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12. 1979년

by 금봉




1979년

유키코의 집 앞에

낙엽이 내려앉을 무렵

코하네는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놀라운 일을 맞이한다.

늘 불규칙한 몸 상태였던

코하네는 한두 달쯤,

월경이 없어도

그것에 특별함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이야기는 달라졌다.


1년이 채 안 되는

긴 시간 동안 유키코는

노아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함께 떠났다.

코하네는 그녀의 행복을

빌어 주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유키코가 다시

이 땅을 밟지 않으면

어쩌지, 란 생각에

빈 구둣방에 앉아

고민에 빠지곤 했다.


고맙게도 유키코는

그런 코하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편지를 자주 썼고

비싼 통화료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연락했다.

코하네는 유키코가

구둣방에 오기 하루 전,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인기척이 없는 집은

늘 쓸쓸함으로 티를 낸다.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구둣방의 창문은

모조리 열어 놓은 상태다.

9월의 바람은 아직 습하다.


코하네는 어떤 날도

빠짐없이 아키라의

방을 지나칠 때마다

2초, 3초를 머뭇거린다.

지금은 창고처럼 쓰이는

방이 애처롭기만 하다.

아키라가 곁을 떠나고 난 후,

단 한 번도 열어 보지도

멀리서 열린 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코하네는 오늘도

그 방을 머뭇거리다 지나쳤다.

불어오는 바람에

아키라의 냄새가 스친다.

마치 아키라가 왔다 간 것처럼

그녀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앗.”


이층으로 가던 발걸음을

다시 멈칫, 하다

아주 빠르게 뛰어오른다.

그곳에 오르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역시 습하다.

정오를 넘기 시작한

시간 덕에 서쪽을 향한

그녀의 방에 해가

정면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얀 커튼이 팔랑거리며

샤샥거리는 소리를 낸다.


결혼 전, 이곳의 짐을 정리하며

버릴 것들을 모조리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둘러보니 꼭,

그대로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국어로 된 책이

아직도 많이 꽂혀 있다.

구하기도 힘든 것들은,

그땐 참, 그것들을

아키라는 잘도 구했다.

그때를 회상하면

웃음과 함께 떠오르는

마호의 얼굴과 목소리다.


“나도 배울게.”


“응?”


“이 글자 말이야.”


“왜?”


“같이 가야 지, 이곳.”


“왜?”


“네 옆은 내가 늘 있으니까.”


이상한 문자라며

한국어책을 들고

마호가 코하네에게 했던 말이

한 구절도 빠짐없이

귓속에서 머무른다.

셀 수 없는 추억은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갈 수 있을까…”


그제야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삐걱,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동시에 이름을 부른다.


“하즈키.”


“코하네.”


그녀가 먼저 웃는다.


“일 층에 없어서.”


“응, 일찍 왔네요?”


“당신 혼자 할까,

얼른 서둘렀지.”


소리 없이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하즈키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을 잡으며 말했다.


“무슨 책?”


“한국어.”


“아…”


마호의 얼굴이

하즈키의 얼굴에 다가와 겹친다.


“가져갈까?”


코하네의 고개가 도리질한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말을 끝낸 그녀의 얼굴이

서늘하게 그늘 진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

그가 책을 놓으며

그녀의 볼을 쓸며 말했다.


“당신, 안색이... 어디 안 좋아?”


“그래요?”


“아주.”


“아, 이상하게

너무 피곤하긴 해요.”


“그럼 쉬어야지,

내가 하면 돼.”


“그럴 정도는 아니에요.”


“당신이 괜찮다 해도

내가 괜찮지 않아 알잖아,

잠시 눈 좀 붙여 응?”


“괜찮은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즈키가 그녀의 말을 막는다.


“좀 봐, 할 일도 없어 응?”


“아 고마워요, 하즈키.”


“고맙긴, 당신보다 중요한 건 없어.”


느릿느릿 걷는

코하네의 모습이

정말 걱정스럽다.

하즈키는 침대 위의

커다란 하얀 천을 드러내며

베개를 정리하며 그녀에게

누우라며 손짓한다.


“후, 누우니까 잠에 빠질 거 같아.”


“그것 봐 쉬어

눈이 저절로 떠질 때까지.”


코하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커튼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에

다시 아키라의 기분 좋은

냄새가 스친다.

감은 눈 속은

온통 하얀 눈밭과도 같다.


아주 빠르게 새하얀 그 길을

어린 코하네가 걸었다.

어린 코하네가 가는 길에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며칠 후, 유키코 부부는

짐을 한가득 싣고

구둣방에 도착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꽃향기가 가득했고

몇 달 집을 비워 둔 것 같지 않게

공기가 신선했다.

코하네의 배려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가 않다.


노아가 냉장고 안의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것, 정말 마시고 싶었어요.”


“나도요.”


유키코도 코하네가 진하게 끓여 놓은

보리차를 한 번에 벌컥거렸다.


“노아, 짐은 대충 정리하고 서둘러요.”


더 길어진 수염을 흔들며

노아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늘은 코하네 부부와 함께

아주 오랜만에

고기를 구워 먹을 작정이다.

노아는 이곳의

구운 고기에 찍어 먹는

달콤한 소스들이 그립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들에게 그 맛을

설명하곤 했다.


“따릉 따릉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코하네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 것처럼

급하게 들린다.


“류우우.”


전화기 너머로

코하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아, 유키이이이.”


“안 그래도 서두르는 중이야.”


“크큭, 천천히 해요,

우리도 이제 나가요.”


“응, 알았어 우린 걸어가면 되니까,

조심해서 와.”


“응, 유키 보고 싶어요.”


“이그, 알았대도 이따 봐.”


“으응.”


노아는 유키코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짐 정리에 바쁘다.

유키코는 다시 보리차를 따라

한 번에 들이켠 후,

아키라의 사진이

놓여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한참 눈을 감는다.

그곳은 작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코하네의 마음 씀씀이는

가끔 유키코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짧을지 길지, 모를

4년이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후,

그들은 아예 미국에 정착할 생각이다.

4년이란 시간은 어쩌면

코하네의 생활이 자리 잡힐 만한

기간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노아의 가족들과

이미 약속이 된 기간이었고

가족들은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

될 거라며 헤어짐에 앞서

눈물을 먼저 보였다.

그들은 코하네가

결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그녀와 함께 오길 권하기도 했다.


정말 감사한 노아의 가족들,

아니 이제 유키코의 가족들이기도 하다.


유키코가 일본을 떠난 시간 동안,

코하네는 마치 웃음을

소리 내어 웃어 보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향수병에 걸려야 할 사람은

정작 유키코였을 터,

코하네는 꼭, 그렇게 보였다.

정말 환하게 웃는

코하네의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다.

코하네는 유키코와 노아를

보자마자 하즈키가 있다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유키코가 모를 리 없다.

유키코가 재빨리

그들의 화제를 바꾸어 말한다.


“참, 하즈키 정식 직원이 된 거,

정말 축하해요.”


어색한 머리 긁기가 시작된다.


“감사합니다.”


노아는 일요일마다

잦은 출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게

늘 안타까웠다고 잊지 않고 말했다.


“꼭, 이젠 함께

성당을 갈 수 있어요, 그렇죠?”


“하하하, 네.”


“아주 좋아요.”


노아는 정작

구운 고기보다

달콤한 소스를 찍어 먹는 양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기린처럼 키만 쭉, 하고

길게 뻗은 노아의 모습은

가족들 곁에서 조금은 살이 찌어 온 모습이다.

아무도 몰랐던 노아의 직업은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라고 한다.

노아의 긴 수염을 보면

그의 직업은 그와 아주 잘 어울린다.

유키코가 살이 찐 노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들은 구둣방으로 돌아와

남은 회포를 풀 작정이다.


유키코는 노아가 정리해 놓은

꾸러미들을 풀어헤치며

이것저것을 널어놓기 시작했다.

유키코의 이야기도 끊임이 없다.

코하네는 그 소리가 즐거워

내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즈키가 사 온 맥주를 보니,

어떻게 들고 왔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코하네가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말했다.


“당신 어떻게 들고 왔어요?”


하즈키가 어깨를 으쓱한다.


“뭐, 이쯤.”


냉장고 안은 그것을

담을 곳이 부족해 보인다.

유키코가 가져온 옥수수로 만든

동그랗고 납작한 과자는

맥주와 참 잘도 어울렸다.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손이 움직인다.

그것을 집어 들수록

빈 맥주 캔은 늘어났다.

노아의 레코드가 다시 시작이다.


♬Come together – The Beatles♪♬


노아는 술이 좀 과한 모양이다.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는 모습이

정말 고개 숙인 술 취한 기린 같았다.

코하네가 유키코의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그들은 배를 잡고

크게 웃는다.

노아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따라 웃으며 기린 흉내를 내고 있다.


유키코가 미국 생활에 대해

긴 얘기를 풀어놓고 있을 때,

코하네의 얼굴이 갑자기

상기되더니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놀란 하즈키가 벌떡 일어나

뒤를 따른다.


“코하네?”


코하네는 대답할 수 없었는지

손사래 치며 화장실 문을 잠갔다.

내내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던 그녀다.

노아는 비틀스의 목소리를

더 치켜세웠지만 코하네의

격한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 저녁 식사도

몇 번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던 그녀다.


근래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뚜렷하게

아픈 증상은 없었다.

하즈키는 화장실 앞에서 안절부절이다.

워낙 음식을 많이,

아니 적당히도 섭취하기

힘들어하는 그녀다.

유키코가 말했다.


“먹은 것도 없을 텐데, 쯧.”


유키코의 목소리는

왠지 하즈키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코하네는 몸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 냈다.

정말 티끌 하나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온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원만하지 않던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코하네는 몇 분을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으며 자신을 걱정할

그들에게 인기척을 한다.


“시간 좀 줘요.”


하즈키가 빠르게 대답했다.


“응.”


그는 입에서 불을 뿜을 것 같은

한숨을 토해낸다.


“하아아아아.”


유키코가 빈 병을

비닐에 담아 정리한다.


“하즈키, 사실 코하네를

보자마자 놀라긴 했어요,
얼굴빛도 그렇고,

마른 몸은 더 앙상하고, 흠.”


“네,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노아가 유키코가 치우던 병을

마저 주워 담으며 말했다.


“혹시, 아마도

축복일 수도 있어요.”


순간 하즈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유키코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노아의 얼굴을 보니

노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거린다.


거울에 비친 코하네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회색빛으로

그늘져 보인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어지러움이 코하네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 이게 무슨.”


화장실 문고리를

비틀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유키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류우? 들어갈게.”


잠가 둔 문을 유키코는

문고리를 몇 번 비틀더니

용케 잘도 열었다.

코하네는 유키코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쓰러지듯 기대어 말했다.


“술, 먹은 것처럼 취했어요.”


코하네는 애써 웃음을 만들어

내려 노력 중이다.

하즈키가 재빨리

코하네를 부축하며 말했다.


“우선 눕혀야겠어요.”


“응, 그게 낫겠어

난 따뜻한 것 좀 준비할게요.”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코하네를 위해 노아는

낡은 고타츠를 찾았다.

그들은 코하네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척척 해낸다.

하얀 이불 위에 누운

코하네가 천장을 보자

그것들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아, 하즈키.”


“응 옆에 있어.”


“추워요.”


“응 조금만 참아.”


하즈키가 코하네의

이마를 짚으며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미안해요.”


“또 그런다 쉿.”


코하네는 사시나무 떨듯

오들 거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말 빠르게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꼭, 이틀 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보였다.

하즈키는 다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미열에 해열제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아 후 우.”


하즈키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냉장고 안의

보리차를 벌컥거렸다.

유키코는 마를 갈아 끓이는 중이다.


“잠들었어요.”


“빠르기도 하지.”


“아까 노아가 한 말은.”


“혹시 임신, 아닐까 해요.”


하즈키는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눈을

커다랗게 떴다.


“네에?”


“부부가 그런 준비도 없었던 거예요?”


“아…”


“코하네를 보자마자

조금은 눈치를 챘었는데

혹시나 했어요
물론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지만,

우리 눈은 틀리지 않을 듯해요
특히 노아의 눈은.”


유키코가 눈을 찡긋, 해 보였다.


“아, 이런 정말 몰랐어요.”


“남자는 잘 모르죠,

저 아이가 워낙 둔하니…”


하즈키는 이마를 짚고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벌써 끓고 있는 마 죽이

성질도 급하게 향을 피워 낸다.


“푹, 자게 둬요

일어나면 먹으면 되니까.”


노아가 소리 없이

계단을 내려오려 안간힘을 쓴다.


“곧 따뜻해질 겁니다.”


“노아, 고맙습니다.”


하즈키가 그의 손을

덥석 잡는다.

노아는 방긋 웃으며

하즈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축하합니다.”


유키코가 노아를 흘기며 거들었다.


“아직 모르는걸요, 노아아.”


“맞아요, 맞아, 확실해요.”


노아는 확신하며

천장을 올려 보며 성호를 긋고

눈을 감으며 기도했다


코하네는 정식 직원이 된 지 얼

마 안 된 하즈키의 고집을

어렵게 꺾고 유키코와 함께

병원에 가겠다는 말로 안심한 채

그를 출근하게 했다.

물론 코하네는 유키코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홀로 병원에 다녀왔다.

결국, 병원에서의 진단은

임신이었다.

의사는 코하네를 정말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코하네 씨, 알고 계시겠지만

정말 잘 먹어야 합니다
물론 잠도 잘 자야 하지요
이런 말씀 곤란하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처음 한 얘기처럼

임산부가 잘 먹지 않으면

물론 태아에게 좋지 않습니다
지금 몸으로 만삭까지

버티기가 힘드실 겁니다
물론, 입덧이 심하면

물조차 넘어가질 않지요
하지만 태아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처방해 드리는 건

꼭 먹어야 할 영양제입니다
코하네 씨는 지금 이것들을

꼭 먹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오셔야 하는 건

알고 알고 계시죠?"


“네.”


“다음에는 보호자 분과

함께 뵙기를 바랍니다
우선 체중 미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늘 조심하시는 것, 잊지 마시고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진료를 받고 난 후,

한참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임신, 이란 것에 대해

정말 어떤 준비도 생각도 없었다.

마나츠가 부른 배를 잡고

행복해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오코에게 들은 마나츠 얘기는

하즈키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다른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금 코하네의 감정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엄마라는 존재를 느끼고

살아가기도 전에

엄마를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열 달 후,

자신이 엄마가 된다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코하네는 하늘 위 구름처럼

후미코의 존재가 작게만 느껴졌다.

후미코가 언제 자신의 곁에

머물렀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지 모를

슬픔이 격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인정하고 살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중이다.

자신이 밟고 있는

이 땅이 지겹게도 싫었다.

솔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구마구 그녀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녀는 쉬지 못했던 숨을

한꺼번에 뱉는 사람처럼 꺽꺽거렸다.


“으억, 으으억.”


두 손가락에 힘을 가득히 실어

입을 막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때 진료실에서 나오는

주치의가 놀란 눈으로

흔들리는 코하네의 어깨를 잡았다.

주치의는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을 지켰다.

코하네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손수건에 아키,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쏟아 낸 탓인지

코하네의 얼굴은 다시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호흡이 점점 안정을 찾을 때쯤,

의사가 말했다.


“편하게 주무시고

갈 수 있도록 해 줄까요?”


의사의 얼굴은

진료실에서 봤던 사람과

다른 사람처럼 인정이 넘치는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코하네 씨, 좋아지실 거예요,

부모란 누구나 다 처음이니까요!”


코하네의 목소리는 정말 간절하다.


“어떻, 게 요…”


“나도 그랬으니까요,

처음엔 누구나 두려운 법이에요.”


남은 눈물이 코하네의

볼을 타고 내려온다.


“보호자 분께 연락할까요?”


“아니, 괜찮아요 좀 더 쉴게요.”


“그럼 도움이 필요하면

간호사에게 꼭 말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진료 때 뵙겠습니다.”


흰옷을 입고 걸어가는

의사의 걸음은 당차 보인다.

의사의 몇 마디 후,

코하네의 호흡이 거짓말처럼

안정을 찾고 있었다.

코하네는 멈칫, 하며

자신의 아랫배에 손바닥을 갖다 댄다.


“7… 주.”


점처럼 보이는 흑백의 사진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즈키는 늦은 오후가 돼야

마칠 수 있는 일을

아주 빠르게 마치고

일찍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코하네가 진료 후,

회사로 메모를 남긴다는

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코하네의 연락은 없고,

집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즈키는 초조한 마음으로

유키코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지나가는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소리가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만 같다.


“네, 여보세요.”


“아, 유키코 안녕하세요.”


“하즈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유키코의 말에 하즈키는 역시

코하네는 그곳에 없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아서.”


“아직이라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해가 기울어진 지금,

유키코도 의아한 목소리다.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즈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연락 기다릴게요.”


“네.”


9월의 마지막 날,

하즈키는 식은땀을 닦으며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을

어렵게 꿀꺽, 삼켜 본다.

이 순간, 코하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깨닫는 중이다.


하즈키는 가장 복잡한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서둘러 택시를 탔다.

먼저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이 역시 그 답지 않은 행동,

또한 그녀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높은 층에 자리한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흘겨보며

더 빠르기를 바라며

계단을 몇 칸을 성큼,

생략하며 내달렸다.

드디어 문 앞에 다다랐다.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속도를 줄이며

헉헉거리며 숨을 길게 뱉는다.

하즈키는 문을 잡아당기자마자,

그녀의 하얀 운동화를 확인했다.

그제야 턱 밑까지 차오르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하얀 운동화만 바라보았다.


제법 쌀쌀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코하네는

천사처럼 잠이 들어 있었다.

워낙 잠귀가 밝은 그녀였으나

요즘 들어 꽤, 다른 모습이다.

꼭, 필요할 때 연락이 없는

그녀를 생각하면,

자신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꼭, 섬에 머물렀을 때처럼,

그때의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는

피부의 상처와도 같다.

하즈키는 조용히 땀을 닦아 낸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짓궂어 당신…”


하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마호와 그녀가 자주 쓰는

짓궂다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자꾸만 마호스러워 지려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후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나려는 순간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즈 키?”


그는 빠르게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당신…”


하고 싶었던 말을

그만두려 하는 참이다.

코하네의 얼굴은

아직도 피곤이 가득하다.


“잠이 계속 쏟아져요.”


코하네는 오늘 일을

새카맣게 잊은 듯,

입을 꾹, 다물어 버릴 작정인 것 같다.


“좀 더 자.”


“으응.”


코하네는 빠르게 새근거린다.

식어버린 땀, 덕분에

온몸이 끈적거렸다.

벽에 등을 기대어

한참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긴장한 탓인지

그도 잠이 들었다.

집 안이 캄캄하다.

그럴 리 없을 거라며

시간을 확인했다.

코하네가 벌떡 일어난다.


“이런.”


하즈키와 유키코의

걱정하는 얼굴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의사가 처방해 준

영양제 덕분인 듯하다.

꿈이라 생각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앗, 하즈키.”


순간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톡톡거렸다.


“하즈키?”


그가 놀라며 벌떡 일어선다.


“어, 어?”


코하네의 얼굴을 확인한 후

정신을 차려본다.

코하네는 하즈키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품에 꼭, 안겼다.

세상에 이런 평안은

없을 거라며 오랫동안 그녀를 안았다.


출처,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걱정했어.”


“으응, 미안.”


하즈키가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쓸었다.


“아기가, 있어요.”


임신은 착각에 불과해

하루 종일 연락이 없던 것으로

생각했던 그다.

그녀의 실망감을

감싸주고 싶었던 그다.

코하네의 입에서 아기,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느낀 감정은

이 세상에 있는 단어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쓰고 단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하즈키의 밝은 갈색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기가 내 뱃속에 있어요.”


“아…”


하즈키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다시 안았다.

그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에요,
왜 생각을 못 해 봤을까도

생각해 봤어요

내가 뭔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았어요,
뱃속에 아이가 있다니…

그때 당신 얼굴이 떠올랐어요,
당신과 나의 아이,

아직도 믿을 수가 없고

이 기쁨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씩,

알아 갈 수 있을 거예요

행복한 엄마들처럼.”


하즈키는 마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에게 후미코는

마치 두렵지만 너무 사랑하는 존재
떠올리면 괴롭지만,

또 그리운 존재,

그런 감정 혹시 알아요?


하즈키는 애써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려는 코하네가 안쓰러웠다.


“말, 하지 않아도 돼,

애쓰지 않아도 돼.”


“하즈키.”


코하네의 눈동자 위에

물결이 요동친다.


“당신은 더 행복해질 거야.”


코하네의 작은 얼굴을

감싸며 입을 맞추었다.

하즈키는 코하네의

작은 입술과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잠시 후, 어둡던 방 안에

불이 하나씩, 켜지고

그녀가 가져온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피식,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밝아진 방 안의 불이

다시 꺼지며 그들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코하네의 감은 눈 속으로

단발머리 어린 소녀

후미코가 갸르륵, 소리를

내며 웃으며 달려온다.

그녀는 세월이 흐른 후,

점이 찍힌 사진을 내밀며

마호에게 말했다.


“난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 마호.”


하지만 하즈키는 코하네의

이 행복을 알지 못했다.




유난히 늦가을까지

더위가 물러가지 않고 머물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계절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추위를 견디지 못한

코하네 답지 않게

볼록 나온 배를 감싸며

산책하는 일이 잦아졌다.

추위가 찾아오기 전까지

늘 태양을 피해

실내에만 머물던 그녀다.

제법 무거워진 몸은

걸음도 느리게 만든다.

그곳에 다다르자,

갓 내린 커피 향이

문 앞까지 가득하다.


오랫동안 오지 않았던 이곳도

세월처럼 변해 있었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무렵,

하루의 시작을 늘

이곳에서 보냈던 때가 떠올랐다.

비나 눈이 올 때면

딱딱하고 낡은 의자가

용서될 정도로

시각적 감성을 풍부하게

해 주던 곳이다.

조심스럽게 그때의 코하네처럼

수줍게 문을 열었다.

역시 문이 열리면서

나는 종소리는 마사토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어서 오, 세요.”


마사토는 코하네를 보자마자

그녀의 나온 배를

먼저 확인하고 놀란 두 눈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코하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코하네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안녕하세요.”


마사토는 다시 한번

배를 보며 말했다.


“아니 어찌 된 거야?”


“보시는 것과 같아요.”


“아,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궁금증으로 가득하다.


“아, 이런 앉아 앉으라고.”


넓은 자리를 가리키며

의자까지 들이밀며

여태 그에게 받아 보지 못했던

대접을 받는다.


“고마워요 마사토.”


“결혼은 언제 한 거야?”


“작년이에요.”


“이런, 섭섭한걸?”


“가족끼리 만 모였어요.”


“늦었지만 다시 한번 축하해,

오늘 커피는 내가 사지,

앗차 커피는.”


“따뜻한 우유 부탁해요.”


“좋아.”


“고마워요 마사토 씨.”


푹신한 방석에

온기가 더해져 따뜻하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향이 진한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내고 있으면

건너편 길가에서 아주 빠르게

뛰어오던 사람,

또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그녀를 몰래 바라보던 사람,

이곳을 지날 때마다

꼭, 마호가 심장을 헤집어 놓곤 했다.


그리움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먼 길을 돌아가던 그녀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입에서

제법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따뜻한 우유와 함께 먹는

카스텔라는 입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카스텔라를 보니 어쩌면

마사토는 정말 인정이 많은

사람임이 틀림이 없다.


배가 무거워지고 난 후부터

코하네의 식욕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지금 입안은

만족감에 노래가 흥얼흥얼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마사토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보지 않아도 머스크향이

나오코 임을 직감하게 했다.

까만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고

두꺼운 회색 헤링본 코트를 입고

걸어오는 그녀는 나오코다.

붉게 얼은 손가락이 날씨를 말해 준다.

그녀가 먼저 주인장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마사토는 나오코의 미모 때문인지

그녀가 나오코라서 인지 잠시

얼어붙어 있는 모양을 하곤,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어서 오세요.”


“저는 따뜻한 커피 부탁해요.”


“네네.”


어떤 내용물이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빈 접시를 보고 나오코가 웃었다.


“뭐야? 벌써 해치운 거야?”


코하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는다.

나오코는 마사토에게

접시를 들어 보였다.


“저기, 이것 더, 부탁해요.”


공짜, 인심을 부렸던

마사토의 미간 아주 잠깐

찌푸려지더니 금세 웃는다.


“네 알겠습니다.”


코하네가 속삭이며 말했다.


“이것, 주문한 거 아니야.”


“으응? "


“응, 불어난 배가 한몫했지.”


“후훗, 저 양반 난감하겠는걸?”


코하네도 따라 웃는다.

이 집의 커피는 참 맛있다.

마시기 전 올라오는 진한 향기는

커피를 모두 비울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하, 역시 추운 날

호호 불어 마시는 커피가 맛있어.”


코하네가 미소 짓는다.


“으응.”


“제법 몸이 무겁겠어,

조금씩 힘에 부치지?”


“배가 덜 나온 여름보다

지금이 더 편해
그땐 정말 음식을 보기만 해도

해를 올려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거든.”


나오코가 눈을 흘기며 웃었다.


“이그, 얼마나 하즈키를 닮으려고

속을 썩이는 거야?”


“후후.”


처음 코하네가 임신 소식을 알리고 난 후,

전화기 속에서 풍기는

나오코의 분위기는 마치

얼어붙은 나무에서 나오는

공기처럼 차가웠다.

몇 번 고개를 흔들며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떨쳐 버리려 했지만

잘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나오코의 냉기는

하즈키와 함께 할 때부터

점점 심해졌지만,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오코의 기분은 마치

고무줄처럼 변화무쌍해서

맞추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음식을 입안에 넣지도 못했을 동안

코하네 또한 나오코의 눈치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만남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소식을 대신한

전화기만 바빴다.


오늘은 더 이상

늘어날 탄성이 없는 고무줄처럼

나오코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코하네 또한 그녀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컨디션을 갖고

있던 탓에 모든 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날이었다.

다시 접시 위에 올려져 있던

카스텔라가 사라지는 중이다.


“코하네, 맛있는 저녁 먹어야지.”


입을 오물거리며 코하네가 말했다.


“응 흐잇.”


“오늘 저녁은 하즈키도 함께야?”


대답 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코하네의 눈동자가

한 곳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나오코는 그렇게 놀란

그녀의 눈은 처음이다.

나오코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의 눈을 따라서

길 건너편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다.

커다란 키의 새카맣게 탄 얼굴,

키보다 더 큰 배낭,

어떤 길도 거뜬할 것 같은

바퀴 모양의 신발,

두툼한 검은색 점퍼 사이로

보이는 흰색 폴로 티셔츠,

아무리 많은 사람 중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띄는 그다.

그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 한 명 없이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며

그의 매무새를 확인했다.

코하네가 얼이 빠져 있는 곳은

마호였다.

출처, 오버 더스

몇 년 만에 보는 마호의 모습은

나오코도 깜짝 놀랄 만큼

남자다운 모습이다.

나오코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코하네?”


건너편 신호등이

제발 빨간색으로 멈추길

바라던 코하네다.

초록색 불빛이 마호가 점점

가까워지도록 만들었다.

코하네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아니 미동도 없지만 눈동자가 그랬다.


나오코는 잠자코 그들을

보고 있을 작정이다.

찰나의 순간 먼저

마호를 불러 볼까, 도

생각했지만 배부른 코하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코하네의 눈은 정말

깜박, 한 번 하지 않았다.

구름이 낀 날에는

유리 안쪽의 환경이

더욱 훤히 드러난다.

도로를 모두 건넌 마호는

분명 문두스를 갈 모양이다.

앞만 보고 걷던 마호가

골목으로 걸음을 꺾기 전,

걸음을 멈추었다.

통유리를 사이에 둔 그들은

정말 똑같은 모습이었다.

마호의 옆모습은

모두 코하네에게 노출된 상태였고,

아마도 마호는 코하네를 발견 후,

걸음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서로 눈을 마주할 순 없지만

그들 사이의 공기가

어떤 것인지 감히 직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그 무엇과 같았다.

그는 먼저 발을 빠르게 옮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마호는 코하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코하네의 눈은

텅 빈 카스텔라 접시만

내려보고 있었다.

나오코는 코하네의 움직임을

기다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눈에서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다.

코하네는 숨을 몇 번씩

나누어 뱉어냈다.

심장을 날카로운 유리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도려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 숨을 쉬기도 버겁다.


“후 후 후, 후 우우.”


나오코는 말없이

코하네의 등을 쓸었다.

나오코가 마사토에게

손을 들어 물 마시는

흉내를 내어 본다.

그가 빠르게 물을 가져오며 말했다.


“왜 그래? 코하네,

어디 불편한 거야?”


마사토의 목소리는 꽤

걱정스러워 보인다.

나오코가 대신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요,

이땐 다 그러니까.”


그가 그녀의 불룩 나온

배를 흘긋하며 자리를 떠난다.


나오코는 코하네의 마음이 궁금했다.

대체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가 무엇이며

결혼 전 섬에서 연락 두절로

하즈키의 심리를 곤경에 빠뜨린 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하즈키와 결혼까지

한 것을 보면 마호의 대한 감정이

하즈키와 같은 건 아닐 것이다.


코하네는 정말 알다 가도

모를 사람이다.

한 번은 꼭, 마주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코하네가 생각한 만남은

이런 식은 아니었다.

서로 모른 척,

다른 발길을 하다니,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분명한 건,

코하네와 마호의 감정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

그건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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