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 달 이야기 > 달의 초상 ③-②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으로 정렬할 때, 달은 제 그림자에 가려 있어 지구로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태양을 거의 직선으로 등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태양과 동시에 떴다가 동시에 지기 때문에 이때는 달을 볼 수 없다. 우리에겐 마치 달이 뜨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의 달을 삭(朔) 또는 신월(新月, New moon)이라고 하며, 음력의 초하룻날(1일)로 삼는다.
음력 초이튿날(2일)이 되면 달은 이제 ‘태양-달-지구’의 일직선에서 왼쪽으로 12° 정도 벗어나게 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부지런히 공전을 했기 때문이다. 거리로는 8만 2천킬로미터 정도를 달렸다. 하지만 이때도 달이 태양과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시각상 너무 가까운 각도에 위치해 있어서― 사실상 달 관측이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음력 초사흗날(3일)이 되면, 해가 지고 난 직후 서쪽 하늘 낮게 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초승달이다. 이제 달은 일직선에서 왼쪽으로 24° 정도 벗어난 곳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벌어진 각도 만큼 우리에게 얼굴을 내보인다. 볼록한 면을 오른쪽 아래로 늘어뜨린 채 말이다. 태양과의 거리도 이제 적당히 멀어진 관계로 해가 지고 나면 짧은 시간이나마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영어로는 Waxing crecent moon이라 하고, 일본어로는 미카즈키(三日月)라고 한다. 미카즈키는 삼일에 뜨는 달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미월(眉月)이라고 해서, 눈썹달이라는 예쁜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다. 우리말인 초승달은 처음 나타나는 달이라는 뜻인 초생달(初生달)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공전이 계속 진행될수록 달의 모양도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음력 초이렛날(7일) 또는 초여드렛날(8일)이 되면 드디어 반달이 뜬다. 신월 내지 초승달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차오른 반달을 상현 또는 상현달(上弦달)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상현달은 태양과 달과 지구가 직각을 이룰 때 나타난다. 지구의 정면에는 태양이, 그리고 왼쪽으로 90° 지점에 달이 위치하고 있어 달의 오른쪽 절반이 우리 눈에 반달로 비치는 것이다. 상현달은 오후 6시가 되면 하늘의 정중앙 부근 남중고도(南中高度)에 바로 나타난다. 낮 동안에는 태양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희미하게 흰색으로만 보이다가 해가 지면 하늘의 한가운데에서 은백의 달빛을 뿜어낸다. 그리고선 서쪽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다가 자정이 되면 서쪽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다. 우리가 어릴 적 부르던 동요 ‘반달’에서 돛대도 달지 않고 삿대도 없이 하염없이 서쪽 나라로 가던 반달 배가 바로 상현달이다.
상현달이 되고 나서부터는 홀쭉하던 달의 배가 볼록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선 공전이 계속 될수록 배가 점점 불러 오다가 음력 보 름날(15일)이 되면 마침내 보름달(滿月, 望)이 된다. ‘태양-지구-달’의 순서로 세 천체가 일직선에 위치하면서다. 한때 모습을 감추었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여신 아르테미스가 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어둠이 지배하던 밤의 세계에 교교한 달빛을 흩뿌리며 말이다. 보름달은 오후 6시가 되면 동쪽 지평선에서 환한 모습을 드러낸다. 자정이 되면 남중고도에 위치했다가 오전 6시가 되면 서산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낮의 주관자인 태양과 정확한 시각에 정확하게 임무를 교대하는 셈이다. 이 보름달이 바로 글머리에서 이야기하던 양분되어 있는 낮과 밤의 세계에서, 밤 세계의 진정한 주관자이자 온갖 전설과 신화의 주인공인 그 달이다.
<불로뉴항의 달빛> 에두아르 마네, 1869
보름달이 뜬 밤에 느낄 수 있는 주변 풍광의 색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③-③ 보름달에서 그믐달까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