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피해자
1-1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이제 눈 덮인 곳에서 길을 찾는 건 강복희처럼 완벽하지 못하지만 꽤 완성도가 높다.
강복희는 그날 이후,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이며 정착했다.
처음과는 다른 정착이다.
그녀는 별채가 아닌 나의 성 안에서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그 누구 보다 더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왜 나에게 이러는 겁니까?”
“괴물 같은 사람이라도 진실한 사람이니까”
“그럼 진실한 사람이 곁에
없었다는 얘깁니까?”
강복희가 나를 가리켰다.
“지금 여기”
나는 강복희를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강복희의 재 출현은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고 혹독한 추위 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을 그나마 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질질 끄는 다리로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박쥐 인간들이다. 하지만 강복희는 달랐다.
마치 박쥐의 우두머리 즘이라도 되는 듯, 카리스마가 남다르다.
우린 이른 새벽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을 올랐다. 눈이 산 보다 더 쌓인 날 같아 보여도 우린 올랐다.
다리의 장애가 있는 강복희는 내게 질 세라, 점점 발전하는 나의 빠른 걸음을 아주 잘도 맞춰 걸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하산길로 끝맺음이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괜찮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당연히 최광식이 어려운 절차 필요 없이 교도소에 직행할 줄 알았다.
나소희를 죽인 것도 그의 청부살해라고 최우석이 진술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한 것이 아닌가.
헌데 복병은 문신으로 온몸을 감싼 그 놈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 또는 이익을 챙겼길래 그곳에서 때 아닌 의리를 지키는 건가, 돈이란 정말 인간을 순수하게 멋진 사람을 만들 수도 있는 건가?
정말 순수하지 않은가?
살인이라는 죄목 앞에서 또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는 순간 앞에서 돈에 의한 의리라니.
수상한 건 그놈은 단 하나의 증거, 나소희를 죽였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돈의 의리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 셈이다.
나는 또다시 뉴스의 헤드라인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피해자,라는 명목 하에 마치 언론은 피해자인 나를 보호라도 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화가 왔다.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간혹 꽤, 웃긴 기자도 있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예술로 표현하신 점을
수많은 여러 피해자들에게
권유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죽은 나소희는
정말 피해자 분의 연인이었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인 점은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을 그들은 절대 알 수 없다는 거다. 그렇게 나의 해외 일정은 조금씩 미뤄지고 있었다.
충분히 나의 성에서의 삶이 꽤 괜찮기 때문이다.
비 섞인 눈이 내리는 날이다.
차가운 공기가 마치 뼈를 감싸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이곳의 온도는 영하 13도까지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축축한 겨울비에도 불구하고 추운 온도는 산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나소희가 걱정되었다.
오늘 산행은 강복희를 두고 갈 생각이다.
나소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다.
“위험합니다
산도 얼어붙었고, 곳곳에 발도 빠질 테니까요”
“혼자 가겠습니다”
강복희의 고집은 대단했다.
“조용히 뒤만 따라가겠습니다”
“왜 고집을 피우십니까?”
“위험합니다”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다.
“그럼 무엇을 보아도 뒤에
있겠다고 약속해요”
“늘 그랬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추위였다.
정말 매서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의 눈썹이 얼어붙어 하얗다.
강복희는 끙,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눈이 쌓이지 않은 풀을 어렵게 찾았다.
우린 잠시 휴식을 취하며 뜨거운 보리차를 마셨다.
역시 강복희가 볶은 보리는 시중에서 맛볼 수 없는 구수함이다. 얼어붙은 손과 심장과 어깨가 녹고 있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돌로 장애가 있는 종아리를 마사지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나소희를 묻었던 곳은 형체 없이 사라졌다. 직감으로 눈을 파헤쳐야 했다.
어렵게 짊어지고 온 삽이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 다행히 햇빛이 비추는 방향은 눈이 쉽게 떨어져 나갔다.
눈을 치우느라 정신을 판 덕에 강복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맙소사 강복희가 사라졌다.
“어디 있습니까? 네?”
사방을 둘러보았다. 길을 잃을 그녀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잠시 넋을 놓고 앞을 주시했다. 뭔가 움직였다. 하얀색 형체가 움직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조금 뒤로 물러났다.
움직이는 형체라면 산 짐승일 확률이 컸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강복희 씨, 어디 있습니까?”
그때 강하게 저항하는 듯한 몸부림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짐승의 비명이 이어 들렸다.
“으아아아악, 저년이”
강복희가 내 앞으로 급하게 뛰어왔다.
“내려가야 합니다 서둘러요”
나는 이 장면을 수백 번 상상했고 수백 번 훈련했다.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로 그놈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건 그놈도 수백 번 연습을 한 모양이다. 설산에 하얀 옷이라니, 그 답지 않게 완벽했다.
어떻게 이곳을 조용히 정복했을까, 최광식은 역시 괴물이다.
강복희와 나는 아주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타아앙
맙소사, 이 놈은 총까지 갖췄다.
그렇다면 지는 게임인가?
최광식이 감옥을 향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훈련하긴 했지만, 총이라니, 나 보다 강복희가 걱정이다.
내가 소리쳤다.
“허리를 숙이고 뛰어요
머리가 올라오면 안 돼”
강복희는 내 말 그대로 행동했다. 정말이지 빨랐다. 다리를 끄는 순간도 찰나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내려가면 차를 몰고 도망쳐요”
나는 자동차 키를 그녀의 배낭 옆에 끼웠다.
자동차에 연료도 가득했고, 타이어도 새것이다.
앗, 당연히 스노 타이어다.
강복희가 헉헉, 대며 말했다.
“혼자서는 안 갑니다”
나 보다 나이 많은 이 여자, 하지만 나보다 더 강한 이 여자, 강복희의 말처럼 내가 보호를 받는 입장이어야 하는가, 도무지 이 여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곳에서 둘이 움직인다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살아서 또 한 번 내가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정리해줘야 하지 않은가.
죽음은 꼭, 인간으로서 남기고 싶었다.
“제발 부탁합니다”
“안 갑니다, 우선 저 놈을 교란시켜야 합니다”
이 여자는 가지 않을 사람이다.
나는 옷을 빠르게 집어던지고 방탄조끼를 벗었다.
“그렇다면 이거 얼른 입어요
그럼 거기서 봅시다, 몸 조심해요”
우리는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성 안에 있는 총을 거머쥐어야 했다.
어떤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뛰어야만 했다.
다시 한번 총성이 올렸다.
타아앙
오랜만에 나는 겁이 났다.
만약 강복희가 총에 맞았다면, 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최광식이 아닌 강복희의 죽음에 겁이 났다.
나의 폐가 숨을 쉬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를 정도로 숨 쉬기가 버겁다.
헉헉헉헉
분명 최광식은 그 둔한 몸으로 강복희와 나를 따라 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성 안의 총을 확인하고 남은 방탄조끼를 입고, 강복희의 말 대로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고 리모컨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속도를 내며 산을 올랐다.
강복희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빠르게 가야만 한다.
오르는 길은 역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배낭을 버렸다.
생각을 다시 해야만 했다.
만약 강복희가 총에 맞았다면 목적지까지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총에 맞았지만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목적지를 바꿨다. 만약 강복희가 약속한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그야말로 다행인 일이고 내가 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놈을 교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늘지고 눈이 녹지 않은 곳으로 계속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깨를 바짝 오므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개미 한 마리가 눈 위를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나는 속도를 조금씩 늦추며 소리 나지 않게 계속 돌았다.
그리고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비명소리가 들렸다.
강복희의 목소리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개자식, 죽여버릴 테다”
나는 강복희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빠르게 뛰었다.
1-2
강복희의 비명소리는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을 내게 가져와야만 한다.
나는 소리쳤다.
“강복희 씨
어디입니까? 괜찮아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해야만 했다.
많은 소리들이 산 위로, 더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따라 빠르게 올라갔다.
분명 이 소리는 강복희가 다리를 끄는 소리, 또는 최광식이 그녀를 끌고 올라가는 소리.
나는 더 빠르게 올라갔다.
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졌을 때 상체를 숙이고 갈아입은 하얀 점퍼를 입고 쌓인 눈 쪽으로 다가갔다.
멧돼지 같은 그놈은 분명 숨소리도 거칠 것이다.
나는 세심하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깊은 밤 토끼가 뛰는 소리를 따라 찾아냈을 때처럼.
역시 돼지가 헉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거친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 참아 내느라 호흡곤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나는 조금씩 다가갔다.
산이 말하는 소리를 곧 잘 듣는 강복희는 내가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 커다란 눈덩이가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투둑”
우리 셋은 모두 동시에 움직였다.
놈도 그녀도 나도 바스락, 하며 소리를 냈다.
누가 먼저 눈치를 챘을까, 나는 놈의 멧돼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뛰었다.
지금은 속도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총을 앞으로 겨누며 얼어붙어 흰 점으로 보이는 눈썹을 계속 비볐다.
아, 강복희다.
강복희를 본 순간 나는 덫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짐승 같은 그놈이 사라졌다.
분명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강복희의 입에는 잔인하게도 재갈을 물렸다.
작디작은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강복희는 나를 발견한 후, 나의 오른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짐승이 오른쪽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해야 했다. 강복희의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놓은 후 그녀를 먼저 내려 보낼 것인가, 아니면 나의 오른쪽 어딘가 위치하고 있는 짐승에게 총을 겨눠야 할 것인가.
나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뒤를 빠르게 돌아 왼쪽으로 총을 겨눴다.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강복희에게 다가갔다.
어떤 소름 끼치는 말이라도 해서 놈을 협박해야 했다.
나는 소리쳤다.
“당신의 내장이 내는 소리까지 들려
튀어나왔다간 대가리가 날아갈 거야”
나의 한쪽 팔이 스파이더맨처럼 길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강복희가 자신의 몸을 질질 끌며 내게 가까워지려 했다.
아, 드디어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팔목을 칭칭 감고 있는 끈을 풀어내야 한다.
한 손으로 감긴 끈을 풀어내기 란, 초조함을 극한으로 만들었다.
“아 이런 젠장”
놈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총을 발사했다.
정말이지 나는 삶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모양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극한은 나의 솔직한 욕구를 받아들이게 했다.
그때 짐승이 신음을 뱉었다.
“이어 억”
강복희가 풀어낸 끈을 마구 휘날리며 입 안의 재갈을 뱉어 냈다.
“으어헙, 헉헉”
찢어진 입가에 고통이 큰 모양이다.
강복희가 말했다.
“맞은 모양이에요”
“쉿 말하지 말아요
총 맞았습니까?”
강복희가 고개를 도리질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내려가세요”
강복희의 고개를 당연히 아니다, 이다.
나는 욕을 뱉었다.
“이런 젠장, 그게 날 도와주는 거야
내려가라고”
놈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게 분명하다. 이 소리를 놓치기 전에 잡아야 한다.
“서둘러”
강복희는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숨만 길게 내쉬었다.
강복희가 챙겨준 핫 팩을 정강이 주머니 속에 챙겼다.
목숨이 오가는 중 핫팩이라니.
나는 다시 놈의 흔적을 좇았다. 분명 놈은 총을 맞았다.
큰일이다. 해가 지고 있었고, 추위에 바람까지 매서워졌다. 이제부터는 기나긴 체력 싸움이 될 것이다.
산의 끝, 정상 부분까지 닿았다.
대체 이 멧돼지 같은 놈은 어디로 사라진 건가.
검은 하늘과 같은 어둠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니 잠시 동안의 공포를 느꼈다.
나는 눈이 녹은 젓은 나뭇잎 위에 앉았다. 온몸을 웅크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강복희가 전해준 핫 팩은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 쓰기로 했다.
역시 그녀는 천재다.
최광식을 만난 후, 난 윤리적 도의에 대해 헷갈렸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벌인 일들로 인해 놈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최광식은 말했다. 그 죄까지 안고 태어난 것이라고.
그렇다면 최광식이 행한 모든 것들은 피해자로서 복수극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는 건가?
나의 인생은 그로 인해 열다섯에 끝나지 않았는가.
나는 피해자다.
최광식은…
피해자… 다.
생각을 해야 한다.
나의 복수극은 최광식을 만난 후부터 끝이 났다.
이제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불과하다. 그가 나의 외할아버지에게 지르는 처절한 고통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놈이 피해자라는 것은 이해한다.
아, 잠깐 정신을 놓았던 것 같다. 눈을 뜨려 했지만 얼어붙은 모양이다.
나의 두 손을 감싼 후 눈두덩 위에 얹었다. 천천히 눈을 떴지만 어둠이 나를 반겼다.
눈이 다시 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눈의 크기는 밤톨 만한 크기다.
놈은 분명 상체 쪽에 총을 맞았을 것이다. 피를 많이 흘렸다면 이 강추위에 체온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놈도 지금의 시간은 휴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강복희와 약속했던 그곳으로 향했다. 나침반을 두고 가까이 있음을 인지했다.
아, 강복희 강복희
이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인가?
무기도 없이 겁도 없이 그곳에서 노란 불빛을 만들고 무언가를 구워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여자는 목숨에 미련이 없는 사람 같다.
나의 화는 소용없는 것임을 인지하고 침묵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후우”
강복희가 새카만 무언가를 건넸다.
“뭡니까?”
“버섯입니다”
나는 그 버섯을 받아 들지 않았다.
“그래요 독버섯 일 수 있으니 나를 확인하고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나는 말할 힘도 나지 않았다. 노
란 불빛의 따뜻함은 나의 생명에 대한 욕구를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이렇듯 삶에 욕구가 강했었나.
강복희 때문인가.
강복희가 눈을 녹인 물로 얼굴을 닦아냈다.
확인할 수 없던 그녀의 입가 상처가 도드라졌다.
“아, 이런
대체 어찌 된 겁니까”
강복희의 고통이 전해졌다.
“최광식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지
지 아버지를 꼭 닮았지요
아버지의 잔인함은 고통이고
자신의 잔인함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피해자에게 당연히 있어야 하는 당연함
직접 그 사람이 한 말입니다”
강복희의 찢어진 입가가 피로 늘러 붙어 있었고, 말라버린 그것을 닦아내는 동안 그녀의 미간은 들쑥날쑥했다.
“큰일이군, 비상약이 없어서”
그녀가 버섯을 들어 올렸다.
“그 사람의 눈은 지금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의 것입니다 나를 패대기쳤고
그때 얼굴이 땅에 쓸렸어요
그리고 재갈을 물렸는데, 가방 속에서 나온 재갈은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런데 강복희 씨가 함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분명 당신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짐승의 눈은 다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게 짐승이니까”
조금씩 추위가 녹아내리는 나의 몸은 힘이 풀렸다.
잠이 부족했고 허기졌다.
강복희는 나의 눈치를 보며 버섯을 들었다.
“먹어요, 이것만큼 힘이 나는 건 없습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것을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나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아…”
마치 고기를 씹었을 때처럼 육즙이 새어 나왔다.
고기를 씹는 것처럼 쫀득거렸고 갈증이 풀어졌다. 커다란 버섯 하나에 허기를 면한 셈이다.
정말이지 이 여자는 미스터리다.
그녀가 말했다.
“그때는 늘 배를 곯았지
그리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고
그중에 가장 맛있는 게 이것이었지
난, 최광식이 만든 사람입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분명 최광식이 이 여자의 다리에 장애를 만들어 놓았다고 들었다.
순간, 졸음이 달아났고, 주머니 속의 총의 형체를 손으로 확인했다.
나는 그날 강복희의 정체를 알았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최광식이 잘 알고 있었던 지하 세계에서 로봇처럼 조종당하며 자신의 인생 없이 살았던 사람이었다.
고아원에서 보호가 끝난 후, 독립을 했지만 늘어난 건 빚이었고 어린 나이에 인생을 빼앗겨버렸다.
나소희처럼.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야 했고, 그 돈은 그녀가 알지도 못하는 놈에게 넘어갔다.
12시간을 꼬박 그 세계에서 머물러야 했다.
나소희처럼.
운이 좋은 날, 강복희는 몇 개월 만에 햇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늘 갇혀 지내던 터라 햇빛은 그녀를 다치게 할 정도였다.
봄볕과, 처음 보는 꽃, 그리고 새싹들, 사람들의 웃음소리, 바람소리, 를 만끽했다.
한 시간 동안 주어진 시간에 그녀는 결론을 지어야 했다.
강복희는 그때 자신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처럼.
나소희처럼.
공원 한 복판에서 강복희는 죽기 위해 발버둥 쳤다.
빠르게 몸은 늘어지고 있었고, 학생 때부터 몸짓이 컸던 최광식은 그녀를 보자마자 위험을 감지했고 달렸다.
최광식이 그때 강복희에게 말했다.
“내 엄마가 맞고 나면 늘 그랬지”
그리고 강복희를 둘러업고 달렸다.
이 성으로.
나소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예쁘게 목을 매달아야 해
예쁘게 죽어야 하니까, 그때만이 자유로워 훨훨”
나소희는 자신이 가장 예쁠 수 있을 때가 죽을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강복희가 공원 한 복판에서 예쁜 것들을 눈에 넣으며 봄볕에 몸을 맡기고 싶었을 때도 나소희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다시 나소희의 애잔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쁘게 죽고 싶었어
나의 자유, 훨훨 날고 싶었어”
또 다른 나의 박쥐인간 나소희
1-3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으어어어 억”
나의 성이 아닌 작은 동굴이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인기척을 느낀 박쥐들이 떼를 지어 파닥거렸다.
강복희가 보이지 않았다.
노란 불빛은 회색 재로 연기를 뿜고 있었고, 그녀가 닦아 낸 피로 얼룩진 휴지가 가득했다.
어젯밤 잠결에 강복희의 말이 번뜩, 생각났다.
“최광식은 나를 죽이지 못합니다”
맙소사, 총이 사라졌다.
나는 빠르게 짐을 챙겼다. 그리고 다 식어 빠진 버섯을 입 안에 구겨 넣고 녹은 눈을 벌컥거렸다.
정강이 주머니 속, 칼을 확인했다.
아직 채 꺼지지 않은 불씨를 마구 짓이겼다.
동굴 밖을 나오며 조용히 말했다.
“강복희, 강복희”
나는 빠르게 최광식의 어머니가 떨어진 그곳을 향해 올랐다.
비축한 체력은 한껏 올라온 상태였고, 기온은 어제 보다 높았다. 서둘러야 한다.
강복희는 왜, 최광식을 죽이려 할까.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지 않은가.
어제 보다 빠른 속도로 정상까지 올랐다. 햇빛이 눈을 자극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수평선 같다.
나는 가장 우거진 곳을 찾았다.
죽은 나무가 탁자처럼 누워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밤 새 내린 눈의 양은 대단했다.
이 산을 잘 아는 자만이 이기는 게임이다.
갑자기 나의 등 뒤의 느낌이 서늘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최광식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나를 덮쳤다.
“으아아악”
나는, 우린 어딘지 모를 내리막길로 꽤 오랫동안 굴러갔다.
겨드랑이 밑 통증이 아주 날카롭고 뜨거웠다.
최광식의 체구는 나를 집어삼킬 만했다. 나는 최대한 최광식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바퀴를 돌 때마다 그의 체격은 나의 외상을 줄어들게 했을 것이다.
“멍청한 새끼”
놈과 나는 통증에 몸부림쳤고 우린 똑같이 눈치를 볼 뿐 일어설 수가 없다.
짐승의 소리가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으어어어 젠장 젠장
찢어 버릴 거야, 죽어버려”
저 놈이 피해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 놈은 사이코패스 물망에 올랐을 것이다.
우린 멀찌감치 나동그라졌다.
놈도 충격이 큰 모양이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놈이 일어나기 전에, 총을 겨누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야 해.
나는 정강이 속의 칼을 집어 들었다. 겨드랑이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저 놈이 다시 또 나를 덮치기라도 한다면 칼을 꼿꼿이 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놈은 차라리 총을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칼을 심장 위로 바싹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넌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야
내 인생을 망치기 시작할 때부터 넌 피해자가 아니었어
더러운 복수극이란 것을
세상이 다 알 거야
이제 내가 온전한 피해자가 될 거야”
그놈이 덮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놈과 눈이 마주쳤다.
놈이 한쪽 발을 디디고 있었다. 한 손이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분명 총일 것이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놈에게 덤벼들었다.
엎드린 채 일어나려 애쓰던 놈의 뒷목에 칼이 꽂혔다.
세상에, 이게 되는 일이다. 내가 놈의 목을 뚫었다.
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놈은 다른 어딘가 큰 부상을 입은 듯해 보였다. 놈의 신음이 점점 커지더니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나는 두 팔로 땅을 짚으며 두 다리로 쌓인 눈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아, 나도 이제 더 이상 최광식처럼 완벽한 피해자가 아닌 것이다.
꽂힌 칼이 증명한다.
젠장
순간 최광식이 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놈은 천천히 바닥에 총을 들어 나를 겨누었다. 놈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천천히 읊조렸다.
“죽어 없어질 텐데, 피해자 같은 소리”
나는 말했다.
“얼른 쏴야 할 거야”
최광식은 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총구멍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놈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게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몸의 방향을 틀었다. 겨드랑이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젠장, 나뭇가지가 박혀 있었다.
타아앙
최광식이 헛발을 날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소리 내지 않았다. 다시 조용히 몸을 틀었다.
타아앙
또다시 헛발이다.
놈이 신음을 토했다.
“으어어 억”
꽤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놈이 뒷목에서 칼을 뽑으려 애를 썼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그만할 수 있어 그만하자
이 정도면 비긴 거야
내 인생도 네 인생도 종착역이지 않나?”
그때 다시
타아앙
악, 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가, 엄청난 힘에 의해 나의 어깨가 뒤로 밀려났다.
굉장한 힘이었다. 나의 몸이 순간 공중으로 붕, 뜨더니 바닥에 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나의 몸이 통증으로 칭칭 감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다듬어야 한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들어 올렸다.
나의 몸이 하얀 눈 위를 쓸고 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끌고 있었다.
분명 놈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놈이 끌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겨우 소리쳤다.
“최광식, 최광식”
한숨 소리가 길게 베어져 나왔고 반가운 강복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납니다, 강복희”
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대체”
“말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니까”
“최광식은 놈은…”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체포 영장이 발급된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린 최광식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나를 찾아왔다.
어차피 잡혀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나를 꼭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누구나 찾을 수 있었던 갤러리, 또는 아버지의 집, 어머니의 집은 도움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은 여러 날을 그들의 집 앞에서 밤을 새웠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끝내 은수와 어머니를 설득했고 그렇게 나의 성이 발각되고 말았다.
그 시기는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최광식과 내가 누가 더 진짜 피해자인지를 두고 싸움을 할 동안 그들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정신을 잃은 채 이틀을 보냈다. 정신이 들자마자 손 끝의 감촉을 느껴보았다.
아주 깨끗한 시트일 것이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냄새는 분명 알코올 냄새 또는 시트를 깨끗이 빨아낸 락스의 냄새였다.
나의 마지막 기억, 강복희의 목소리다.
이런, 눈을 뜨자마자 정난희의 얼굴이라니, 그래도 반갑긴 하다.
“오, 한주 씨 눈 떴네?
휴우우, 어때요?”
나는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억지로 말하지 말아요
결국은 사건에 끝이 있긴 한 법”
정난희는 약간의 미소를 흘렸다.
내가 최광식에게 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을 때, 놈도 함께 정신을 잃었다.
나를 찾고 있던 강복희는 또다시 쉽게 나와 최광식을 찾았고 목숨이 질긴 놈과 나는 또다시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그 틈을 타 강복희는 빠르게 최광식에게 총을 겨누었고 그는 그렇게 다시 사라졌다.
놈은 참 산짐승처럼 잘 버텨냈다.
삼일 동안은 최광식의 승리였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대체 며칠을 어떻게 버텼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경찰은 최광식을 어머니가 떨어진 절벽까지 몰아갔고, 항복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마치 누가 옷깃을 당기기라도 했던 것처럼 소리쳤다.
“놔, 놔 놓으라고
아악”
최광식은 홀로 몸부림치며 절벽으로 떨어졌다.
나는 3주 동안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다시 경찰과 대면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건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나소희는 결국 날아가지 못하고 부검에 들어갔다. 그것만은 막고 싶었지만 나의 능력은 이곳까지였다.
그녀의 몸은 아주 오랫동안 마약에 절어 있었던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아름답지 못한 자살로 종결되었다.
나는 수많은 오해 속에서 진실을 풀어내야 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내가 나소희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나소희의 몸에서는 나의 지문이 수도 없이 나왔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의 것들로 채워진 상태였다.
결국, 정난희도 마지막에는 나를 의심했다.
정황상 당연히 나에게 가해 한 자를 누가 살려줄 수 있을까?
경찰과의 마지막 면담에서 나는 말했다.
“나소희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최광식도 피해자입니다”
나는 다시 나의 성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강복희가 있었다.
“왜 돌아가지 않고”
강복희는 묵묵히 고개를 조금 숙여 보였고 위스키를 따른 잔을 내게 내밀었다.
강복희의 한쪽 다리는 다시 예전처럼 느리게 질질 끌려 다녔다.
나는 강복희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왜, 최광식을 죽이려 했습니까?
당신을 살려준 사람이지 않나?”
강복희는 침묵을 꽤 오래 지키다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끝내 줘야 하니까…
소희가 지옥에서 탈출했던 것처럼”
강복희는 나소희를 소희라, 다시 나직이 말하며 사라졌다.
1-4
정난희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내게 눈빛으로 재촉했다.
다음 스케줄을 맞추기 위한 정난희의 눈치다. 나는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빠르게 자리를 옮겨야 했다.
수많은 인파들이 내게 소리쳤다.
“유한주 유한주”
나는 박쥐 인간을 시리즈로 만들었다.
작품 속에는 나의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가 있었으며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최광식의 죽음으로 인해 나를 벌레라도 되는 듯 바라보던 그 시선들은 사라졌다.
순식간에 나는 다른 이유로 다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세상은 룰, 이라는 게 분명 있다.
선함은 악함을 이기고 악함도 선함을 이긴다.
그 이상한 답에 대중들은 줄을 서며 더 많은 숫자의 대중에게 귀 기울인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주 웃기는 드라마다.
수적으로 이긴 대중들은 나를 진짜 피해자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애잔한 눈빛을 보낸다.
“유한주 씨 당신의 인생을
이젠 보상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또다시 내가 벌이 아닌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나의 일에 눈을 크게 뜨고 앞장서고 있다.
이십 년 전 그들이 내린 벌은 굉장히 혹독 했었다.
헌데 이젠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나는 피해자인가.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정난희가 옆 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말했다.
“얼른 출발해요
이번 인터뷰는 늦으면 안돼요
한주 씨는 눈 좀 붙여요”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쯧, 안 됐군
다시 또 나라서”
정난희가 훗, 하며 웃는 소리가 귓속에 박혔다.
오랜만에 나는 나의 성에 도착했다.
거의 한 달 만이다. 여전히 강복희는 이곳에 남아 있었다.
늦은 귀가로 그녀가 잠에서 깨면 안 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그녀는 모기의 날개 짓에도 장애가 있는 느린 발을 빠르게 걸어 달려올 사람인 것을.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적막을 깨며 드르륵, 거렸다.
응접실에는 미완성 박쥐 인간 시리즈가 널려 있었다.
나는 겉옷을 벗어 놓기가 무섭게 미완성된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때 위층에서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강복희?”
강복희가 위층에 있을 리 없다.
그녀는 나의 공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계단으로 올라섰다.
독한 락스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를 따라 욕실로 향했다.
욕조 안에는 얼굴과 온몸이 백지장처럼 하얀 여자가 누워 있었고 강복희는 하얀 여자의 머리를 빗어 내리고 있었다. 강복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강복희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집중을 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녀의 눈에 희미한 빛이 맺혀있었다.
강복희가 말했다.
“이 아인 너무 특별해서
위층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눈을 번뜩거리며 강복희를 노려보았다.
“소희처럼 사악한 것들에게
당했습니다, 임신까지"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빠르게 인식했다.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 심장은 고요했다.
강복희가 속삭였다.
“고통 없이 죽었으니…
이제 편하지?
훨훨 날아
훨훨"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최광식의 어머니가 절벽에서 알몸으로 서 있다. 그 옆에는 강복희가 함께 있었다.
강복희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차라리 죽어
네 아들을 위해서
저기 위로 날아가는 거야
훨훨
훨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