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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Oct 15.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20. 반짝반짝



급속도로 성장한 우리는 어린이의 티를 완전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더 반짝거렸고 빛이 났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때는 멋을 부리지 않아도 그때라는 것만으로도 예쁘다, 는 말이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친구들은 정말 예뻤다.


학년을 올라가면서 수진이와 나는 또 같은 학급이 되었다. 

하지만 정희는 다른 반이 되었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정희와 호연이가 같은 반이라는 것이다. 

나는 정희와 떨어져 서운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편해진다, 는 것에 좀 더 기울였다. 

정희와 수진이 사이에서 눈치를 보거나 별 일은 아니어도 수진이에게는 상처가 될 만한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수진에게 진짜 날개가 달린 줄 알았다. 

같은 학급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방 뛰어다니며 손뼉을 치고 기뻐했다. 

수진이는 내게 자신의 영혼을 맡겼기 때문에 우리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신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우린 학생들에게 별 관심이 없던 담임과 이별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게 될 담임을 만났다. 

또 남자다. 선생의 과목은 물리다. 그리고 이 선생은 꼭 자기의 팔 길이와 비슷한 회초리를 갖고 다닌다. 

선생들은 말한다. 이것은 칠판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쓰이는 물건?이라고.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그 물건은 우리들의 손이나 머리통 또는 발바닥 허벅지 종아리와 더 많은 접촉을 한다. 이건 진실이다. 

좀 엽기적이긴 하지만 간혹 그것으로 머리나 옷 속으로 집어넣어 등을 긁는 선생도 있긴 했다. 


우리의 담임은 키가 좀 작았다. 

어른들은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담임은 정말 독종이다.

가끔 보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을 보면 굉장히 고약할 정도로 우리들을 괴롭힐 때도 있다. 

나는 이 담임이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점점 더 어른처럼 성장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어른보다 더 무서운 성질을 내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선생들도 위협을 느낄만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시기가 그랬다.


그 시기를 맞이한 우리와 정면에서 부딪혀야만 하는 어른, 우리의 담임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간혹 굉장히 사악한 성질을 품고 있는 시기의 아이들은 어른인 담임을 이기고 말 때도 있었다.

난 그때 담임의 포기, 란 것에 대해 굉장한 이해력을 품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은 말한다. 어떻게 선생이 학생을 포기하냐, 고 말이다. 

하지만 포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포기가 아니라 다른 길을 열어 준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담임이나 어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싫다면 자신이 원하는 쪽, 즉 다른 방향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린 중학생처럼 또는 초등학생처럼 조금은 안전한 시기와는 다른 어른을 준비하는 시기의 학생이기 때문이다. 

선생의 위치가 학생의 인생을 책임지는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젠 좀 달라져야 한다.

그건 정말 분명한 사실이다.


딱 한 가지 담임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건, 꼭 반에서 튀는 아이가 잘못을 하면 우린 단체로 맞았다. 

마치 체육 선생처럼 같았다. 그래서 난 작은 고추가 정말 맵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담임은 꼭 발바닥을 때렸다. 

우리가 무슨 방금 결혼한 신랑도 아니고 왜, 꼭 발바닥을 때리는 건지, 담임은 말했다.


“발바닥을 때리면 혈액 순환에도 좋고 두뇌 회전에도 좋아”


참, 어이없는 말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멍이 들지 않고 맞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신체 중 가장 말 없는 발바닥을 선택한 것 아닌가 싶다. 우리 담임은 무서울 때는 정말 제대로 무섭다. 

어느 정도 선생과의 얼굴을 익힌 후, 우리는 사소한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과 많은 날들을 떨어져 앉았다. 

왜냐면 늘 그랬듯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짝을 맞는 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 숫자를 정해 놓고 번호 순대로 앉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수진과 번호가 비슷한 나는 조금 떨어져 않게 되었고 얼굴은 알고 있어도 말 한마디 해 보지 않았던 친구, 현아와 짝이 되었다. 


현아는 키도 크고 늘씬하다. 

그리고 입술에 힘을 주지 않아도 늘 우, 하고 소리를 내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름 매력적인 입술이었지만 현아는 그것을 싫어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아는 나와 굉장히 성격이 비슷했다. 친구라는 존재를 두고 어떤 선을 정하지 않는 아이다. 

말하자면 수진처럼 단짝이 필요하거나, 너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라는 의미를 꼭 정하거나,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향이다. 

그리고 현아와 나는 웃음이 나오는 그 경계가 같아 함께 있으면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간혹 수업 시간에 터진 웃음으로 교실 밖으로 쫓겨나거나 벌을 받아야 했다. 우린 그렇게 벌을 받으면서도 터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담임은 갑자기 자신도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어?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라고 말을 하면서 입술이 웃었고 담임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그러다 우린 그냥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물론 수진과 현아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친구의 경계성을 두지 않는 현아를 당연히 수진이는 좋아하고 따랐다. 

나와 현아가 늘 짝을 지어 다녀도 수진이는 단 한 번도 서운하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수진이도 현아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린 수업을 마치거나 점심시간이 되면 늘 그랬듯이 정희와 호연과 넷이 하나가 되어 함께 다녔다. 

현아도 늘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 우린 평화로웠다. 


다만 점점 어려워지는 공부라는 것에 펜을 내려놓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학교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늘 치마만 입어야 했던 우리는 교복 바지라는 것을 입을 수도 있었다. 

이건 선택 사항이었고, 도시락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생겼다.


학교 안에 급식소가 생긴 것이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억압, 이라는 것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다. 

이건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간혹 선배라는 단어로 치장한 언어적으로 행동적으로 폭력적인 것들이 수진을 못살게 굴었다. 

수진은 꼭, 그렇게 친구나 선배라는 것들에게 눈에 띄게 미움을 받았다. 

우린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 그 폭력적인 것들이 우리를 지나칠 때마다 수진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눈을 바닥에 두고 걸어라, 어디를 처다 보냐, 등등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욕을 뱉고 시비를 걸고 툭툭, 건드리는 것은 보너스였다. 


나는 학교생활을 꽤 편하게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우정의 친구들 덕이다. 우정이가 다른 곳으로 고등학교를 갔지만 안전함은 늘 내게 존재했다. 나는 그런 수진이를 지켜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책임감이 있었다. 

수진이는 내게 그런 존재다. 


현아는 영주처럼 집이 멀다. 

그곳의 이름은 늘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낯선 이름이다. 

그래서 현아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자취했다. 해가 잘 들어오지 않은 방이 하나, 그리고 작은 문을 열면 세수도 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가끔 그곳의 하수구로 연결되는 작은 구멍에서 살찐 쥐가 엉덩이를 들이밀며 나오거나 들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나는 그때 처음 만화에서나 볼 법한 쥐를 보았다. 

당연히 톰과 제리에 나오는 제리처럼 귀엽지 않다. 

현아는 쥐를 정말 싫어했다. 하긴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제리를 상상하고 그 쥐의 엉덩이를 보았지만 역시 그 실망감은 징그럽다, 로 끝났다. 

그래도 생전 처음 마주친 쥐는 무서운 귀신보다는 낫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아는 잠을 잘 때는 그곳을 무거운 돌덩이로 막아 놓고 잠에 든다. 

수진이와 나는 현아의 방에 자주 놀러 갔다. 

그곳보다 자유롭고 따뜻하고 무한대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는 우린 그래도 학교에 꽤 열심히 응했다. 

하지만 역시 꽉 조인 나사도 점점 풀리는 법이다. 우리는 점점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현아는 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취를 하면서도 늘 지각을 했다. 짝인 나는 현아가 지각을 반복하며 담임에게 운이 좋으면 들키지 않거나, 운이 나쁘면 들켜 벌을 받는 게 싫었다. 


지각을 행하는 자 보다, 지각을 행하는 자가 벌을 받는 모습을 보는 봐야 하는 자가 너무 곤란하고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88 올림픽 때 레슬링이라는 종목을 보면서 밧데루,라는 단어를 우리 편 선수에게 외쳤던, 그 장면보다 더 두근거렸던, 그것과도 같았다.


나는 조금 더 성장한 뇌를 이용했다. 

오늘도 현아는 지각이다. 담임이 조회를 하기 5분 전이다. 

나는 빠르게 나의 가방 하나를 현아 의자에 올려놓고 책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완벽한 그림을 다시 확인하며 완벽함에 웃음을 지었다. 


담임이 들어왔다. 

지각생, 이라는 타이틀을 언제부터 인가 달고 다닌 현아의 책상을 먼저 훑었다. 

아, 또 심장이 두근거린다.

밧데루, 밧데루


난 최대한 담임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적을 것도 없는 공책에 낙서를 했다. 난 담임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임은 말을 마치고 나가는 중 가방과 책을 두리번거리며 회초리로 현아의 책상을 가리켰다.


“얘 어디 갔어?”


내게 묻는 것이다.


“화장실이요”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 것 맞아?”


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네에”


담임은 나의 책상 쪽을 보았다. 

나의 가방을 확인하는 것인가? 나의 왼쪽 다리가 덜덜덜 떨렸다. 

거짓말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그때 현아가 뒷문에서 들어왔다.

눈치 없는 등장이다. 

이런, 나는 망했다. 나는 황천길을 가게 될 것이다. 

담임이 정지한 현아를 보고 말했다.


“화장실은 미리미리 다녀 알았어? 다들 수업 준비해”


앗, 담임은 현아가 매고 있는 가방을 보지 못한 것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담임의 안경은 거의 돋보기 수준이다. 교복과 같은 색의 가방끈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사 분단 맨 앞에 앉아야 하는 현아는 담임이 완전히 갈 때까지 완벽하게 천천히 걸었다. 

현아의 얼굴은 정말 지금 막 잠에서 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한쪽 눈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보였다. 

나는 보통 친구들에게 잘못된 것을 설명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길 바라며 말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나는 오늘 현아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했다. 

물론 현아가 바란 것도 부탁한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 한 선택이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야, 쫌, 일찍 다녀, 집도 가까우면서 왜 그래?”


현아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너 학교 왔다고 거짓말했어, 가방도 미리 놓고”


“진짜? 어쩐지, 미안 미안 우재야”


“너 꼬리 길면 잡힌다? 이건 진리야”


“알았어 알았어”


나는 이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현아의 계속되는 지각은 나의 거짓말을 반복하게 했고, 결국 그 긴 꼬리는 잘리고 말았다. 하지만 현아의 탓은 아니다. 

내가 원한 일종의 의리 같은 것, 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현아를 등교한 것처럼 꾸몄다. 

담임은 교실을 나갔다. 이번에도 잘 넘어갔다고 생각한 건 한 오 분 정도의 찰나였다. 

매운 작은 고추 담임은 현아를 복도에서 기다렸고 딱 걸린 현아와 나는 교무실 옆 빈 교실에서 무릎을 꿇고 대기를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큰 사달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담임은 꾸중하거나 벌을 내릴 때도 교무실이나 교실을 선택했다. 

이렇게 낯설고 공허한 빈 교실을 선택했다는 건, 그동안 아주 조금은 아름다웠던 학교생활의 마무리를 안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현아가 말했다.


“진짜 미안”


“됐어, 네가 시킨 건 아니잖아, 근데 지각은 좀 지겹다”


진짜 그렇다. 

이 일은 내가 원해서 한 일이었으니까, 내 탓이 크다. 

담임은 평소에 갖고 다니던 회초리는 어디에 두고 담임의 키와 같은 나무를 들고 있었다. 

설마 우리를 저것으로 체벌할 셈인가, 나는 우선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떨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의 뇌가 얼마나 빠르게 돌아갔는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담임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 의자에 앉았다. 

목소리는 아주 나지막하다.


“야, 김우재, 고개 들어”


오랜만에 아주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나는 돌아왔다. 

오늘따라 담임의 전라도 사투리는 더 심했다.


“이 자식아, 네가 더 나빠, 알아?

친구가 나쁜 길로 가면 네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아냐?
 근데 반대로 그걸 응원하냐?”


아, 담임의 말은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해요”


담임은 이제 본격적으로 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이 자식아, 고개 들어”


아까부터 나는 현아의 정리되지 않은 머리 모양이 걱정이다.

현아는 어젯밤 친구들과 함께 파마를 직접 한 것이다. 현아의 말은 이렇게 머리카락이 고불거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를 말아 올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 현아의 짧은 머리카락은 마이클 잭슨의 어릴 적 모습과 같다. 

젖은 머리카락을 내내 숙이고 있던 터라 이 모양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현아, 니는 이 자식아 머리 좀 감고 다녀라, 여자가 이게 뭐야? 어?”


나의 담임은 현아가 파마했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담임은 조금 순진한 면이 있었다. 

머리를 감고 다니라니, 정말이지 내가 들은 말은 아니지만 수치스러웠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나는 혀를 깨물며 참아야 했다.


“앞으로 지각 또 할 거야?”


“아니요”


“너 우재, 넌 또 현아가 지각하면 거짓말할 거야?”


꼬리를 잡혔는데 내가 또 같은 거짓말을 하겠냐, 절대 안 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라면 또 모를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아니요”


“믿어도 돼?”


우리는 동시에 네, 하고 대답했다.


“손바닥 내밀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하지만 저 몽둥이는 너무 컸다. 조만간 나의 손바닥은 퉁퉁 불어 백 원짜리 어묵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우재 먼저”


나는 손바닥을 펴고 얼굴을 돌렸다.


“숫자 세라”


나는 악 소리부터 질렀다.


“악, 하낫, 두우, 쎄엣...”


여섯이 되면서 감각은 조금 무뎌진다. 

현아는 자동으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숫자를 세었다. 

하나보다 더 짧은 현아의 목소리는 너무 웃기다. 

사실 짧은 회초리 보다 보기에 무시무시해 보일 뿐이지 이 긴 막대는 빛 좋은 개살구다. 


“아파?”


나는 담임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 웃고 있었다. 


“아프냐고?”


“아니요”


나는 당연히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더 맞을까?”


담임은 또 씩, 하고 웃었다. 

웃음은 친절함이 섞여 있는 사악함이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일어나, 약속 잊지 말아라 알았어?”


“네”


“현아, 너는 머리 감고 다녀라 꼭”


“네”


현아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른 올라가”


우리는 천천히 걷다가 우다다다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현아의 붕 뜬 머리카락이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첫 시간 수업 선생이 오는지 기웃거리며 화장실에서 현아의 머리카락에 물을 묻혀 가라앉혔다. 

최대한 노력했지만 정말 웃겼다. 

하루 종일 모든 과목의 선생들이 현아의 머리카락을 보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어쩔 수 없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미용실에서 쓸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가 퉁퉁 부어 있었다. 현아의 상습적인 지각 때문에 내가 혼난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처음으로 수진은 현아를 탓하면 말했다.


“현아 때문에 너까지 맞은 거잖아?
 너무 해, 집도 가까우면서 왜 맨날 지각이야?”


“아니 노노노노노 아니야, 현아가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한 거야”


“야, 지각 때문에 하여튼 네가 피해 보잖아”


난 수진의 마음을 잘 안다. 

그리고 한 편으로 고마웠다. 더 이상 현아의 잘못은 없다, 는 얘기를 한다면 안 되는 거다.


“다신 지각 안 한데”


수진이가 웃었다.


“푸합, 어디 봐라, 내가 장담한다 내일 지각할 거다?”


나도 수진이와 함께 현아가 머리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수업 시간이 되면 나는 교과서를 펼친다. 

안타까운 건 눈에 익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일 났다 이대로 가다가 정말 엄마 아빠의 멍청한 딸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물론 우정이 만큼 기대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닥의 실력을 보여주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우정이는 그렇게 공부를 잘했고 또 열심히 했음에도 근처의 대학에 갔다. 

물론 첫째를 광활한 곳의 학교를 보낸다, 는 것에 대해 엄마 아빠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나의 아빠 성격으로 보면 절대 품 안에서 우정이를 보내지 않을 것 같았다.


슬슬 우리 남매 셋은 이 울타리가 장벽과 같은 것임을 느끼고 있었고 엄마 아빠는 그것에 따른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정이는 그것에 속하지 않는 모양새다. 만약 우정이가 좀 더 넓은 곳의 대학교를 간다면 아빠의 걱정은 엄마에게 무게가 실리고 그 무게로 엄마는 다시 시들어져 갈 것이다. 

그렇게 난 엄마와 또 사이가 멀어질 것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름을 좋아했다. 차라리 여름의 끈적함을 느끼는 게 낫지, 한겨울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방학이 시작되어도 오전 수업을 하는 보충 수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었지만 반에서 한 명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보충 수업에 참여했다. 

보충 수업은 단어처럼 보충이 되는 수업이어야 하는데 선생들은 이 수업에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수업을 하거나 자율 학습을 하거나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선생도 있었다. 


지금은 상상 못 할 일이다. 

나는 문학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문학 선생은 보충 수업을 최대한 활용했다. 

아마 어떤 과목의 선생도 문학 선생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보충 수업 때 알고 싶었던 아주 많은 문학책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 시간만큼 책, 이나 교과서가 낯설지 않았다. 내게 문학은 잔잔한 휴식을 주는 과목이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해가 살을 뚫고 뼈를 찌고 있는 날이었다. 

이날은 문학 수업이 없었다. 국어 영어 수학, 기본이 되는 과목은 보충 수업 단골손님이지만 문학은 그렇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늘 문학 수업이 없다는 것은 아주 신나는 일이다. 


정희 호연 수진 그리고 나는 교복을 입은 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예 등교를 하지 않았다. 

뭐 정당화하자면 방학이지 않은가, 보충 수업도 선택이지 않은가, 물론 부모님들의 찬성이라는 도장을 찍어 냈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만의 일탈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반대의 의견을 펼치지 않았고 동시에 예스, 라 말하며 똑같이 발목에 날개를 달았다.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잘 생각나지 않지만 누가 먼저 말할 것 없이 우리는 동시에 행동에 옮겼다. 

교복을 입은 채 우리는 시장 골목을 먼저 걸어갔다. 

나는 작은 수박을 들었고 과자 봉지는 나눠 들었다. 무거운 수박을 우리는 번갈아 가며 들었고, 걸었다.


충분히 걷는다는 건, 우리가 원하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정류장에서 탄 후, 요금은 확, 줄어들 것을 의미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뜨거움을 그대로 받고 걸은 터라 우리의 속옷과 교복 블라우스는 모두 축축하게 젖었고 끈적거렸다. 우리의 얼굴은 벌써부터 벌겋게 익어 있었다. 


나는 우리의 갈증을 달래 줄 수박을 조심스럽게 안아 버스에 올랐다. 

오전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는 딱 우리 넷뿐이다. 우리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재잘거렸다. 호연이 교복 블라우스의 앞 단추 두 개를 풀어헤쳤다.


“으아아 시원해”


열어 놓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버스 기사 아저씨가 밟는 엑셀의 속도를 맞추며 불었다. 

호연의 블라우스 속으로 바람이 들어 가 빵빵하게 불어났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단추를 풀었다. 

답답한 브래지어의 철심이 우리의 가슴을 압박하지만, 시원한 바람에 고통을 까맣게 잊었다.

드디어 우리의 낙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름답게 밝게 예의 바르게 버스 기사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정희가 수박을 옮겨 들었다.


“줘, 여기서부터 내가 들게”


“괜찮아, 안 무거워”


“에이 줘”


정희는 꼭 언니 같다. 

우정이의 의미가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의 언니 말이다. 

호연이의 목소리는 우리들의 목소리에 비해 조금 크다. 

그리고 높다. 높다, 는 것은 내가 낮은음의 도, 소리를 낸다면 호연이는 높은음의 도, 의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호연이는 끊임없이 높은 음의 말로 노래했다. 


우리는 얕은 계곡을 금방 찾았다. 

발을 담그고 치마는 허벅지까지 끌어올렸다. 누가 먼저 물싸움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순식간에 우리의 교복은 축, 늘어져 머리카락은 마치 인디언 추장처럼 산발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오늘은 정희와 수진의 거리가 좁다. 

그리고 그 좁은 거리에 반짝이는 우정이라는 것이 보였다. 

나는 너무 뿌듯해서 날아갈 지경이다. 끝없이 내리쬐는 햇살에 우린 아주 빠르게 지쳐갔다. 


서로 입을 벌리고 헥헥 대는 중이다. 

차가운 계곡물에 온몸을 담갔지만, 그늘 하나 없는 태양 아래는 뜨겁기만 하다. 

바위틈에 끼워 놓은 수박을 들고 마땅한 그늘을 찾았다. 

사람 열 명이 앉아도 남을 것 같은 큰 바위 위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칼도 없는 지금, 수박을 무슨 방법으로 먹을지 우리는 토론했다. 


호연이는 돌을 쥐어 수박 가장자리를 내리쳤다. 

수박이 말했다. 꿈도 꾸지 말라고. 수박의 겉면만 약간 금이 갔을 뿐 우리 힘으로 끄덕하지 않는다.

나는 정희에게 말했다.


“이거 같이 들자, 그리고 내리치는 거야”


“응?”


“그러니까 내동댕이”


우리는 수박을 높이 들어 올린 후 있는 바위에 힘껏 내리쳤다. 

납작한 바위 위가 붉은 수박 쟁반으로 변했다. 

우리들의 얼굴에는 조금씩 수박즙이 튀었고 강렬한 볕에 빠르게 건조되어 끈적거렸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 있을까? 

지친 우리는 수박의 달콤함에 빠져들어 조금씩 다시 에너지를 내고 있었다. 

호연이가 먼저 수박씨를 위로 휘익, 하고 뱉더니 자기 얼굴 위에 떨어뜨렸다. 

정말 못생긴 팥쥐 엄마처럼 보였다. 


우린 서로 좋다며 수박씨를 얼굴에 수박씨를 붙였다. 

정말 못생긴 네 자매다. 우린 미친 듯이 웃고 또 웃었다. 

정수리를 익히고 있던 태양이 어느새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태양은 이제 고개를 들고 보지도 않을 정도로 위치했다. 

사실 우리는 수박과 과자를 사느라 모은 돈을 다 썼다. 그리고 나와 호연이의 통학비만 딸랑 남아 있었다. 

만약 이것을 써 버린다면 호연이와 나는 정희, 또는 수진이네 집에서 잘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의 아빠는 또 호랑이가 되겠지. 


우린 달콤함으로 에너지를 채웠기 때문에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일이다. 우린 선크림이라는 존재를 생각하지도 못했다.

 태양에 검게 탄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물에 젖은 얼굴이라 더 자극이 심했다. 

모두의 얼굴은 마치 술이나 한잔 걸친 사람처럼 보였다. 

처음 출발할 때 우리의 반짝거리던 웃음은 사라졌고 마치 삶에 찌든 아이들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체, 아직 마르지 않은 교복 치마 단에서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걸었다. 


버스를 타고 와도 좀 먼 거리였다. 

우리가 완주할 수 있을까?

수진이의 얼굴은 벌써 짜증이 가득했다. 

차도에는 차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경운기라도 잡아타야 할 상태이다. 


“차를 잡자”


내가 굳은 의지를 보이며 말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자동차는 없었다. 

나는 계속 뒤를 보며 걸었다. 뒤통수로 비치는 태양이 나머지 내 얼굴을 더 태우고 있었다. 

걸은 지 삼십 분 정도가 넘어갈 때 회색 봉고차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우리 때는 다인승 차를 밴이라고 부르지 않고 봉고차라고 불렀다. 


난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그 차를 꼭 잡아야 했다. 

나는 찻길 중앙선에 조금 못 미쳐 손을 들었다.

정희가 말했다.


“우재야 나와 위험해, 여기서도 보여”


“괜찮아”


그때 정희는 내 팔을 당겼다. 

나를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그리고 나처럼 손을 들었다. 

수진이도 호연이도 손을 들었다. 

호연은 큰 키로 점프하며 온몸으로 태워 주세요,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 봉고차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시골길이라 갓길도 아주 좁았다. 

담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저씨가 창문을 내리고 우리를 부른다.


“어디까지 가니?”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 대답을 했다. 

나는 시내까지, 수진이는 고등학교, 정희는 시장 골목, 호연이는 엉뚱하게 집, 이라고 말한다. 

아저씨는 그 모든 시끄러운 소리를 알아들은 것인가?


“그럼, 시내까지 태워 주면 되는 거냐?”


“네 에에에”


호연이는 벌써 봉고차의 뒷좌석 문을 밀어 열고 있었다. 

정말 호연이는 아주 특이한 점을 많이 갖고 있는 아이다. 

약간 엉뚱하긴 하지만 나는 호연이의 눈치 보지 않는 그런 성격이 좋다. 

호연이가 높은 도, 의 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젖은 옷으로 자리에 앉기가 너무 미안했다.


“아저씨 저희가 옷이 다 젖어서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으니 얼른 타라”


“감사합니다”


이분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다. 

아저씨는 시내까지 가는 내내 말을 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귀에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친구 사이 우정도 순수하고 아주 귀할 때지”


그렇다면 세월이 가면 친구 사이의 우정이 순수하지 않다는 뜻인가? 나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저씨는 순수한 우정을 나눌 친구가 없거나 친구가 있어도 친구와의 우정이 순수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계속 우리를 힐끔거리며 부럽다는 말을 수십 번 했다. 

아저씨는 우리를 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었다. 

호연이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때마침 오는 버스에 정희, 호연, 그리고 나는 올라탔다.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 수진은 홀로 남아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젖은 머리카락이 마르면서 곱슬기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은 더욱 처량해 보였다. 


늘 그렇지만 우린 헤어질 때마다 꼭,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정말 아저씨의 말처럼 우리들의 나이가 나무만큼 커졌을 때

지금의 이 애틋한 이별이 그저 그런 이별이 되면 어찌 지, 라며 아주 잠깐 비통함을 느꼈다.

나는 애틋한 이별이 시시해지지 않길 바라며 수진이의 흔들거리는 애틋한 손을 눈 속에 꼭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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