렇게 타지에 올 때면, 비는 차 시간에 순대국밥에다 소주 한잔 하는 것으로 대단치는 않은 위로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하고 말이다.


내일은 전주로 출장을 간다. 거기서 나는 또 어떤 국밥과 소주 한잔을 만나게 될 것인가. 콩나물국밥에 모준 한잔이면 너무 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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