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착각

11. 늪

by 금봉





이른 아침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나오코는 늘 꿈꿨다.


쇼가 유치원을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늘 확신하고 살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세월 속 나오코는

늘 불안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지금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쁨과 부르짖음은

그녀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들은 꽤, 행복한

가족임이 틀림이 없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흘러간다.

그것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나오코는 오늘 하루도

바쁘게 움직여 본다.


나오코가 간단한 아침을

차리는 동안

겐토는 쇼를 깨운다.

어떨 땐, 쇼가 먼저 일어나

스스로 이를 닦는 일도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나오코는 생각한다.


‘너는 완벽한 정상이야.’


이 생각은 전혀 무리가

아니라며 유치원에서

잦은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여보, 어서 와요.”


요즘 들어 속이

편치 않다고 말하는 겐토를 위해

소화가 잘되는 밥상을 차렸다.

걸쭉하게 갈린 마가

시각적으로 그리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겐토는 자신을 위해

애쓴 그녀가 고맙다.


“와, 잘 먹을 게 나오코.”


“쇼는 요?”


겐토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쇼를 부른다.


“쇼, 밥 먹자.”


방에서 걸어 나오는

쇼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바지춤으로 빠져나온

티셔츠가 잘 정리가 되지 않아

심술이 잔뜩 고인 게 분명하다.

나오코는 쇼에게 다가가

아주 천천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시

정돈하기 시작했다.


“쇼오, 안된다고 짜증 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응?”


쇼는 마치 기계처럼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대답한다.


“네, 잘못된 거겠죠.”


“자 엄마가 하는 것 좀 봐 봐.”


쇼는 나오코의 강압적인 손이

싫었는지 식탁에 억지로

앉으려 안간힘을 쓴다.


“밥, 먹을 거예요, 밥.”


“쇼오, 옷을 입고 앉는 거야.”


“밥 먹을래요.”


나오코는 쇼의

이 정도 고집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똑바로 서지 않으면 밥은 못 먹어.”


쇼가 고개를 숙이며

나오코에게 눈을 치켜뜬다.


“네가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어.”


겐토는 자주 벌어지는

이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불편하거나 처음 맞는

상황처럼 버겁지만,

매번 그녀의 훈육하는

방법대로 맞춰 준다.


“자, 됐지?”


쇼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이제 밥 먹을까?”


“네.”


겐토의 긴 한숨이 이어진다.


“후우, 쇼 착하구나!”


쇼의 젓가락질이 바쁘다.

급한 마음에 젓가락을

쓰지 않던 쇼는 유치원을 다니고 나서

행동이 달라졌다.

자기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하는 젓가락질이

신기하거나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어른보다 더

능숙한 솜씨로 밥을 먹는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일찍 들어올 거야.”


“나 약속 있는 거 알죠?”


“그럼.”


겐토는 걸쭉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잘 먹었어, 나오코.”


그녀는 대답 없이

빈 그릇을 치우기 바쁘다.


출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쇼오, 엄마에게 인사해야 지?”


쇼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말을 따라 뱉는다.


“잘 먹었어, 나오코.”


그가 쇼를 보며 웃었다.


“이 녀석 봐라?”


나오코는 어이가 없었는지

꾸중 대신 쇼의 머리를 쓸었다.


“쇼오, 그래 엄마 이름은 나오코야.”


“하하하하.”


쇼가 다시 그녀의 이름을 말한다.


“나오코 나오코.”


나오코는 시간을 확인하며

쇼의 준비물을 챙겨

가방 안에 넣으며 말했다.


“쇼, 오늘은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야,

수영, 알지?”


물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쇼의 얼굴에 수영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미소가 번진다.

이럴 땐 쇼가 정말 사랑스럽다.


“수영 좋아요.”


“자, 쇼 가자 가자 오늘도 늦겠다.”


나오코는 쇼의 등에

가방을 들어주며 인사한다.


“쇼 오늘도 잘 참기, 알지?”


그녀가 늘 잊지 않는 인사다.


“네.”


“나오코 다녀올게.”


“응, 다녀와요.”


나오코는 베란다 문을 열어

그들의 동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네코처럼 확인했다.

이른 아침 그녀의 입에서

아주 긴 한숨이 배어 나오면

바쁜 시간을 넘겼다는 뜻이다.


“후아아하.”


삐죽, 사방으로 튀어나온

긴 머리칼을 다시 틀어 올려

질끈 묶고, 현관 복도 끝,

작은 방으로 변함없이

발을 옮긴다.

한여름 향냄새는

그녀 또한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늘 하는 행동이지만

그곳에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커다란 공책에 무언가

적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쇼가 걸어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연기가 나고 있는 향을

감싸고 있는 유리막은 필수다.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지만

볼 때마다 뿌듯하다.


나오코는 본격적으로

청소하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반찬은 꼭,

골칫거리다.

그녀는 늘 그것들을

빈 접시에 따로 담아 보관한다.

절대 먹다 남은 반찬은

겐토나, 쇼에게 절대 주지 않고

그녀가 해결한다.

또한 그런 것 따위로,

남편에게 보상을 받고 싶지도

고맙다는 소리를 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녀에게 가족의 의미는

그녀가 믿는 신보다도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엔 하즈키 또한 꼭 포함된다.


쇼의 귀가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녀는 입술이 바짝 마른다.

그때까지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유치원에서 적지 않은 문제로

쇼가 오기 전 전화벨이 울리면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굴었다.

그녀는 더운 여름에

꼭 입어 줘야 할 흰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마저 끼우며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흐음.”


적막 속에서 원치 않던

소리가 들렸다.


“따릉 따릉, 따르르릉.”


“네, 여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겐토의 목소리는 정말 반갑다.


“나야, 좀 일찍 나왔어,

가는 길에 쇼는 내가 데리고 갈게.

당신 기다리지 말고 외출해.”


“아… 놀랐어.”


“응?”


“아니에요, 저녁은 챙겨 놨어요.”


“응, 다녀와.”


“참, 쇼 약 먹이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다녀 올 게요.”


“응.”


그녀의 얼굴은 마치

수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소 짓는 쇼의 얼굴과

참 비슷하다.


흰 블라우스와 베이지색 바지,

길게 늘어뜨린 까만 머리칼,

누가 봐도 평범한 주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겐토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베이지 톤의 립스틱은

어색할 듯하지만,

꽤 잘 어울렸다.


그녀는 들고 갈 짐이 걱정이다.

두 팔을 바닥 끝까지

늘어뜨린 후, 높은 구두를

포기하고 낮은 구두를 신었다.

한결 편하다.


밤새 내린 비 덕에

더위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바람은 봄바람처럼 청량했고

하늘은 맑았다.


코하네는 결혼 후,

삶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불규칙했던 수면과

규칙적이지 않던 식습관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결혼 전 하즈키의 집에서

결혼 생활을 한다고

무엇이 변할까란 생각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생각이었다.

결혼, 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과 변화는 대단하다.


가끔 그와의 결혼 생활을 포기한

마나츠를 떠올리면

어떻게 헤어짐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의 대한

고통을 생각하면

위에 복통이 생길 정도다.

코하네는 진심으로

마나츠의 행복과

건강한 출산을 위해 기도했다.


그녀는 결혼 전,

하즈키의 집에 자주 머물지 않았다.

알다시피 잦은 나오코의

출현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후, 방문은

처음이긴 하지만

결혼 전의 나오코와

결혼 후의 나오코는

그녀에게 뭔가 달라져도

달라진 느낌을 씻을 수는 없었다.


좁은 공간을 꾸민다고

신경은 썼으나,

손이 닿은,

정성을 쏟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애꿎은 백합의 장소만

반복하여 옮겨가는 중이다.


새로 장만한 그릇,

좀 더 커진 옷장,

나란히 놓여 있는 슬리퍼,

모든 것이 새하얗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오코가 사놓았던 것들은

모두 정리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가 이제까지 썼던

물건들이 나오코가 준비해 둔

것들이라고 코하네는 상상도 알지도 못한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물건들을 바꾼다는 것 또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창문 너머로 나오코의

목소리가 들린다.


“류우 류우우우.”


코하네는 재빨리 밖을 바라보았다.

두 손에 잔뜩 쥔 짐이 눈에 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오코는 어울리지 않은

짐을 들고 있어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출처, 슬로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야?”


코하네는 허둥지둥이다.


“앗, 응응.”


그녀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냉장고 안의 보리차를

꺼내 벌컥거렸다.


“하아아, 여름엔

이게 없으면 섭섭하지.”


그녀의 이마와 목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코하네는 선풍기를

그녀 가까이 옮기며 말했다.


“좀 앉아서 쉬어.”


“차를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주차장이

마땅하지가 않아서.”


차는 겐토가 끌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꺼냈다.


“그렇지.”


“어디 보자. 냉장고 안에

모두 들어갈까 몰라.”


그녀는 계속 코하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코하네가 말했다.


“나오코?”


냉장고 안의 것들을

살피며 대답한다.


“응.”


“고마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고맙긴, 하즈키는 꼭,

만들기 힘든 음식들만 좋아하거든.”


이번에 그녀가 꺼낸 말은

코하네가 정말 얼어붙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맛있게

먹는 일만 남은 거지.”


대답 없이 멀뚱히 서 있는

코하네를 그녀는 흘긋거린다.


“자, 됐다. 그래도

냉장고는 안 바꿨네?”


“응.”


그녀는 보리차를 다시 꿀꺽거리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참, 손 말이야.”


코하네는 다친 손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한다.


“응, 괜찮아 다 나았어.”


실크처럼 부드러운

나오코의 손이

그녀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많이 꿰맸구나?”


“괜찮아.”


“으이그, 다행이야 이 정도라서.”


나오코는 새하얀 침대에

풀썩, 앉는다.


“침대는 그냥 쓰네?”


“응, 아직 쓸만해.”


“이 침대, 정말 좋은 거야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골랐는지 모를 거야
적어도 다섯 군데 매장은

다닌 거 같아.”


코하네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응? 몰랐구나?

뭐 중요하지 않으니까.”


코하네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진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정말 낯선 그만큼

코하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동요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그녀의 말은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참, 하즈키는 늦어?”


“응, 오늘은 야근이야.”


나오코가 마치

코하네를 흘기듯 바라보았다.


“토요일까지 야근이라니…”


코하네는 마치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오코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화장실 좀.”


“응.”


“바로 나가자, 준비해.”


“응.”


노란 불빛에도

화장실 안은 하얗게

빛이 난다.

한 사람만 들어가도

좁은 욕조도 전과 다르게 하얗다.

서로 다른 색으로

남과 여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나란한

칫솔이 꽤 다정해 보인다.

거무튀튀한 낡은 타일도

색을 입어 반짝거린다.


나오코가 근사한 곳을

예약해 두었다고

며칠 전부터 얘기를 늘어놓았다.

코하네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의아했던 건, 그곳이

예전에 마호와 함께

일을 했던 곳이라는 것을

나오코는 몰랐다는 것이다.

물론 나오코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그녀였지만

정말 의아했다.

코하네는 당연히

마호가 없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편하진 않았지만 피할 일도 없었다.

당연히 리리카는

그녀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그 장단에 맞출

성격은 아니었지만

리리카가 반가운 건 당연했다.

리리카는 자리를 비켜 줄

생각이 없는 듯해 보인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나오코의 불편함이

얼굴에 배어 나왔다.

끝도 없이 쉴 새 없이

말하는 리리카가 신기하다.


찻잔을 내려놓는 나오코의 손길이 거칠다.

그 소리에 눈치챈 리리카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어머, 내 정신,

손님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눈치 없이, 죄송합니다.”


코하네가 재빨리 대신 말한다.


“아, 나오코 미안.”


나오코는 창밖만 바라본다.

리리카가 코하네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사라졌다.


“여기가 그곳이라니,

상상도 못 했어
문두스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오래전이라, 그랬을 거야.”


“뭐, 어쨌든 여기 음식이

참 유명해,

예약하지 않으면 못 올 정도야.”


“그래? 여기 참 많이 변했어,

내가 있을 때와는 참, 달라.”


나오코가 주변을 살피며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백합은?”


나오코는 코하네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모조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코하네는 너무 당황스럽다.


“아, 백합.”


“저 꽃, 혹시 가격 알아?”


“글쎄.”


“비싼 가격이야,

그런데 저걸 일주일에 한 번씩

바꿔야 한다면…
흠, 나라면 조화를

둘 텐데 말이야.”


점점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코하네의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올라옴을 느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한

마호의 얼굴이 결국 떠올랐다.

나오코는 꼭, 넌 잘못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여긴 문두스라는 이름 보다,
백합이란 단어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어.
그래서 아마 나도

그곳이 여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나 봐.”


고개를 떨군 채,

마호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소리 나지 않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때마침, 검은 조끼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 직원이

아주 무거워 보이는

접시를 양쪽 손에 들고 다가온다.


“실례합니다, 식사 놓아 드리겠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식기부터 고급스럽다.

밥 위에 올려진 생선의

색깔은 너무도 선명해서

물감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

“혹시 설명이 필요한

음식이 있으신지요?”


나오코가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하얀 투명 커튼을

닫아 주면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코하네, 먹을 준비됐지?”


“잘 먹을 게, 하즈키에게 미안한데?”


된장국을 마신 후 나오코가 말했다.


“미안하긴, 그 사람이랑 하즈키도 왔었어.”


“으응?”


“몰랐구나?”


그녀도 따라 된장국을 마시며 말했다.


“글쎄, 모르겠어.”


“섬에 갔을 때 말이야,

한참 전이지 아마, 그때 왔을 거야.”


코하네의 입속에 들어간

초밥이 다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나오는 기침을 참으려

입을 틀어막았다.

눈동자가 벌겋게 달아오름을 느낀다.


“왜 그래? 괜찮아?”


나오코가 맥주를 내밀었다.


“응, 괜찮아.”


“천천히 먹어.”


코하네는 커다란 컵에
들어 있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켠다.

이곳은 정말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곳곳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돋보이게 해 주는 하얀 커튼이

눈에 띄었다.

하얀 커튼은

정말 백합과 잘 어울린다.

식사를 끝내고

마시는 녹차의 맛이 일품이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나오코에게 말했다.


“나오코, 정말 잘 먹었어,

다음엔 꼭 내가.”


“잘 먹어서 좋아,

살이 좀 붙었으면 좋겠어. 응?”


코하네의 눈가가 길어진다.


“힛, 응.”


“참, 마호 씨는

아예 이곳에 없는 거야?”


“글쎄.”


“응? 글쎄라니? 연락, 안돼?”


“응.”


“응, 이라고?”


“응.”


코하네는 정말 마호에 대해서

그녀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하긴, 마호 씨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나라도 할 수 없을 거야.”


코하네는 왜 자꾸,

자신의 기분을 흔들어 놓는지

나오코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는 빠르게 벌떡 일어선다.


“가자, 나오코.”


“벌써?”


그녀는 나오코의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서며 걸었다.

리리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나오코, 잠시

인사만 나누고 나갈게.”


나오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로 향한다.

리리카는 그녀를 보자

마치 다시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호들갑이다.


“코하네, 정말 반가워,

잘 지낸 거지?
결혼 생활은 어때?
참, 저 여자 혹시 남편 동생 아니니?
성당에서 본 것 같은데 말이야.”


코하네가 웃으며 말했다.


“아 리리, 뭐부터 대답할까?”


“하하, 미안 미안.”


“리리 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친구이자 남편 동생도 맞고,
리리카도 아주 좋아 보여.”


“어쩐지, 흠, 저 여자

너 좀 힘들게 하겠는걸?”


“리리, 무슨 소리하는 거야? 쫌…”


“알았어, 알았다고,

가끔씩이라도 보자, 응?”


코하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리리카는 역시

눈치 빠른 사람이다.


“마호는 여기 없어,

당연히. 섬에 있어,
아마 오랫동안 머물 거야,

뭐 가끔 들르지만, 주인장이니까.”


“응, 그래.”


“안부 전해 줄게.”


“응, 고마워. 리리

잘 지내, 오늘 고마웠어.”


“고맙긴, 칫.”


“갈게 수고해.”


“응, 멀리 안나가.”


밖을 나오자마자

습한 공기가 아주 빠르게

몸을 끈적거리게 만든다.

해가 사라진 후에도

더위는 식을 줄 몰라 기승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두스에 오게 된 건,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호는 그녀의 생각대로

섬에 머무는 중이다.


짐작했던 것이 확실해지자

마음이 편안하다.

눈을 감으면 바다가

노을에 물들어 반짝거리는 곳을

그가 달리는 그림이 그려진다.

뜨거운 모래를 밟고

말도 안 되는 음악을 들으며

그는 달리고 또 달린다.


출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바닷길을 달린 지 한 시간이 넘어간다. 오랫동안 달리고 있음을 각인되는 건 되풀이되는 같은 배경이다. 처음 시작한 곳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학학거렸다.

“하아, 하아, 학학.”

남은 생수를 모두 들이키고 주머니에 페트병을 종이처럼 구겨 넣었다.

“후 하아하…”

뜨거웠던 모래알이 지는 태양처럼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모래사장에 앉기가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어둠이 깔리기 전 바다색은 새벽과 같다. 마호가 갑자기 피식거린다.

“하루 종일, 또. 한심한 놈.”

거부할수록 선명해지는 건 모든 것이 하얀 코하네의 기억이다. 그도 이젠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마호는 미쿠의 생일을 위해 잠시 이곳에 머물기로 했지만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의 생일에 하필, 왜 언짢은 얘기를 꺼냈는지 그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녀가 오해하도록 또는 기대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코하네 소식은? 같이 올 줄 알았다.”

미쿠는 그녀의 발길도 예전처럼 닿을 줄 알고 내심 기대가 컸다. 마호가 농담을 던지듯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코하네는 이제 오기 힘들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겐타가 말했다.

“결혼했다 하더이다.”

어렵게 말을 풀어내려 한, 마호는 그가 고맙기도 난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쿠는 온몸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코하네는 그녀에게 딸과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마호와 결혼할 거라 믿었고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 또한 철저하게 해 왔다. 그녀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 보다 더 강렬한 그 무엇이었다.

미쿠는 마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왜, 소중한 아들의 얼굴을 진작 알아채지 못했는지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가끔 비치는 공허한 아들의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왜,라는 단어만 생각했을 뿐,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코하네의 곁에 있는 아들의 모습은 늘 불안해 보이거나 초조해 보였다. 남자와 여자의 사이는 그들만이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 왜,라는 물음으로 아들을 대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미쿠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고 침묵을 지키며 주책맞게 찾아온 자신의 생일을 원망하며 음식들을 담아 날랐다. 준비할 시간 없이 훅, 하고 들어온 상처 깊은 말은 자신보다 더 힘들었을 아들 생각에 꽤 고통스러워 보였다.

섬은 한여름 성수기를 맞이한다. 나뭇가지에 달린 풍성한 잎들도 바빠 보인다. 숙박객들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 마호는 겐타 대신 청소 업무를 맡았다. 다른 여관과 달리 이곳의 체크아웃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물론 모든 숙박객은 내심 알아서 늦어도 4시 전에는 방을 비워주고 떠난다.

그들은 덕분에 바쁘게 무언가 쫓기듯 여행을 마무리하지 않아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정해져 있지 않은 시간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숙박객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그들을 놓칠 때가 많지만 미쿠와 겐타는 그 점에 연연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남아 있는 방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체크아웃하지 않은 숙박객이 있었다. 물론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다른 곳까지 발을 옮길 힘이 남아 있지 않다며 기다리겠다고 한 상태였다. 미쿠는 청소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자신의 안방을 내어주기도 했다.

물론 자정이 되기 전 그들은 숙박객의 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천막을 쳐 놓은 곳에서 미쿠와 겐타는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겐타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가끔 이곳도 나쁘지 않아.”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은 변함없이 지금도 이곳을 들르며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이의 나이는 세 살에 불과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이번 해도 어김없이 그들이 찾아왔다.

미쿠는 아이를 손녀처럼 예뻐했고, 물론 아이도 그녀를 할머니라고 부르며 곧 잘 따랐다. 며칠, 안색이 좋지 않던 그녀를 걱정하고 있던 터에 마호는 다시 미소를 찾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안함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다. 겐타는 어울리지 않게 그릇을 정리하는 미쿠에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치울 게 당신은 앉아서 차나 마셔요.”

미쿠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

겐타는 며칠 조금 수척해진 미쿠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더니 마호를 흘기며 말했다.

“그렇게 해, 미쿠.”

마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쉬세요, 제가 하면 돼요.”

불편한 기색을 역력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이 부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고마워요.”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 겐타가 마호에게 말했다.

“잠을 통 이루지 못했어, 상심이 큰 모양이야.”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남녀 일을 누가 점치겠냐 만은, 쯧.”

마호는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며 그릇을 달그락거렸다.

“가봐, 이게 중요한가?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겐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거야

지금은 나보다도 자네가 필요할 거야.”

미끈거리는 손을 닦아내며 겐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네, 늘 감사합니다.”

겐타가 손을 흔들며 얼른 가 보라며 시늉한다.

밤이 되면 바다색은 시커멓게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를 반복하며 헛갈리게 만든다. 아주 자세히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가끔 파도치는 하얀 부분이 보일까 말 까다.

아마 미쿠는 그것과 씨름 중인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는다. 마호는 그녀가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모조리 삼켜 버렸다.

“카아아.”

그녀는 남은 맥주를 따랐다.

“문두스를 넘길까 해요.”

뜬금없는 소리에 그녀는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리리카요.”

그녀는 잔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더 마실 거니?”

마호는 잔을 받아 들었다.

“이곳에 정착해도 돼요?”

그녀는 표정을 숨기고 있지만 찬성, 또는 좋다,라는 미소를 조금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물론, 제힘으로요, 아저씨는 이미 알고 계세요
좋아해 주셨지만, 솔직히 죄송한 마음은 늘 갖고 있어요.
이곳은 타지 사람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고,
당연히 아저씨 덕인 거니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결정한 거구나.”

“응, 네.”

미쿠는 다시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도망, 치는 건 아니지?”

마호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런가,라고 생각 안 했던 건 아니에요, 한데 아니에요 어머니.”

“난, 널 믿는다.”

마호가 미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죠? 잘난 어머니 아들인데.”

그녀도 마호도 모처럼 웃음소리가 번진다. 그릇을 정리하던 겐타의 귀가 간지러워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미쿠가 이번에는 조금 어렵게 말을 이어가려 한다.

“흠, 나는, 류우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진심이야. 그게 네가 아니어도 되는 거라니…
섭섭하긴 했지만, 그 애가 잘 되었으면 해. 아주 잘.”

“행복해요. 코하네.”

무엇인지 딱, 말할 순 없지만 마호의 얼굴을 보면 정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들, 너도 그래야 하는 거, 모르지 않지?”

마호가 고개를 아주 세차게 끄덕거렸다.

“한 번 안아보자.”

두 팔 벌린 그녀의 작은 품에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안기는 모양이다. 마호는 코가 시큰거리고 눈앞이 아른거리는 느낌에 눈을 꼭, 감았다. 그녀는 넓은 아들의 등을 몇 번이고 쓸기를 반복했다. 그 손길은 그를 위한, 또한 그녀를 위한 또한 코하네를 위한 위로가 담긴 것이었다. 겐타가 쟁반에 담은 것들이 작은 소음을 내며 달그락거리며 걸었다.

오자마자 미쿠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그의 얼굴도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마호는 모든 일을 아주 빠르게 진행했다. 결심했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두스를 리리카가 맡게 된다는 건, 그녀가 문두스에 발을 들일 때부터 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호 없이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물론 처음 코하네 마호와 맞닥뜨렸을 땐,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도 없었다. 리리카는 마호의 제안에 당황스럽기도 이제 그를 보지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당신 없이 내가? 아,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마호.”

“리리 꿈이잖아?”

“마호 씨 없이 문두스에서?”

“잘 어울려.”

리리카의 고민은 딱, 한 가지, 마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두스의 주인이 된다는 건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는 것을 안다. 또한 그는 리리의 주머니 사정까지 잘 아는 상태였고, 마치 저축하는 것처럼 갚으라며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맞추어 주었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그녀지만 마호는 놓칠 것이다. 아니 이미 마음은 놓쳤지만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그럼, 말은 안 되지만 조건이 있어요.”

“아, 정말 말이 안 되는데? 이렇게 좋은 조건이 어딨 어?”

“들어봐요,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날 때까지예요.”

“응?”

“그러니까, 문두스에 적어도 한 달 한 번은 와 줘야 해요.”

“하하하 리리가 좋은 사람을 만날 때까지?”

“응. 인계하는 것도 시간이 걸려요, 난 머리가 나쁘니까.”

“무슨 소리, 지금까지 모두 다 알아서 했는걸.”

“마호.”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야.”

리리카는 그의 예스에 마치 그가 자신의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기뻐했다. 리리카는 누구보다도 문두스를 아꼈고, 마치 코하네를 생각하는 마호처럼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은 절대 변화시키지 않았고 그곳을 유물이 담긴 곳처럼 신성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문두스는 점점 더 고객들에게 귀한 곳이 되었다. 예약하기조차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꼭,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맛있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미네코의 단골집처럼 말이다.

코하네의 따뜻한 날, 결혼 후, 어떤 이는 더 빠르게 어떤 이는 느리게, 자신들의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며 살아갔다. 어떤 이는 행복의 부족함을 갈구하며 어떤 이는 행복의 자리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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