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날아갔다, 훨훨
1-1
조수국은 어머니의 아버지다.
그의 삶은 그 시대에 대단한 권력이었다. 그에게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와 피의 끈적함, 그리고 사악함이 느껴졌다.
우석이의 아버지 최광식, 그리고 나의 어머니 그들은 놀랍게도 이복 남매다.
이런 비밀을 어떻게 그들은 이제까지 꽁꽁 잘도 숨겨 왔을까?
그리고 최광식은 또 놀랍게도 조수국을 아주 꼭 닮았다.
최광식과 그의 어머니는 조수국에게 버림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주민등록증조차 없는 류의 사람이었고 조수국은 그런 그녀를 탐했다. 조수국의 그때 권력은 마치 그런 류의 여자를 탐한다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드높았다.
그녀는 뒤늦은 재혼을 했고 최광식 또한 운 좋게 다른 성을 갖고 이 세상에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다.
조수국이 그녀를 탐하고 최광식을 벌하는 동안 그들은 지금 나의 성, 그곳에서 끊임없는 사냥을 당하며 갇혀 지냈다.
나의 성이 그들의 안식처, 아니 집이라는 곳이었다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수국이 말했다.
“너희 같은 류는 말이야
그저 밥이나 먹여주고 예뻐해 주고
때론 매질을 해야 하지
조금만 틈을 주면 기가 살아서 말이야”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수국은 그녀를 도둑처럼 탐닉하며 자식까지 낳게 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국, 가난에 찌들었던 재혼한 남편에게 마저 괴롭힘을 당했고, 그녀는 끔찍했던 조수국의 성에 다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실종되고 말았다.
그 시대 언론은 권력의 무조건 적인 오른팔이었으며 그 누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다 해도 취재하나 보도하나 나가지 않았다.
물론,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바뀌고 조수국은 삶을 붙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연령에 접어들었고, 최광식은 엄청난 재산을 받게 된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그들의 모든 관계는 거기서 끝이 났어야 했고, 재산을 빌미로 한 최광식과 조수국의 약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음이 틀림이 없다.
최광식이 생을 마감하는 조수국의 흐리멍덩한 눈을 내려보며 이죽거리며 말했다.
“똑똑히 봐, 내 어머니가 죽은 것처럼
네 자식도 똑같이 벌해주겠어”
1-2
최광식은 내 어머니가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나를 지목했던 건 아니다. 나소희 사건은 내가 벌인 일이었고, 내가 만든 덫에 내가 걸려들도록 최광식은 입만 움직인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수국의 성을 나에게 넘긴 것이다. 정말이지 애정이 가득한 행동이지 아니한가?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와 닮았다, 똑같다는 소리를 습관처럼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아주 잘 맞춰지는 퍼즐 조각이다. 그렇게 세뇌를 당해왔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아버지를 닮은 나,라고 늘 생각해 왔으니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유난히 외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나, 머리카락 속 쌍가마도 쏙 빼닮은 나, 어머니는 당연히 아버지와 나의 조각을 맞추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 속에서 나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끔찍한 자인함이 내가 같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자신이 아끼는 딸 은수에게 피해가 갈까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열다섯 살 저지른 그 사건에서부터 절대 지워질 수 없는 문신처럼 아버지는 나를 혐오했다.
그때도 어머니는 말했다.
“우리 인이는 참 아빠랑 똑 닮았네?”
그리고 치가 떨리는 듯한 어머니 어깨의 작은 떨림을 나는 보았다.
이제 나의 계획은 어찌 되는 것인가?
나의 인생을 뒤바꿔 놓은 그들을 수첩 속에 적어 놓았다. 한데, 이제 와서 먼저 그들의 인생을 박살 냈던 사람의 씨가 나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처럼 그들도 나를 박살내고 싶은 거다.
아, 그렇다면 죄책감 하나는 줄어들겠다 싶다.
나는 좀 당당 해지기로 했다.
며칠 동안 연습한 시나리오대로 최광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대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언론사는 늘 제보가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전화가 울렸다.
아마도 이 전화번호는 그에게 아주 익숙한 번호였을 것이다.
강복희가 전화를 받았다.
몇 달 사이 강복희는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네, 별장입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한참 후에 들렸다. 최광식은 강복희의 목소리를 아는 듯했다.
“나, 최광식이오”
나는 강복희의 얼굴을 살폈다.
순간 미간이 좁아지고 입이 벌어지며 동공도 확장되었다. 그리곤 나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그 어떤 말도 없이 수화기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큰소리쳤다.
“뭐지? 이 밤에?”
강복희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수화기를 낚아채고 말했다.
“누구십니까?”
한참 후, 최광식이 말했다.
“아직 강복희가 그곳에 있다니
이젠, 놀랍지도 않군”
나는 미친 새끼처럼 웃었다.
“하하하하하
난 또 누구시라고”
나는 어릴 적, 우석이와 그들을 만나 함께 식사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나의 어머니는 정말이지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었다. 나의 퍼즐은 너무 기막히게 잘 맞아떨어져서, 나를 밀어내기만 한 나의 아버지에게 없던 연민까지 생겼다.
나는 평생 나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잡아 먹힐 거라는 공포심을 갖고 살았지만, 그 공포심이 내 것이 아닌 나의 아버지의 것이었다니, 이거야 원 정말이지 안타까웠다.
나를 그렇게 싫어했던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얼굴에서 조수국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싹이었을 때부터, 괴물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최광식이 말이 없다. 어릴 적 보았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못된 두꺼비 같은 얼굴과 오둘둘한 피부, 튀어나온 배는 큰 키와 어울리지 않았다.
최광식이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왜 그곳에 있지?”
“여기가 내 집입니다
소식을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아참, 그놈 말입니다
필리핀 어디에서 잡으신 겁니까?
참, 어려운 일을 해내셨네요
역시 대한민국 최고 언론사”
“무슨 용건이야?
용건만 간단히 하지”
나는 나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돌려 말할 필요도 없었다.
최광식이 내게 아주 조금의 양심이라도 품고 있길 나는 바라고 또 바랬다.
“나소희는 왜 죽였지?”
최광식 또한 말을 돌리지 않았다. 역시 조수국의 피다.
“내가 죽이지 않았지, 그놈 입으로 말했잖아?
설마 너와 긴밀한 관계인 그 여자를 내가 죽이겠어?
있어야 더 도움이 되는 건 아니고?”
“그것 참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여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그놈을 죽일 뻔했지”
최광식은 내가 분노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여자 말이야
인생이 참, 불쌍해 쯧
천하에 고아가 어찌 그런 놈을 만나서
오래전부터 끌려다니며
이용당했으니…
애까지 뱄던데… 쯧쯧”
나는 소리쳤다.
“그 얘긴 그만하시죠”
“이런이런, 김수목 기사가 맞군, 그래?”
나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사라도 지내 주지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입을 실룩거리며 웃는 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숨을 크게 내쉬며 최광식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봐, 내가 그놈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사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끓어오르지 분노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아들 새끼는 망가졌어
이 정도면 이제 좀 같다고 생각이 들었지
이제, 나도 늙었고…”
이 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두려웠다. 무언가 끝내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혹, 내게 용서를 바란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공평하지 않나?
아니, 내가 좀 손해일 수도 있어
내 자식 놈은 완벽하게 망가졌으니까
그러니 이제 평화를 논해보는 거야
어때?”
나는 물었다.
“용서를 바란다는 건가?”
최광식이 미친놈처럼 웃었다. 너무 오랜 시간 웃는 그에게 말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강복희에게 그 웃음소리가 들린 모양이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강복희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 너무 재밌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웃어 보기는 처음이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창문 밖으로 강복희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내가 너에게 용서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나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당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내 책임이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날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어
당연히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치아가 딱딱 소리를 낼 정도로 하관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이런
넌 정말이지 네 엄마처럼 멍청하군
그렇다면 내가 네 엄마를 죽였어야 한다는 얘긴가?
이런 이런…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은 필요 없었지…
너는 이미 그 모든 것들을 갖고 태어났어
그게 죄인거지
그런데 내가 너에게 용서를? 그래 좋아
네가 나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면
생각해 볼 수는 있어
아차, 한 가지 모르는 게 있겠군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온갖 좋은 것들을 몸에 칭칭 감고
네 몸속에 집어넣었지
내 아버지가 너를 그렇게 아끼더군
내가 봐도 넌 그 양반을 쏙 빼닮았거든
그런데 말이야
내 어머니가 그 집을 찾아갔을 때
그 추운 겨울날
너에게 먹이다 남은
음식마저도 대접받지 못했지
네가 따뜻한 이불에 감싸 있을 때
내 어머니는 알몸으로
그곳을 쫓겨났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네 인생을 망쳤으니 용서를 말하는 건가?
쿠에엑 퉤엣”
나는 최광식의 말을 듣고 어떤 말도 답하지 못했다.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실을 접했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들, 그리고 나의 얼굴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는 여러 종류의 메스들, 그리고 중독되고 있었던 수많은 종류의 수면제들.
어떤 이유로 고통을 받았다 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최광식이 용서를 진심으로 빌었다면 그를 벌하려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그랬다.
하지만 끝내 최광식은 내게 내 어머니를 죽인 놈, 이라 말하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1-3
최광식과의 통화를 끝낸 후부터 강복희의 행동이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장애가 있는 발마저 아주 빨리 서둘러 걸었다.
나는 강복희를 며칠 동안 세심하게 관찰했다.
정난희의 말에 따르자면 강복희는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서 별장지기로 많은 사람들을 거쳤다. 또한 최광식의 어머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강복희는 제삼자의 눈으로 모든 진실을 보고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복희의 음식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그날은 나의 계획을 앞두고 나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때였다.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싫어하던 내게 강복희는 실수를 했다.
가지 요리에 마늘을 넣은 것이다.
나는 입에도 가져가기 전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강복희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나는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주름이 깊게 파인 그녀의 이마를 보았다.
“무슨 소리지?”
“정실장에게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저는 이제 이곳에서 근무하지 않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소식에 나는 좀 당황했다. 또한 나는 강복희에게 얻어내야 할 것이 있었다.
당연히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집주인은 난데 왜?”
“날 고용한 사람은 유한주 씨가 아닙니다”
정말이지 강복희는 똑똑했고 눈빛과 신체는 나이 답지 않게 살아있었다.
강복희가 산을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떠오른 강복희의 말에 나는 성급하다.
“잠깐, 그 다리…
그 다리 말이야,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강복희가 고개를 돌렸다.
입 모양이 답하지 않겠다는 굳은 고집을 나타낸다.
“아, 알았어 이제 알겠군
당신은 그 절벽에서 떨어진 거군, 그렇지?”
강복희가 나이 눈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강복희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지금은 아니지”
강복희의 눈이 잠시 나를 흘긴다.
“할 말, 없습니다”
“아니, 아니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거야
세상에, 이런 맙소사
열쇠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까맣게 몰랐어”
강복희가 나의 말을 무시한 체 절뚝이는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내가 이 여자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내 심장에 닿았다.
그녀의 숨결이 뱉어질 때, 비로소 퀴퀴한 냄새로 나이를 인정하게 된다.
강복희의 눈빛과 신체를 보며 많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나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입 안의 냄새는 가지 요리를 하며 넣었던 마늘을 맛본 냄새와 같다.
그제야 나는 말로써 그녀의 나이를 대접했다.
“앉아줘요
거부한다면 억지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강복희는 유난히 젊은 신체로 몇 번 나의 손을 거부했지만 먹혀들지 않았고 이내 포기하며 소파에 앉았다.
나는 직진했다.
“최광식의 모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최광식의 말 그대로 정말 내 할아버지가 죽인 건가?”
강복희가 약간의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유한주 당신은 그들의 삶을 끝낼 것 아닙니까?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든…
당신들은 참 똑같아…
그런데 나의 대답이 필요한가요?”
“오, 아니지 아니지
내게 중요하지
난 그들과 다르게 사람이니까”
나의 말을 들은 순간 강복희가 또 한 번 웃었다.
그 웃음은 조수국의 손자답다,라고 속삭이는 웃음과도 같았다. 이 집안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강복희의 웃음은 나의 기분을 굉장히 더럽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예의를
차릴 수 있도록 도와줘요
정말, 그러고 싶거든”
강복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을 감았다.
“오래 걸려도 기다리겠어요”
강복희에게 진한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를 내밀었다. 아마도 긴 밤이 될 듯하다.
처음 내가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의 강복희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렇다. 강복희는 나를 처음 본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얼굴은 마치 너무 오랜만에 만남을 갖게 되어 놀랐다는 그런 소스라침이었다.
“그때 당신은 포에 쌓인 아기었고
당연히 나를 기억할 수가 없겠지…”
나는 그럴 줄 알았다, 는 심오한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1-4
최광식은 그때 20살의 군인 신분이었다.
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조수국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집이 없다는 것과 같았다.
어머니는 몇 번의 가출 끝에 선택한 곳이 그 지옥 같은 곳이었다.
홀로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다.
차라리 매질을 하는 남편에게 지탱할 수 있는 껍데기만 있는 인격이 닳아 없어진 그런 류의 사람.
운명이 만들어 놓은 실타래에 어머니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벌써부터 몸 안에 있는 피를 바싹 얼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최광식은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 빠르게 강복희가 나타났다.
“아, 안녕하세요”
강복희는 최광식을 떠도는 개 보듯, 눈을 밑으로 내리깔며 동정했다.
“아, 광식이 왔구나
휴가 나온 모양이네”
강복희는 마치 그가 못 올 곳을 왔다는 식의 말투로 뭉그적거렸다.
“지금 못 들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애진이가 왔어, 아기도 함께”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강복희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그, 그게”
강복희의 이 정도 표현이면 당연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매질을 당하거나 방구석에 갇혔거나 묶였거나.
최광식은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강복희를 밀어냈다.
그리고 성큼성큼 응접실로 향했다.
“광식아 잠깐만 잠깐”
조애진과 조수국이 동시에 최광식을 보았다.
찰나의 침묵이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조애진이 말했다.
“엇, 이게 누구야?”
최광식이 조수국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최광식이 말했다.
“요즘 군대는 편한가 보군”
최광식이 강복희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최광식의 눈이 조수국이 아기를 안고 어르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나랑 같이 가”
“어디 계시냐고요?”
“그러니까, 나랑 같이…”
아버지 조수국이 말했다.
“밖을 뛰어나간 사람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
나가서 찾아”
최광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밖은 영하 10도가 넘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산속이라 체감온도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최광식이 강복희를 흘겨보며 말했다.
“왜 나갔어요? 말해요”
“아니 그, 그게
아기를 안아보겠다고 하도 그래서
하마터면 아기를 떨어뜨릴 뻔했어
그래서…”
“그래서? 아기가 떨어졌어요?”
강복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젠장”
조수국은 언제부턴가 다 성장해 버린 아들 최광식에게 정면으로 맞붙지는 못했다.
“그래서 또 내쫓았다는 얘기군
이 추위에”
최광식이 고개를 비틀어 조수국이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조애진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아기를 안고 이층으로 성급히 올라갔다.
조수국이 담배를 물며 창밖을 보며 말했다.
“왔으면 조용히 쥐 죽은 듯이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가”
최광식이 조수국의 뒤통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짐승 같은 목소리 포효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으어어어어”
최광식은 빠르게 산을 올랐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고인 눈물이 얼어붙었다. 눈썹 위로 맺힌 얼음 방울이 마치 하늘 위 떠 있는 구름처럼 보였다. 눈이 쌓여 길을 찾기도 힘들고 눈 속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천근만근 쇠를 매단 것처럼 느리고 더디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지, 하얀 나무에서 바람에 날리는 눈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야속하게도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아, 이곳이 지옥인가”
숨이 차오른다. 뒤에서 눈을 밟는 자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강복희가 눈만 보이도록 머플러를 두르고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쪽, 아니야 이쪽으로”
강복희는 이 산속을 꿰뚫고 있었다.
최광식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군화 속이 땀과 눈에 질퍽거렸다.
그때 어느 곳 보다 밝게 비춰주는 공간에 눈이 닿았다.
절벽이었다.
“맙소사”
최광식은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 실제였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강복희가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어머니는 절벽 위에서 알몸으로 서 있었다.
그곳에서 얼어붙어 박혀 버렸다,라고 얘기해야 맞을 것이다. 온몸의 온도가 어땠을지, 상상이 갔다.
어머니의 몸 위로 눈이 쌓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소리쳤다.
“오지 마, 뛰어내릴 거야”
최광식은 그 순간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 없어지면 그 몸뚱이는 편해지지 않겠냐고 속으로 속삭이듯 생각했다.
최광식은 어머니를 부르지 않았다.
강복희가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 소리를 최광식은 듣지 못했다.
강복희는 가방에서 담요를 꺼냈다. 그리고 더욱 천천히,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최광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볼에 흐르는 이것은 독함이 빠지 울분의 눈물일 것이다.
어머니가 빠르게 뒤를 돌았고 그때 절벽 밑으로 사라졌다.
잠깐 스친 어머니의 몸뚱이는 시퍼렇거나 짙은 갈색이었다.
강복희의 입이 땅으로 끌어내려갈 듯 벌어지며 신음했다.
“으윽”
최광식은 절벽 끝으로 다가가 밑을 확인했다.
강복희와 최광식은 마치 일어날 일이었다는 것처럼 조용했고 침착했다. 그리고 동시에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가 강복희에게 말했다.
“데려가줘요”
“후우…”
“저기, 저기요 빠른 길로”
강복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미친 듯이 길을 내려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은 틀어진 뼈가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검붉은 피가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입술은 비틀어졌고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최광식은 강복희가 전한 담요로 어머니를 감쌌고 작기만 한 그녀를 안아 올렸다.
말도 안 되는 가벼운 무게에 최광식은 산을 내려오는 내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