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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인간들

7. 스위스 아미 나이프

by 금봉


1-1



분명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암흑뿐, 발바닥의 느낌으로 안전한 곳인지 불안한 곳인지 느껴야만 했다.

맡아보지 못했던 썩은 내가 진동했다.

죽음의 냄새도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나의 손가락이 느끼는 감촉은 다른 것이다.

갑자기 눈앞에 섬광이 번쩍, 새카만 박쥐들이 천장에서 후두두둑, 떨어졌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비명을 질렀다.

아주 괴이한 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으허헉 으헉 헉헉”


젠장, 꿈이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다. 커튼 사이로 약간의 빛줄기가 보이는 듯하다.

그 빛이 밤의 빛인지, 낮의 빛인지 이제 구분조차 하기가 힘들다.


“젠장할 수면제”


이제 강복희는 없다.

그녀는 이곳을 도망치다시피 떠났다.

장애가 있는 그녀가 맞는지 그녀의 발은 자동차 보다 더 빨랐다. 강복희의 아픈 다리는 최광식이 한 짓이었다.

밖으로 쫓겨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의 내리막길에서 강복희를 밀쳤다고 했다.

나는 공포스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최광식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란 존재는 최광식이게 서서히 죽어야만 하는 존재일 것이다.

진땀이 났다.

나의 계획의 상위 포식자가 바뀐 셈이다.


최광식은 내게 평화를 선언하려 했다. 나는 내심 그때 그 약속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이제 나의 계획은 바뀌어야 한다.

나는 수첩 속의 모든 이름을 지우고 붉은색 펜으로 최광식 이름 석자만을 남겨 두었다.


나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뭐든 입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산속 주변의 모든 것을 눈에 익혔다. 외우고 또 외우 고를 반복했다.

눈이 녹고 봄을 맞이하기 시작한 이곳은 강복희의 말처럼 장관을 이루려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이 빼곡히 숲을 이루기 시작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몸이 가벼운 날이었다.

나는 최우석과 김수목을 성으로 불러들였다. 꼭 목적을 이루려고 한 행동은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나의 수첩 속에서 이름이 지워진 상태다.

그들 삶의 온전함과 불안전함이 차지하는 비율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완벽하게 매장당한 나의 삶과 꼭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삶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 같았다.


나는 이날을 위해 미리 강복희에게 구걸하듯 부탁했다.

강복희는 침묵을 지키며 여러 가지 음식을 세 시간 만에 완성했다.


최우석과 김수목은 등장하는 법도 요란하다.

분명한 건 그들은 나의 대한 최잭감도, 공포심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최악의 인간들임을 알고 있었기에 마주해야 할 기분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 두 사람에겐 내가 상위 포식자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포츠카를 끌고 성 앞에 안착했다.

김수목은 몰래카메라로 나를 찍었을 때를 제외하곤 열다섯 살 이후 처음 가까이 마주한다.

녀석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최우석은 전 보다 더 굽어진 어깨와 움츠린 몸으로 좁은 보폭으로 걸음을 걸었다.

비쩍 마른 모습에 인간적인 감정이 튀어나와 안타깝기까지 했다.

차마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최우석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김수목은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최우석을 부축하듯 끌고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먼 길 왔다”

김수목이 말했다.


“이야, 유인
이게 얼마만이냐?
나까지 초대를 다 해주시고”


김수목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모른 척하며 들어오라 손짓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듯한 최우석의 팔을 나는 애써 잡았다. 이상한 연민이 느껴졌다.

약간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최우석이 움찔하며 나를 흘겼다.

그리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이거 놔, 아직 병신은 아니야”


김수목이 최우석의 말을 듣더니 피식거리며 웃었다.

강복희가 차려 놓은 음식들을 김수목은 큰 덩치에 어울리게 마구 먹어 치웠고 최우석은 술만 겨우 홀짝거렸다.

김수목이 말했다.


“근데 유인 너 얼굴이 또 달라졌다?
길에서 마주치면 아마 몰랐을 거야”


“나도 널 봤으면 그랬을 거다”


“하하하하
내가 좀 많이 변하긴 했지
한번 찐 살은 빠지지 않지
이게 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쳐서 찐 살이지
하하하하하”


김수목은 말의 중간 말의 끝부분, 어디에서나 억지스러운 하하하하, 같은 이상한 웃음을 날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 사건 터지고 나도 나름 좀 미안함도 있고 해서…
연락도 안 받더니
갑자기 우릴?”


나는 이 물음에 대한 솔직한 답을 할까 말까, 를 고민하다 말했다.


“그때 봤으면 내가 널 어떻게 대했을 거라 생각해?”


김수목은 나의 움찔하는 눈두덩을 바라보았다. 그도 잠시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다른가?”


최우석이 끼어들었다.


“야, 김수목 저 자식은 양심이 배 속에 있어서
한번 싸면 사라지거든
그래서 저 지랄이지
하지만 난 처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어
어차피 나는 약쟁이라
약이 필요했을 뿐…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난…
유한주, 미안하다”


최우석은 아마도 나도 피해자야,라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을 것이다.

최우석의 말을 들은 김수목이 또 이상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뭐야 저 자식 무슨 더러운 고해성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때 최우석이 들고 있는 술잔을 김수목에게 집어던졌다.

술잔은 김수목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산산조각 난 유리잔을 보던 김수목의 눈이 순간 번뜩이더니, 벌떡 일어나 앉아 있는 최우석의 배를 발로 강타했다.

종이 짝 같은 최우석은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새끼가 돌았나”


나는 그들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김수목이 의자와 함께 누워 있는 듯한 최우석을 위에서 내려보며 말했다.


“이제 와서 너는 양심적이라는 얘기야?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시작된 일인지 몰라서
지랄 떠는 거야?”


그들은 나의 사건을 두고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서로 씩씩대고 있었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일어서려던 최우석의 배를 김수목이 밟았다.

조금씩 더 힘을 주며 최우석을 짓이기는 듯했고 최우석은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하지 그래?
내가 가만히 있는데, 왜들 그래?”


김수목과 나의 눈이 마주쳤고 그의 눈은 이글거렸다.

다시 말했다.


“그만해"


잠시 김수목이 힘을 풀어낸 틈을 타 최우석은 가까스로 일어났다.


“더러운 개자식”


김수목이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나약한 약쟁이 새끼”


잠시동안 침묵이 일었고, 나는 다시 술을 마셨다.

내가 최광식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군더더기 없이 말했다.


“수목아
너 왜 그랬어?”


“어? 뭐? 뭐 말이야?”


“후우, 왜라는 말을 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우리에게 많지 않지
간단한걸”


김수목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말했다.


“어, 노노노 여기서는 안돼”


김수목이 눈을 움찔했다.


“에?”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석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키득거렸다.


“야 입 닫아 이 새끼야”


최우석은 김수목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더욱 키득거렸다.

정말이지 지금도 약에 취해 있는 모습 같았다.

나는 값 비싼 술병을 들이밀며 김수목의 잔에 따라주었다.


“왜 그랬어?”


김수목의 목울대가 분명 두 번 아래위로 꿀꺽거렸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아…”


“난 한주야 유한주”


나 또한 조금씩 취기가 올라왔다.


“아, 그렇지
유한주…
한주야, 그러니까 너도 알다시피
난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까…
왜,라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아”


나는 돈의 값어치를 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먹어 치운 김수목의 비정상적으로 나온 배를 보며 눈썹을 긁었다.


“아니지 아니지
잘 생각해 봐
값이 되는 건 넌 뭐든지 했지
물론 그건 너의 선택이었고
또 잘 생각해 봐
그 누가 개입하지 않았어도 넌 했을 거야
그렇지 않아?
그래야 네 그 배와 잘 어울릴 것 같고 말이야
그리고, 너 원래 그런 애잖아?
큭”


나는 말 끝에 웃음을 흘렸다.

김수목이 참을 수 없다며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라이터를 켰다.

나는 재빠르게 담배를 낚아채고 발로 짓이겼다. 그리고 침묵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젠장”


나는 김수목의 솔직한 답을 기다렸다.

여기까지 온 우리는 더 이상 무슨 변명과 거짓이 더 남아있어야 할까, 그렇다면 그것이야 말로 저급한 사기다.

내가 말했다.


“첫째, 돈을 번다
둘째, 유한주를 망가뜨린다”


최우석이 뒤에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정확해

저 자식은 예전부터 널 망가뜨린다고 했어"


김수목이 다시 한번 최우석에게 달려들 것처럼 행동했다.


“노노노노 내 집이야
안된다고 했지?”


나는 그의 앞을 막으며 손목을 반대로 꺾어 부러뜨렸다.

아주 빠르게, 연습의 좋은 결과다.

김수목이 손목을 들어 올리며 신음하며 소리쳤다.


“으어어어 억
이 새끼가”


그리고 나는 다시 말했다.


“한 번 얘기로 들어먹어야지?
내가 가만히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양아치도 아니고…
아니 그리고 말이야
너도 참 한심한 녀석이야
저 작고 힘없는 녀석을 상대하는 게
윤리적이라고 생각해?”


김수목은 씩씩거렸다. 작은 신음은 계속 바닥으로 퍼져나갔다.


“자, 앉아 앉아서 마저 얘기하지”


김수목이 터트린 기사를 확인한 후, 나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대체 왜, 왜, 돈이라는 것에 욕심이 없는 자는 없지만 하필 왜 그게 나였고 왜 그게 김수목이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 순간, 우리의 열다섯, 그해가 떠올랐다.

김수목은 굉장히 평범했다. 늘 최우석의 옆에 있었던 친구다. 나는 최우석과 같은 과외를 받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김수목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최우석은 그때도 덩치 큰 어른 아이 같았고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최우석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미술 과외를 받은 후 우린 여느 때처럼 걸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김수목이 나타났고, 최우석의 행동은 좀 이상했다.


우린 나란히 햄버거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그 둘은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탁자 위에 햄버거 세 개가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둘은 오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김수목과 다른 아이 둘이 최우석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상황을 빠르게 인지한 나는 최우석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침, 쓰레기를 집는 집게가 눈에 띄었고 나는 그것을 김수목에게 집어던졌다.

날카로운 끝부분이 녀석의 이마를 스쳤고 녀석은 눈을 감았다.

나는 소리쳤다.


“그만해”


그리고 빠르게 늘 갖고 다니던 아미 나이프를 꺼냈다.

나는 그랬다. 그땐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것을 늘 갖고 다녔다. 물론 아버지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이것은 아주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그때 화장실에 있던 아이들의 눈이 나를 마치 살인범이라도 되는 듯 쳐다보았다.

김수목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고 어느새 입가까지 내려와 흉한 모습을 자아냈다.


아무래도 난 그때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완벽한 유전자가 아닌가.


그 이후, 김수목은 마치 우리가 정말 친한 친구, 인 것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우리 셋은 늘 붙어 다녔다.

간혹, 김수목의 눈빛에서 나를 경멸하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늘 혼자였던 나는 그 둘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런 김수목의 눈빛도 온전한 녀석 것이라 생각하며 인정하며 지냈다.


그렇게 나의 사건이 터지고, 나의 담임이 나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나를 멸시하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김수목은 내가 타국으로 가기 전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때다 싶었던 건가.


“미친 새끼 언젠가는 일 낼 줄 알았다”


나는 그 말이 어디까지나 친구끼리 할 수 있는 말 즘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김수목은 나와의 연락을 완벽하게 끊어버렸고, 내가 사라진 후 최우석은 그의 오랜 돈 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점을 상기시켜 보니 김수목은 충분히 나를 망가뜨릴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했다.

물론 최광식만큼 아니지만 녀석에겐 복수심이 있었을 거다.

이마의 상처처럼.

최우석의 이마 상처가 움찔 나의 눈덩이가 움찔했다.


“자, 시간 없어
어때? 내 말 맞지?”


김수목이 대답했다.


“씨발, 네가 먼저 시작했어
그러니까 비긴 거야
내가 먼저 피해자였어”


드디어 내가 원하는 녀석의 솔직한 답이 나왔다.

나는 쾌감을 느꼈다. 정말이지 녀석의 체구가 작았다면 녀석을 안고 기뻐했을 것이다.

나는 박수를 쳤다.


“그래, 맞아
내 잘못이지
네가 그렇게 원망해야 맞아떨어지지”


김수목이 술을 벌컥거렸다. 그의 턱으로, 가슴으로, 배로 술이 흘러내렸다.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더러운 새끼…”

김수목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분명 보았다. 녀석의 공포를.


“수목아, 그래서 네 복수는 끝이 났고?
그래서, 행복은 하고?”


김수목이 말했다.


“이 도라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왜?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 건 행복해지려고 하는 거지
복수도 마찬가지지
음식을 먹는 행동도, 누군가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도…
그러니까 행복하냐고?”


김수목이 고개를 저었다.


“나, 난 후회해”


“흐음, 그래?
이런 이런
그럼 행복하지 않다는 거군
아…
안 됐군”


나는 식탁 위의 나이프와 포크를 만지작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렸다. 반사된 빛이 김수목의 눈을 찔렀다.


난 어려운 결심을 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삶을 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미 괴물이 되어버렸다. 한데 나는 김수목을 나의 수첩에서 지워버렸다.


자꾸만 나의 유전자가, 욕구가 녀석을 옥죄고 사냥하라며 밀어냈다.

나는 물을 벌컥거렸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라”


어려운 선택이었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면 나는 그때처럼 녀석의 이마를 향해 나이프를 꽂았을 것이다.

김수목이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 가도 될까?”


나는 무릎에 팔꿈치를 기대며 손짓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석은 이미 현관문을 향해 몸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갑자기 김수목의 행동이 빨라졌다. 현관문을 박차고 뛰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김수목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이 새끼야 얼른 타
이 병신새끼”


최우석이 앞 좌석에 앉자마자 김수목은 차를 후진시켰다.

그때 나는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김수목과 눈도 마주쳤다.

아, 이런.

나는 사람을 좋아했고 용서라는 단어도 좋아했다.

나는 정말 김수목을 오늘로써 마지막으로 잊어버리려 했다.

김수목은 액셀을 밟으며 내게 돌진했다.

나의 선함이 녀석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운동과 훈련으로 다져진 나의 몸은 놀랍게 빠른 반사적 행동으로 녀석의 차를 현관문과 맞닿게 만들었다.

차와 현관문이 맞닿는 중간 내가 있어야 녀석의 미소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의 검붉은 유전자가 녀석을 갈기갈기 찢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김수목의 차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배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마치 독가스라도 되는 것 마냥, 최우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맙소사, 최우석의 얼굴에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차가 부딪히는 순간 그가 튕겨 나간 모양이다.


“이런 이런”


나는 열다섯 살 그 해처럼 최우석을 일으켜 세웠다.

유리 파편이 최우석의 가슴에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때 강복희가 다리를 끌며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강복희의 등장에 너무 놀랐고 그녀가 하는 행동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강복희의 행동은 역시 빨랐다. 최우석을 끌고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강복희는 나를 한번 보며 김수목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뭘까, 강복희는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멋진 요원처럼 녀석을 맡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어안이 벙벙했다.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던 차에서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다.

이럴 땐 값비싼 슈퍼카도 쓸모가 없는 모양이다.

김수목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녀석에게도 유리 파편이 튄 모양이다.

김수목은 자신의 피를 확인하더니 살고 싶은 욕망을 눈동자 속에 가득 담으며 번뜩거렸다.

내가 말했다.


“수목아, 나 죽이려 한 거지?
그것 보라고, 다 끝내지 않았으니
네가 행복하지 않았던 거야”


옆에서 김수목을 보며 최우석이 소리쳤다.


“저 자식은 미친 개새끼야”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김수목은 시멘트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두 팔로 뒷걸음질 쳤다.

그 짧은 시간에 나를 죽이려 한 자에 대해 나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우선 슈퍼카의 시동을 꺼야 했다. 헛바퀴가 계속 돌아가고 있던 상황이었고 유리 파편이 사방에 널브러졌다. 시동을 끄러 간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종이 짝에 불과한 최우석이 슈퍼카의 뾰족한 파편을 들고 김수목의 뒤를 천천히 기어가더니 녀석의 목에 그것을 찔러 넣었다. 자신의 손바닥이 찢기는 아픔 따위는 잊어버린 모양이다.

김수목의 목에서 붉은색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아, 정말 분수를 닮은 포물선이었다.

최우석은 그제야 자신의 손바닥이 찢겨 나간 고통을 느꼈다.


“으아아악”


강복희와 난 조용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30년이 넘는 그들 만의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김수목의 상체는 빠르게 뒤로 넘어갔고 그 어떤 말도 입으로 뱉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나는 탄식을 했다.


“하… 이게 아닌데”


최우석이 흐느끼며 말했다.


“그때, 그때 이 관계를 끝내야 했어
헉헉헉, 어차피 난 끝난 인생이야
난 정말 넌 응원하고 싶었어
내 뜻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난 갚은 거야"


그리고 최우석은 소리치며 통곡했다.

강복희가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먼저 정실장”


나는 최우석을 부축하려 다가갔다.

녀석도 내가 공포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계속 저었다.

뭔가 안정이 필요했다.

나는 말했다.


“괜찮아, 넌 최우석이고
난 유인이다”


그제야 최우석은 온몸에 힘을 빼며 내게 기댔다.

정말 이때에도 우리의 열다섯 살 그해의 우정, 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었던 걸까?


나의 눈썹 위가 아리다.



1-2



정난희를 선택한 나의 생각은 역시 옳았다.

정난희는 표정으로 거품을 물었지만 아주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또 한 번 최광식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이젠 살인자가 되었고, 그것도 자신이 만든 회사의 직원을 죽인 셈이다. 그리고 최광식의 회사는 아주 빠르게 기울어져 갔고 최광식은 아들의 뒤늦은 고해성사에 경찰서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내게도 피곤한 일들이 다시 생길 것이다. 최광식이 벌인 일 중점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마도 난 이 일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국을 떠나야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며칠 후, 나는 최우석을 찾아갔다.

세 번의 발걸음 만에 녀석은 나의 면회를 받아들였다.

녀석의 종이짝 같았던 모습에서 이젠 영혼도 사라진 사람처럼 보였다.

약물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란 말을 담당자에게 들었지만 정난희의 말은 그들의 말과 달랐다.


“원래 그런 병원은 거칠어
정말 거칠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끊겠어?
살아 나오는 게 용하지”


최우석은 하루 중 식사시간과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손과 발이 묶여 있다고 했다.

벌써 세 번째 죽음의 늪에 다녀온 녀석이다.

그 사슬이 과연 녀석을 삶으로 인도해 주는 도구일까, 녀석의 모습을 본 순간 아물 수 없는 손목의 상처와 목의 상처가 나의 눈썹을 또 아리게 만들었다.


죽어야만 살 수 있는 삶은 아닐까.


대체, 이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를 다치게 한 녀석에게 나는 왜 자꾸만 이런 감정을 토해내는 것일까, 나 대신 김수목을 죽였기 때문에?

과연 내게 선함이 정말 남아 있는 것일까.


최우석은 아주 간단한 나의 안부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설마 최광식이 아들의 입술에 접착제를 발라 놓은 건 아닐지 의심들 정도다.


“금단 현상은 어때?”


녀석이 얼린 동태 같은 눈동자를 하고 나를 보았다.


“나를 데려가 줄 수 있을 가”


나는 조금 놀랐다.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최우석은 누군가를 죽인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렇다, 최우석은 지금 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저곳은 살 곳이 못된다는 것이다.


최우석은 아무리 모든 것을 잘 끼어 맞춘다 해도 저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바보는 아닐 것이다.

최우석은 다시 말했다.


“아버지는 그 괴물은…
조만간 나 같은 신세가 될 거야
아마도 죽음도 이곳에서 맞이해야 할 테지”


최우석이 아주 짧게 키득거렸다.


“난 왜 진작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방법을 이제서…
조금 일찍 알았다면 난, 더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
물론 내 선택이 가장 큰 잘못이었지만 말이야”


최우석의 입에서 가장 바른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오늘이 아닌가 싶다.


“잘 알잖아?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


최우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물론, 물론이야”


그때 최우석의 눈이 열다섯 그때처럼 아주 잠깐 반짝거렸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러고 나면 말이야
날 데려가 줘
어디든 좋아”


최우석은 마치 내가 다시 해외로 나갈 것이란 걸 아는 사람처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대답을 바라는 최우석의 눈빛이 애절했다. 그리고 대답을 해야 하는 나는 녀석과의 열다섯 그 해를 떠올렸다.


타국으로 나가기 전 녀석의 따뜻했던 악수를, 그리고 나를 응원한다는 녀석의 목소리를.

나는 답했다.


“그래”


최우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또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고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쥐었다.

교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앉으시오”


최우석이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너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 거야
그게 사실이니까…
모든 걸 그렇게 말했어
너도 피해자고 그러니까 나도…”


내가 말했다.


“쉿
그렇다면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하는 거지
그러니 잘 버텨”


녀석의 고개가 또 끄덕였다.

내가 일어나려던 찰나 최우석이 말했다.


“용서해 줘”


나는 대답했다.


“니 자신부터 해
간다, 그때 보자”

최우석은 그때 아마도 내 등에 대고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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