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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인간들

4. 인두껍

by 금봉 Oct 10. 2023

1-1



『한 남자가 그린 그림 속 여자가 20년 전 자신을 망쳤던 여자라면 어떤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과연 해석이 필요한 일일까?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동경하고 있다. 증오의 대상이라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감정의 표현이다』


『그림이 나타내는 기운은 가히 사악하다.
 악마와 악마가 마치 손을 잡은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


눈 속에 모래알을 뒤집어쓴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한 자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나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 나갔다. 나는 다시 또 그들에게 휘말리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눈에 익은 이름을 보았다.


김수목 기자

설마, 이 놈이 내가 생각한 그놈이 맞는 걸까? 

사실 우석이는 아주 가끔 내게 메일을 보냈다. 

한국에 들어오기 며칠 전 우석이와 갑작스러운 전화 연락에 수목이의 목소리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설마 우석이 아버지 회사에 기자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수목이가 나에 대해 이런 기사를 쓸 일은 없지 않은가, 확인이 필요했다.

나의 분노가 수목이에게 닿기 전에 시급하게 확인해야 했다. 


20년 전 내게 우정과 응원을 다짐했던 우석이는 나를 피했다. 

또다시 열다섯 그때처럼 우리에게 장애물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아니, 20년 전 그 사건이 터진 이후로, 어쩌면 우석이는 나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윤리적 방황에서 발목 잡혔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우석이를 미워할 수 없고 또한 배신도 이해도 동시에 느꼈다. 

우석이는 나의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았다. 들리는 통화음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젠장, 받고 싶지 않다니까? 꺼져.

하지만 난 확인해야 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한참 후, 녀석의 목소리를 들었다.

“흐음, 그래 한주”

나는 꼭 할 말만 뱉었다.

“물어볼 말이 있어
 혹시 수목이, 김수목 말이야
 김수목 기자가…”

우석이는 한참 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김수목 기자는 20년 전 그 수목이가 맞다는 것이고 그 기사를 우석이도 읽었다는 뜻이다. 

분명하다.

“수목이, 맞아”

나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 

우석이와 내가 아는 것을 다시 대화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서로 불편한 이 시점에서는 더욱.

우석이가 먼저 말했다.

“만나서 얘기할까?”

“고맙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석이의 제안에 넘어갔을까, 굉장히 충동적 약속이었다. 


사실, 나는 밖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누군가가 그게 악마라 해도 나를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길 바랐다.

더 이상의 홀로,라는 외로움의 씨앗을 품고 있고 싶지 않았다. 


은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자식 만나는 거, 예감이 안 좋아
 20년 전에도…”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갑자기 은수가 이층으로 뛰어가더니 모자와 후드 티 그리고 마스크를 내게 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살아야지, 한주야”

은수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아마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일 거다.


우석이와 나는 재회했다. 

내가 이상한 곳에서 감정이 치닫는 건 나의 문제일까, 우석이의 문제일까? 나는 먼저 자리 잡고 앉아있는 우석이의 뒤통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뒤통수를 보자마자 굉장히 열렬히 들끓는 감정이 목 안에서 훅,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뜨거웠다.

아, 이건 분노일까, 배신일까, 그리움일까.

“최우석
 오랜만이다”

우석이가 돌아본다. 

우석이는 열다섯 때의 얼굴을 그대로 두고 주름 몇 개만 그어 놓은, 정말 그때의 모습과 같았다.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유인”

우석이는 나를 그렇게 불러 놓고 스스로 놀란다.

“아, 미안 한주”

우린 20년 공백이 있었던 사이다,라고 자랑하듯 어색함에 무언으로 치를 떨었다.


우석이는 이 찜통 같은 더위에 긴 옷을 입고 있었고 그 길이는 너무나 길어서 손가락의 한마디만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우석이는 벌써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뭔가 위축되어 보였다. 

녀석은 어깨를 아예 앞으로 말아 쥐고 있었다.


우석이가 술잔을 들어 올렸을 때 나는 보았다. 

20년 전 보다 더 선명해지고 많아진 팔목 위, 선명한 칼자국.


갑자기 나의 눈썹 위 상처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움찔한 나의 눈썹을 우석이가 눈치채며 말했다.

“그거, 많이 흐려졌다”

나는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우석이의 선명한 팔목의 자국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난 물어볼 수 없었다. 

잘 지냈어? 요즘 어때?라는 말 따위의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이 자리에 나온 녀석은 나보다 더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김수목은 말 그대로 기자야
 뭐 기자가 할 일을 하는 거지
 기자는 모든 이슈에 대해 귀와 눈을 열고 있어야 하니까”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너무 사실을 잘 알아서 놀랐을 뿐이다”

“잘 알다니?”

“김수목이 쓴 기사가 틀리지 않다는 얘기지”

우석이와 나는 수목이의 이야기를 더 이상 나누지 않았다. 


우석이는 현재 딱히 하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빈둥거리지도 않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우린 함께 미술과외를 받았고, 그때 실력은 우석이가 한 수 위였다. 우석이가 그린 그림은 모든 선생들의 입술 위에서 동동 떠 다닐 정도로 유명했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5년 전부터 작업을 멈췄다고 한다. 

더 이상 머릿속에서 나올 것이 없었고 남이 그린 그림을 다시 그려내고 팔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우석이가? 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술잔을 들어 올리는 우석이의 손 떨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해지고 있었다. 내게 자꾸만 들키는 우석이의 손 떨림을 나는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저 손 떨림으로 무슨 창작을 한단 말인가?

“그만, 일어나자”

우석이가 고집을 피웠다. 

“조금만 더”

“너 벌써 주량이 넘어선 거 같아”

“술은 그래서 마시는 거 아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번 우석이의 손 떨림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말했다. 목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옴을 느꼈다.

아, 심장이 아팠다.

나는 말했다.

“먼저 갈게”

우석이가 술잔을 내리쳤다.

“왜? 성공한 사람의 절제라도 보여주는 건가?”

“간다”

우석이가 나의 뒤통수에 대로 소리쳤다.

“그렇게 차분하기까지 한 모습이 조금 질리긴 하지
 어릴 적에도 넌 그렇게 늘 말도 안 되는 곳에서도 차분했어
 그럼 좀 어때?
 넌 또다시 유명해졌지, 안 그래 유인?”


유인, 이라는 말에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다. 


아, 이 박쥐인간들은 유인을 정말 잊지 못하는 건가?

대체, 녀석은 왜 내게 분노를 느끼며 말하고 있는 거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주변의 눈길을 느끼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렸다. 이번엔 사냥이 아닌 그 사람 손에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의 걸음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클랙슨이 울렸다. 아, 구세주 은수다.

“얼른 타”

나의 모든 땀구멍에서 물이 질질 나왔다.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숨을 크게 쉬었다. 

“미친 새끼”

나는 은수를 보았다.

“나쁜 새끼들”

“무슨?”

“걸려들었어, 바보야
 너 말이야, 완전히 걸렸어
 함정이야”

“알아듣게 말해”

“녹음파일… 
 우석이란 놈이 너 팔아넘겼어
 김수목이 네 얼굴을 정면으로 아주 잘도 찍었더라
 하, 얼른 찾아봐”

손바닥이 땀으로 미끈거려서 휴대폰을 잡을 수가 없다. 나의 손가락이 우석이의 손처럼 덜덜거렸다.
나는 김수목 기자의 기사를 먼저 찾았다. 

세상은 이렇게 참 빠르고 더럽다.

우석이가 내게 이럴 수 있을까


『유한주, 유인
 그가 말한다 그때의 유인은 피해자가 아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애, 의 관계
 목덜미의 점 여인과
 겨우 열다섯 아이
 그리고 연인』


그리고 우석이에게 말했던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수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말했다.

“개자식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세워 줘”

“제정신이야?
 아예 뉴스에 나오고 싶어서 그래?”

“그 자식 얼굴이라도 보게”

“오늘은 아니야”

내가 믿음의 존재에게 뒤통수를 맞는 건 두 번째다. 

처음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는 너무 어렸었다. 나는 지금 완벽한 성인이다. 이 배신은 끔찍한 결론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유를 알아야 했다.


정난희의 목소리가 귀에서 윙윙거렸다.

“유한주, 사람 손을 쓰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이 집안의 특기였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서 윙윙거렸다.

“한주는 참 아버지와 똑 닮았어”


내가 분노한 이유는 기사 내용 때문이 아니다. 내가 믿은 의리가 배신으로 남았다는 것이 분노를 부추겼다. 

이제 나의 열다섯 동영상은 호기심을 갖고 볼 영상이 못 되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엘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석이를 만난 후, 일주일 동안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마늘 냄새를 맡으며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는 내게 포기,라는 단어로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의 부자관계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내가 바라는 바다.

나는 이제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홀로 독립된 곳에서 내가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을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계획들이 적힌 오래된 수첩을 꺼내 보았다. 

수첩 맨 끝 최우석, 이름 석자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괄호 열고 김수목, 괄호 닫고.

나는 다시 유명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린 박쥐 시리즈가 나의 허락도 없이 무분별하게 반복적으로 찍어 팔리고 있었고, 어머니의 갤러리에는 사람들이 붐벼,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점점 도태되어 가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완벽하게 알려졌고 나의 순수했던 열다섯 살은 환락, 이라는 단어로 얼룩졌다. 

그들은 나와 그녀는 연인사이, 그리고 그녀는 어린 연인을 팔아넘긴 희대의 마녀가 되었다. 


사실, 그건 맞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나의 이야기는 해외 토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진실 혹은 거짓을 논하며 매일 같이 나는 언론과 TV프로그램의 주제에 실렸다. 


잠깐의 외출도 그들은 나를 허용해 주지 않았다. 

아마 내가 변기에 앉아 이를 갈고 있었을 때도 그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다시 비행기를 탔고 나는 이를 악 물어 부러진 치아를 하나둘씩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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