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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인간들

5. 나소희

by 금봉 Oct 10. 2023


1-1



2년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진흙탕 싸움 끝에 합의 이혼을 했다. 

정난희의 말을 듣자 하면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나의 아버지가 더 많은 것을 얻고 날개를 날았다고 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많을 것을 쥐고 있었던 나의 어머니는 쥐고 있던 것까지 아버지에게 빼앗겼다.


아버지에게 이혼은 정말 정난희의 말처럼 해피엔딩이다. 

아버지는 조금 더 많은 돈방석에 눌러앉게 되었고 이혼이라는 불행의 단어가 아버지의 회사를 조금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유인이라는 존재를 낳은 불륜을 일으킨 어머니와 이별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았고 정의롭지 못한 곳에서 벗어난 아버지,라는 존재로 그렇게 그를 만들어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일으킨 불륜이라는 사건이 툭, 튀어나오더니 더 이상 나의 이야기는 허공을 떠돌지 않았고 그들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탈탈, 털려 허공에서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모든 언론은 잔치를 벌이고 또 벌였다. 

하다못해 유한주는 어머니가 결혼 전 낳은 사생아라는 이야기도 맴돌았다. 하지만 언론의 여러 함정 중 대중들이 절대 걸려들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나는 성형수술을 또, 했다. 

나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박쥐인간들을 위해서다.

나의 달라진 얼굴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당연히 정난희다. 

정난희는 늘 그랬듯 비열한 웃음을 날려 주며 말했다.

“멋지네”

당연히 나도 대답했다.

“고마워”

달라진 나의 얼굴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움을 찾아갔고 혹독하게 관리한 나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가고 있을 때 다시는 떠나질 않을 듯한 걸음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나의 다리가 땅에 박힐 것처럼 나는 세게 또 세게 걸었다. 


나의 이야기가 중단된 한국은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새 집을 마련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깨진 지 오래다. 

그 속에 이물질처럼 섞여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새로 마련한 나의 집은 겨울에도 초록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길게 뻗은 소나무 밑으로 보이는 마른 갈색 솔잎이 그것을 말해준다. 

정난희가 집을 소개하며 말했다.

“그곳은 사모님 아버지 그러니까 한주 씨에게 외할아버지 그분 별장이었어
 관리는 꾸준히 되고 있었으니까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야
 아참, 관리인 숙소가 가까이 있으니까
 마주치면 친절히 대해줘
 그 사람은 살아있는 역사니까”


어머니는 이렇게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에 선을 그었고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명의 이전은 완료야
 축하해 한주 씨”

두 시간 내내 말없던 택시 기사가 내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택시에서 내리려던 찰나 나는 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사실 이렇게 들어오면 요금을 더 주셔야…”

나는 말없이 오만 원권 두 장을 기사에게 더 내밀었다. 

기사는 뒤를 보기도 힘들어 보이는 뻣뻣한 몸으로 내게 연신 굽신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요금 더 주는 게 맞는 거라면 당당하게 받을 것이지 왜 굽신거리는 걸까?

저 굽신거리는 고개를 다시는 숙이지 못하도록 빳빳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욕이 튀어나왔다.

“씨팔”

쌓인 눈 위로 그 누구도 걷지 않은 모양이다. 

언덕 위로 우뚝 선 집이 가깝게 보이긴 했지만 눈을 밟고 걷을수록 그 거리는 멀게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지만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집이 갖고 있는 자연은 장관이다. 

집 주위를 아우르고 있는 하늘 위로 뻗어 난 침엽수는 마치 거인이 집을 지키고 있는 모양을 연상케 했다. 

자연이 주는 위압갑에 조금 위축이 되었다.

집을 두고 좌우에 별채가 한 채씩 붙어있었다. 

쌓인 눈 위로 같은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발 한번 작군”

내 몸의 세 배 만한 문을 무작정 밀었다. 


따르르릉르르릉

누르지도 않은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정말이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다.

“젠장”

빛의 속도로 뛰어나오는 발 작은 여자, 여자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지만 굉장히 빨랐다. 

여자는 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고개만 숙인 채 말없이 인사했다. 

“이 젠장할 소리나 좀”

여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기계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다시 적막이 시작됐고 나의 눈두덩이도 더 이상 실룩거리지 않았다. 


나는 여자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오르는 여자의 다리가 불안정해 보였지만 여자는 정말이지 빨랐다. 장애에 꽤나 숙련된 모습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연습을 해야 해 연습을…”

여자가 처음으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의 방문이 열리고 여자는 자연스럽게 커튼을 치고 공기 순환 버튼을 눌렀다. 리모컨처럼 생긴 그것에 이 방의 모든 조절 시스템이 모여 있는 모양이다. 

여자는 다시 리모컨을 누르며 방안의 조명을 조절한다. 

내가 말했다.

“됐어 내가 해요”

나는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창문 고리를 잡아당겼다. 

꿈쩍하지 않는 고리다. 그제야 여자가 입을 열었다.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장에 있는 여러 개의 기계장치를 가리켰다. 

창문을 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다시 창문의 고리를 세게 잡아당겼다.

“이건 원래 잡아당기면 열리는 창문이라고"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열리지 않습니다”

별것도 아닌 창문의 고리 따위가 갑자기 나의 분노를 치닫게 했다. 

나는 반복해서 꿈쩍하지 않는 고리를 잡아당기다 유리창을 발로 세게 찼다. 

여자는 놀라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숙이며 어지러운 모양의 수가 놓인 카펫을 내려 볼 뿐이다.

나의 포기는 빨랐고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노인네가 정신이…”

여자가 말했다.

“가방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냥 둬”

여자는 발처럼 대답도 빨랐다.

“네”

여자는 리모컨을 내게 내밀며 유일하게 붉은색을 띤 호출 버튼을 가리켰다. 그리고 또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정말이지 말을 아끼는 여자다. 행동으로 상대방을 이해시킨다는 것 또한 많은 연습을 했을 터다. 


다행히 열 수 없었고, 깨지지도 않는 유리지만 넓은 창과 넓은 방 덕에 답답함은 없었다. 

세 사람이 앉아도 될만한 1인용 소파에 나는 털썩, 앉았다. 

이제 이곳에서 다른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계획한 다른 인생은 이곳에 흡수될 것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난희다.

“어때?”

“용건이나 얼른 말해요”

나는 정난희에게 부탁한 여러 가지 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지
 먼저 그 자식은 필리핀으로 튀었어
 마지막 동선이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잡아탄 모습이야
 그렇다는 건 그 자식을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 여자는 거주지가 그대로야
 그 자식이 버리고 간 거지, 모든 걸 다 갖고
 음, 그리고 최우석
 여전히 마약에 빠져 지내는 중이야
 이젠 가족들도 포기한 상태야
 아주 심각한 상태지
 김수목 기자 같은 경우, 최우석을 대신한 그 집안의 아들 노릇을 한다나?
 참, 재밌지?
 돈이란 게 이런 거지, 안 그래?”

말을 더 이어갈 듯한 정난희의 신음소리를 잘랐다.

“최광식과 부모님의 연관관계는?”

“하, 그건 내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연관관계는 최우석과 한주 씨가 친구였기 때문에 알게 된 것
 그것 하나야”

“당신 바보야?
 그 이유 하나 갖다가 자기 아들의 친구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털어봐야 아무것도 없어 
 그냥 그게 다야”

“분명히 뭔가 있어
 어머니의 불륜설을 만든 것도 최광식 회사라고
 알고 있지 않았나?”

“뭐 한국에서 제일 큰 언론사니까
 이슈에 관한 가장 먼저 열일하지 않겠어?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나는 마치 정난희가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한주 씨도 이제는 좀 조용히 있어
 잘 살아봐야 할 거 아냐?”

나는 절대 통할 것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

“당신이나 잘 살고 싶으면 말 조심해”

전화 너머로 정난희가 웃었다. 

“진짜 달라졌군 한주 씨”

나는 정난희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를 바득바득 갈고 눈을 번뜩였다.

“최광식 부모와 외할아버지 관계를 찾아봐 줘”

정난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한주 씨, 나는 사모님의 비서야
 사모님이 한주 씨가 이렇게 캐고 있는 거 모르고 계실 거 같아?”

나는 정난희를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안 됐군, 그렇다는 건 진짜 비밀이 있다는 거고 그걸 들킨 것 아닌가?
 그리고 정난희 당신은 뭔가 알고 있는 거고, 안 그래?”

정난희는 역시 침착했다.

“한주 씨, 정말 달라졌네?
 뭐, 그런 예리함 인정해 주지
 그리고 그 말, 틀렸다고 하진 않을 게
 그러니까 그 예리함으로 한주 씨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터는 건
 당신이 알아서 해"


나는 불현듯 떠올랐다.

엘프에게 욕을 퍼붓고 협박을 하고 필리핀으로 몸을 숨긴 그 자식도 최광식의 짓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짐작은 거의 확실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예감을 믿었다.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한국의 혹독한 겨울에 조금씩 적응되고 있을 때 즘, 이제는 깊은 산속에 쌓인 눈까지 모두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집 주위로 발자국을 만들면서 뛰어다닐 맛이 났던 터였다. 


나는 내가 디딜 수 있는 땅이 어디까지 인지 확인하기 위해 여자와 동행해야 했다. 

여자는 마치 이 짓을 수십 번 해봤던 사람처럼 짐 싸기에 능한 모습이다. 

내가 물었다.

“이름?”

여자가 대답했다.

“강복희입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다 강복희의 눈과 마주치더니 쑥 들어가 버렸다. 

강복희는 다리를 절며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매일 운동으로 단련하고 있는 나의 다리도 피곤함을 느낄 정도였다.


점점 가파르고 좁은 길로 다다르자 나의 숨이 되려 목구멍을 막으려 들었다.

“강복희 잠깐만 잠깐”


강복희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비켜서서 배낭을 땅에 내려놓으며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땅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앉았다. 그리고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온전치 않은 쪽 다리 종아리를 쓱쓱 문질렀다. 


나는 배낭 속 다 녹은 얼음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땀인지 물인지 턱밑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축축하다.

“다리는 언제 다쳤지?”

“오래됐습니다”

“어쩌다?”

잠시 멈칫하며 눈을 치켜뜨는 듯하다 대답했다.

“떨어졌습니다”


강복희는 다시 일어나 배낭을 둘러 매고 내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렸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복희는 강했다.


한참을 걸어 사유지의 끝에 다다랐다. 굵은 철조망을 군데군데 쳐 놓은 모습이었고 사유지라고 적힌 종이가 너덜너덜 달려 있었다. 


정난희는 내가 갖게 될 땅에 대해서 어마어마, 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정난희가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넓이는 짐작도 안될 만큼 대단했으며 또한 물이 흘렀고 전망이 좋은 절벽에 서서 야호,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전망이 좋았다. 


이런 곳이 사유지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곳을 내게 떠 넘기다시피 한 나의 어머니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강복희가 묻지도 않는데 말을 한 건 처음이다.

“봄이 오면 이곳은 정말 장관을 이룹니다”

나는 절벽 끝에 서서 봄에 장관을 이룰 나무를 내려보았다. 

“조심하세요 떨어집니다.”

“허엇”

떨어진다는 말만 들어도 절벽 밑 풍경에 오싹해졌다. 



1-2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다. 

2년 전 풍경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드문드문 있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 어떻게 순식간에 사라졌을까, 집이 모여 있던 곳은 비포장 도로로 알 수 없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고 밤이 되어도 날리는 흙먼지가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만약 그 슈퍼가 사라졌다면 나는 이곳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슈퍼 안은 불이 켜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년 전 그녀가 했던 말처럼 그녀는 정말 삶에 의욕이 없었던 모양이다. 

슈퍼 앞은 바람에 또는 빗물에 휩쓸려온 쓰레기들이 산더미다. 

그녀가 발을 디디고 과연 슈퍼 밖을 나와보기 라도 했을까. 


또다시 이틀째 슈퍼 안은 불이 켜져 있는 체 두문불출이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응징해야 할 그 자식은 도망간 상태이고 마치 자신이 폐허인 것처럼 저 안에서 삶을 마감한 것만 같은 그녀를 보아야 한다니, 이건 지옥일 것이다. 


죽음도 예쁘게 맞이할 거라고 말했던 그녀다. 


밤 11시다. 12시를 넘긴다면 또 하루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 속에 단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꺼진 적 없는 불이 잠시 흔들흔들거리다 다시 멈췄다.

미닫이 문의 끝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끊어지게 들리도록 나는 애를 썼다. 미세하게 텔레비전의 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좁은 공간에서 나의 걸음이 빨라지는 순간이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방 문을 천천히 열었다. 

“악 이런”

악취가 진동을 했다. 

눈을 바로 뜰 수 없는 공기가 돌아다녔다.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다. 

아버지의 마늘 냄새 보다 더 공포스러운 냄새였다. 

“이런 젠장”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얼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보니 확실히 엘프가 맞다.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가 있어”


엘프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야말로 그녀는 폐허였다. 

동그랗게 고인 핏물에 엘프의 손가락이 담겨 있었다. 아주 깊게. 

그녀의 목덜미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하트 모양의 점이 나를 노려보았다. 이대로 놓고 갈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구해온 방수포로 그녀가 다치지 않게 덮은 후, 휠체어에 묶었다. 차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움직이지 않도록 동여맸다. 공업용 마스크를 써도 이 기분 나쁜 냄새는 새어 들어왔다.


슈퍼 안에 있는 세정제와 헝겊으로 좁은 방의 모든 이물질을 닦아냈지만 오래된 장판 밑으로 모든 이물질이 배어 있을 것이다. 


큰일이다. 

내가 그녀를 죽인 것처럼 죄책감이 밀려오고 있다. 

그녀 옆에 떨어져 있던 과도,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진, 누가 봐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답지 않은 더러운 죽음을.

흉한 모습으로 죽음을 선택한 그녀를 원망해야 하지만 내게 죄책감이 옥죄어 오고 있었다. 

나의 못된 상상이 나의 입을 중얼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니잖아, 이런 젠장, 젠장, 젠장"


나의 선함이 악함을 이겼다.


장판을 들어 시멘트 바닥을 닦아도 또 닦아내도 핏빛은 지워지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찾아야 했다. 


나의 직감이 선택한 두꺼운 수첩을 챙겼다. 그리고 모든 형광등 스위치를 망가뜨렸다. 

슈퍼 안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이도록 던져두고 핸들을 잡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공사가 계속 진행되는 기간 동안 분명 이곳에 사람이 발걸음을 할 것이다. 그렇게 경찰까지 오게 된다면 운이 나쁘면 난 그 어떤 변명도 해 보지 못하고 철창신세가 될 것이다.

찰나의 순간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고 그녀를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핸들을 잡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나는 손을 떨고 있었다. 

처음으로 맡아본 남의 죽음의 냄새, 떨림과 동시에 흥분을 느꼈다.


역시 이 집은 어둠과 친밀하다. 

어느새 찾아온 어둠은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사방이 키 큰 침엽수의 그림자로 뒤덮여 있어 어둠 속의 어둠은 말할 것도 없이 공포스럽다.


나는 강복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마도 내일 저녁이나 도착할 것이다. 

최대한 차를 문 가까이 세운 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사유지를 함부로 누군가 들어올 리 없지만 나는 두려웠다. 

아니, 왜 내가 두려워야 하지? 

이곳은 나의 영역이지 않은가, 그 누가 될지라도 무단침입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동은 제법 빠르고 치밀했다. 휠체어를 빠르게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집 주위를 살폈고 집 안을 커튼으로 모두 감쌌다. 


나의 이 큰 공간에 슬픔이 가득 찼다. 공기 속에 우울함이 잔뜩 배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이 여자를 원망해야 했고 죽여버려도 아깝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녀를 들어 올린 순간 백지장처럼 가벼운 무게에 심장이 타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스치는 생각.


엘프도 피해자였을까?


이 여자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나는 그녀를 씻기기 시작했다. 

정체도 모를 오물들을 모두 닦아내고 락스로 몇 번이나 몸을 헹궈냈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더 이상 오물들은 나오지 않았고 새벽처럼 푸르고 바다처럼 차가운 그녀의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목덜미 하트 모양의 점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뼈는 피부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뼈의 날카로움이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앙상했다.

“대체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나
 꼭, 당신을 벌하고 싶었다
 하긴 당신도 끄나풀에 불과했겠지”


물기를 모두 닦아낸 그녀의 목에 붉은색 목도리를 감았다. 

감색이 도는 담요로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았다. 마치 신생아를 싸개에 넣어 둔 모양처럼.

그리고 난 벽난로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를 마주하고 두꺼운 수첩,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마치 글자를 적을 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처럼, 글자를 꾹꾹 눌러쓴 자국이 선명하다.

과연, 이 이름이 그녀의 이름일까?

나 소 희


그녀는 나는, 이라는 단어 대신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모든 글이 그랬다.

역시 가족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놀랐다. 두 장의 초음파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맙소사”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렇지가 않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보니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10년 10월

나소희는 가족이 없으며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했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출산했는지 유산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순간 그 자식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문신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그놈, 마치 입술과 눈도 문신 같아서 악마,라는 것만 떠오르게 했던 그놈, 그놈의 아이일까.

만약, 아이를 출산했다면 자신 혼자 살겠다고 필리핀으로 도망치진 않았을 거다. 

아, 아니다 악마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소희는 굉장히 오랫동안 랜선의 어두운 땅 속에서 일을 했다. 

그녀의 두꺼운 수첩이 말해주고 있었다. 

몇 명, 아니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그 땅 속에서 헤매다 지쳐 고꾸라졌을까, 나만이 피해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나는 이제 나를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나소희의 모든 글의 끝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악마다, 그만 끝내고 싶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 들어 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20년 전 그녀는 19살이었다. 

성인인지 미성년자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나이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그 어두운 땅 속에서 매일 같이 옷을 벗고 웃음을 흘리고, 자기라는 말을 남발해야만 했다. 그렇게 돈이라는 것을 얻고 고스란히 자신의 몫도 챙겨보지 못한 채 20년을 살아온 것이다. 


감옥에 가는 것을 왜,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그나마 덜 지옥 같았을 심정이었겠지, 더 이상 그 지옥에 발을 들이지 않아도 될 테니, 당연히 그녀에게 그건 아주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도 발 없는, 도망치지 못하는 붙잡힌 상태에서의 사냥을 쭉 당해왔다. 

사냥, 그래 사냥.


살아있는 것이 끔찍하다,라는 그녀의 글을 본 순간 그녀에 대한 분노를 눈물로 끝맺었다.

나는 그녀를 나의 땅에 묻었다. 

캄캄한 밤 그녀를 업고 절벽까지 오르는 건, 마치 내가 대단한 등산가라도 되는 것처럼 고되고 보람된 일이었다. 

‘얽매지 말고 훨훨 날아가
 더 이상 당신을 묶고 있는 건 없어’


그날 정오, 강복희가 슬리퍼를 신고 한쪽 다리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꼬리가 길면 안 되는 법이다.

나는 윗옷을 걸칠 새 없이 일층으로 내 달렸다. 굳게 잠겨 있는 커튼을 열어젖히고 강복희를 찾았다. 

요란하게 울리는 벨이 꺼지기도 전에 강복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분명 강복희의 발 끄는 소리가 들렸었다.

“언제 왔지?”

강복희가 대답했다.

“방금 왔습니다, 시키신 건 작업실에 두었습니다.”

“아, 고마워”

강복희가 나의 벗은 상체를 보더니 황급히 돌아섰다. 

“아, 미안 미안”

“점심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역시 산속에서 산다는 건, 시간을 매우 절약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오늘은 어머니가 머물고 있는 새 집을 찾아야 하는 날이다. 물론 누나 은수도 약속이 되어 있다. 


어머니는 무슨 신혼집이라도 마련한 것처럼 내게 말을 끊지 않고 자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수국 다발을 차에 실었다. 꽃 값은 아버지가 말했던 내 목숨 값 보다 더 나갔다.


희한한 일이다. 어머니의 집도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의 집, 그러니까 지금 나의 집처럼 높은 곳이다. 그리고 초록색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마치 나의 집을 복사 키를 눌러 붙이기, 라도 한 것처럼 같았다.

이곳은 나의 집 보다 눈이 더 쌓여 있었다. 

“엇”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너무 놀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문 앞에 떡하니 서있는 사람은 마치 아버지의 젊음을 얼굴 위에 그려 넣은 것처럼 비슷했다. 

순간 아버지의 얼굴을 닮은 나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 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아주 더러웠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아, 이런 이 남자는 외국 사람이다. 눈을 마주치기도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누나 은수가 나를 반긴다.

“한주, 어서 와
 얼굴 잊어버릴 뻔, 앗, 그 얼굴은 잊어도 되는 건가? 하하”

“재미없어”

어머니는 늘 그렇듯, 여왕벌이나 앉을 법한 화려한 의자에 앉아 두 팔을 들어 올려 나의 목에 둘렀다.

“어서 와 내 아들
 더 잘 생겨졌다니, 이런 이런”

어머니는 나의 볼에 키스했다. 

역시 화장품에서는 오래된 크레파스 냄새가 난다. 아무리 고가의 것이라도.

정난희가 손뼉, 세 번을 마주친다.

“짝짝짝”

“다들 모이셨으니, 저녁 식사 시작하시겠어요?”

어머니가 정난희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난희는 다시 늙은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썩 내키지 않던 자리였지만 역시 식구는 식구인 모양이다. 온몸과 뇌의 긴장이 풀리며 마치 따뜻한 정종을 몇 잔 들이켠 것처럼 몸이 노곤했다.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를 본 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느 때보다 더 지금 빛이 나도록 웃고 또 웃었다. 어머니에게 모정을 느끼지 못하는 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물 보다 진한 피는 들끓었고 간질거렸고 감사했다.


은수는 샴페인을 한번 홀짝거리면 나를 한번 보고 외국인 남자를 한번 보고 웃음을 참듯, 풋 하며 뱉었다. 

나는 눈짓으로 그만 보라며 다그쳤다.

오랜만의 우리의 식사 시간은 꽤 괜찮았다. 

은수와 나는 어머니 집을 구경했다. 

은수가 들고 있는 샴페인 잔이 이제는 얼룩얼룩하다.

은수가 말했다.

“나, 이 집에 들어오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가 그걸 허락해?”

“뭐, 아버지도 제2의 인생을 사시는 듯
 나의 대한 집착? 사라진 지 오래”

“그것 참 잘 됐군”

은수가 샴페인을 따라내며 소파에 앉았다.

“나도 알아봤어”

“뭘”

“최광식”

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은수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이래
 최광식의 모, 외할아버지와의 관계
 이 정도면 답이 나오지?”

나는 너무 놀랐다. 정난희도 캐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이야?”

“관계가 있다는 건 백 프로 사실
 하지만 그 관계의 깊이는 아직 미지수야
 최광식은 그냥 우리 집안을 하얀 가루로 만들고 싶어 했을 거야
 그게 목표였고 그 안에 네가 걸려들었고
 하지만 우린 하얀 가루는커녕, 더 단단해졌지
 안 그래?”

그때 정난희가 끼어들었다.

“한주 씨, 그 여자 어딨 어?”

나는 너무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아, 이 행동을 본 정난희는 내게 뭔가를 얻어 갈 것이다.

“누구?”

“슈퍼가 사라지기 직전에 실종된 거 같던데?”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하긴, 가족이 없으니까 그 여자를 누가 찾지는 않겠지만
 슈퍼를 밀어내고 개발을 시작하려면 여자의 동의가 필요할 테고
 흠, 복잡해질 거 같은데?”

은수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정난희가 계속 말했다.

“참, 그 동영상 유포한 놈, 잡았어”

“뭐?”

“그놈이 잡혔고 그놈이 그 여자를 죽였다는데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놈이 자백했어, 아주 뜬금없이 말이지”

은수가 말했다.

“그놈이 모두 뒤집어쓰려는 거겠지”

정난희가 물었다.

“뒤집어쓰다니? 그놈이 한 짓이야”

“난희 씨는 뭘 모르네
 그렇게 멍청한 놈이 혼자 동영상을 언론사에 뿌려?
 아니지 아니야, 이건 다 최광식 짓이야
 경찰에 잡히긴 했지만 그놈에겐 또 돈이 걸린 일이라
 아마 다 불지 않겠지
 애초 몇 년 썩고 나올 생각이겠지”

내가 말했다.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아
 그 놈들 마음대로는…”

은수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서지 마 또 사건은 일어난다?”


“이미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쓰레기야
 이젠 잊히기까지 했고
 더 다칠 일은 없어
 
 

“한주야”

나는 그만하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날 밤, 나는 누나 은수가 알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히고 귀 담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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