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전문가가 들여다 본 기원 탐구 이야기
오늘의 글∣우주 > 빅뱅 > 시간
어릴 적, 나는 밤하늘이 무서웠다. 반짝이는 별들 뒤로 드리워진 검은 장막이 그러했고, 그 장막을 가로지르며 하늘 끝에서 끝까지 맞닿아 있던 검뿌연 은하수의 기괴한 모습이 그러했다. 밤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던 그때, 세상을 덮고도 남을 듯한 광활함만으로도 밤하늘은 나에게 야릇한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소를 연료 삼아 핵융합을 일으키는 물질의 덩어리가 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공포감을 안겨주던 그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들의 집합체인 우리은하가 눈에 비친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 품었던 궁금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검은 장막 뒤로 숨어있던 우주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아니 그 우주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세월이 흘러가면서 궁금증의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빅뱅이론이라는 게 등장하면서 우주의 탄생 과정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맨눈으로 보던, 그리고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바라보던 밤하늘은 지극히 좁고 단순한 우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대과학이 싹트면서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들여본 이후로 우주는 더 넓어지고 더 멀어지고 더 복잡해져 갔다. 맨눈으로 보던 별과 별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떠돌이별(행성, 行星)이던 목성도 네 개나 되는 위성*을 거느리고 있었다. 오늘날 더욱 정밀해지고 거대해진 망원경은 우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편, 더 많은 우주의 퍼즐 조각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속한 은하의 윤곽을 가늠하게 해주었고, 우리 은하 너머 끝없이 흩어져 있는 다른 은하와 성간 물질들의 존재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도화된 장비들과 이제껏 축적되어온 계산법을 활용해 그것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것들을 역추적해 보았다. 시간을 거꾸로 계산해 보고, 거리를 거꾸로 계산해 보았다는 말이다. 시간은 1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별―물질―들은 한점으로 모아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목성의 위성은 79개다.]
138억 년 전 하나의 점이 있었다. 특이점이라고도 불리던 그 점은 138억 년 전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그 폭발로 공간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막 시작되었다. 우주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우주라고 불리는 우리들의 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빅뱅이라고 칭하는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태초(太初)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뒤이어질 이야기에서 우주의 탄생이라고 할 빅뱅에 대해, 그리고 그 후 발생할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빅뱅, 힘과 물질의 생성, 별, 은하,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블랙홀의 생성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알아두고 가야 할 게 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하던, 빅뱅과 함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건 무슨 말일까? 마치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말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주를 알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바로 질문으로 가보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니 시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 시간의 속성을 재미있게 표현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2067년 인류는 환경오염에 따른 식량난으로 심각한 생존 위기를 맞는다. 인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탐사대를 외계로 보내게 되는데, 출발에서 귀환까지의 과정을 통해 중력과 블랙홀의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 왜곡 현상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지구를 떠난 주인공 일행은 첫 번째 경유지인 밀러라는 행성에 도착한다. 주인공 일행은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 몇 시간 정도를 잠깐 지체하게 되었을 뿐인데, 놀랍게도 지구에서는 몇십 년의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영화 속에서는 밀러행성이 가르강튀아라고 불리는 블랙홀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있다. 가르강튀아의 중력이 너무 강해서 그것의 영향을 받은 밀러행성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해 다시 만난 딸은, 귀염둥이 소녀에서 죽음을 앞둔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위치에 따라, 엄밀히 말해서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당초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시간은 실재하는가? 만약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인터스텔라에서와 같은 시간 왜곡은 왜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고 시간이 실재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개념은 무엇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저녁 나는 분명히 재미있게 TV를 시청했고, 지금 새벽을 보내고 있으며, 곧 아침을 맞이할 텐데 말이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답은 의외로 명료하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간이라는 것을, ‘단지 엔트로피가 증가해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우주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어느 것에서나 예외 없이 엔트로피가 증가해 가고 있는데, 바로 그 과정이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질문이 자꾸 늘어난다. 시간이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라면 엔트로피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엔트로피라는 용어는 우주에서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고 규정하는 열역학 제2법칙*에서 나온 말이다. 사전적으로, 엔트로피란 물질의 열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 중 하나로 계(系, system)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할 때 이용되는 상태함수를 의미한다. 무슨 말인지 어렵기만 하다. 다르게는 엔트로피를 ‘에너지의 무질서도(無秩序度)’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 또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쉽게 예를 들어보자.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던 사과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자. 이제 땅바닥에 떨어진 사과는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지니고 있던 위치에너지를 소진해 버렸다. 하나의 형태로 지니고 있던 위치에너지를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로 분산시켜 버린 것이다. 공기를 가르며 떨어질 때의 마찰에너지와 소리에너지로, 그리고 땅과 충돌할 때의 열에너지 등으로 분산시켜 버렸다는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의 형태로 질서정연하게 존재하던 위치에너지가 여러 형태의 에너지로 무질서하게 흩어져 버렸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사과가 지니고 있던 에너지의 질서도는 낮아진 반면 무질서도는 증가해 버렸다. 바로 이 에너지의 무질서도가 바로 엔트로피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졌다는 건 사과의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다. 물이 흘러가고, 비가 오고, 식물이 자라며, 짐승들이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 이 모든 것이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 밤하늘에 별이 영롱하게 빛나는 것,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 또한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다. 앞서 언급했듯 우주에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것에서나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해 간다.
그리고 엔트로피는 불변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한번 증가한 엔트로피는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오로지 증가만 할 뿐이다. 한번 떨어진 사과가 결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낮은 곳으로 흘러 가버린 물, 재로 변해버린 장작, 핵융합을 일으키며 헬륨으로 변한 수소,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로지 증가만 하는 엔트로피의 속성 때문이다. 이를 엔트로피의 불가역성이라고 한다. 이는 시간의 불가역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도 불린다. 말 그대로 우주 전체에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것에서나 엔트로피가 오로지 증가만 해 간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1 법칙은 유명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그것인데 우주에서의 에너지는 항상 일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과수원 주인이 그 사과를 주워서 원래 위치로 갖다 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사과가 다시 가지게 되는 위치에너지는 원래의 그 위치에너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때 과수원 주인에게도 별도의 ‘에너지 무질서도’의 증가 즉 엔트로피의 증가가 발생한다.]
다시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해 가는 과정이자 현상이다. 시간이란 게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에서의 엔트로피가 증가해 가는 현상일 뿐인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없고 미래란 것도 없다. 다만 우리 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엔트로피 증가 과정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느낄 뿐이다. 그것을 정형화하고 시각화한 장치가 시계며 달력이고, 이를 더욱 거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시간이란 게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라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렇지만 중력이 큰 곳에서는 왜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나? 중력이 큰 곳에서는 왜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가?
중력이 클수록 물질의 활성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잡아당기는 힘이 강한 만큼 물질들은 상대적으로 밀착하게 되고 이는 물질들의 자유로운 상태가 덜해지는 것, 다르게 말해 질서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질서도가 높다는 말은 물질들의 무질서도가 낮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력에 큰 곳에서는 에너지의 무질서도가 낮아지는 것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는 것은 곧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물리학자들이 각자의 독창적인 방정식으로 시간과 중력과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론 즉 중력이 큰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이론은 실제로 증명되었다. 초극도로 정밀한 시간 측정장치인 세슘원자시계 두 대를 저지대인 해안과 고지대인 높은 산의 꼭대기에 동시에 설치해 놓고 시간의 흐름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해안에 설치해 놓은 시계의 시간이 미세하나마 더 느리게 흘러간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중력이 큰 곳에서는 엔트로피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란 게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엔트로피의 증가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인터스텔라에서의 이야기도 쉽게 이해가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블랙홀 근처로의 여행이 불가능하겠지만, 영화의 설정처럼 그렇게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사실 시간 지체는 더욱 크게 벌어져 있을 것이다. 꼬맹이였던 딸아이가 할머니로 변해 버린 정도가 아니라 인류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였을 수 있다. 어쩌면 지구의 좌표가 우주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다. 블랙홀에서는 시간의 흐름, 즉 엔트로피의 증가가 제로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이러한 속성은 우리를 굉장히 당혹스럽게 만든다.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달라지고, 나아가 시간이란 게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려 보자. 우리는 당혹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시간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속성에 관한 진실은 단지 물리학적 세계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들의 뇌, 특히 대뇌피질에선 지금도 복잡한 화학작용과 그 작용에 의해 생성된 물질들을 복잡한 전달체계를 통해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의식작용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식의 흐름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엄연히 정립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의식의 흐름의 거대한 집합체가 지나간 시간인 과거인 것이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도 한 현재인 것이고, 다가올 시간인 미래인 것이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 몰라도 우리들의 의식 속에선 시간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수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시간과 관련된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지구만큼이나 큰 쇠구슬 위로 100년에 한 번씩 물방울이 떨어져서 결국 그 쇠구슬을 관통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아마도 천문학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그 시간도 무한대의 시간에 비교하면 찰나(刹那)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주급 시간의 장구함을 묘사한 재미있는 비유다.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億劫)의 시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우주여행에 앞서 알아본 시간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