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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Oct 16.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21. 영원불변 사춘기




당연히 난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욕을 먹었다. 

아주 배가 불렀고 이런 종류의 욕도 있구나, 란 생각을 했다. 

나의 여성스럽고 부드럽고 온화한 엄마는 자꾸만 이렇게 변해 갔다. 

그럴 때마다 난 아빠와 할아버지, 또는 고모가 미웠다. 

꼭 그들이 엄마의 친절함을 좀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 그거 약 먹어야 해, 알아? 너 얼굴 지금 화상 입은 거야, 바보 같아 정말...
 어떻게 넌 이렇게 답답한 짓만 골라해?”


엄마는 꼭 엄마 딸이 아닌 남의 딸이 태양에 얼굴을 지지고 온 것처럼 말했다. 

조금의 친밀감 또는 따뜻함을 표현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아이들과 계곡에서 물싸움도 하고 수박도 먹고 그러는 중에 작열하는 태양이 나의 얼굴과 정수리를 태운 것뿐인데, 나는 엄마에게 또 답답한 짓거리를 한 아이가 되었다. 

물론 내 걱정이 된다는 마음의 표현을 뒤틀어 말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난, 그게 늘 속상했다. 예전처럼 털북숭이 복숭아를 손에 들고 붉게 올라온 알레르기에 다급하게 나를 닦아주던 그 친절한 엄마가 그립다. 


나는 목욕을 한 후 엄마가 건넨 크림을 얼굴에 발랐다. 

얼굴을 시멘트 바닥에 간 것처럼 따가웠다. 따갑지 않은 부분은 눈알과 콧구멍뿐이다. 

점점 달아오르는 얼굴의 열기가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밤새 끙끙 앓았다. 얼굴에서 라면 먹을 물을 끓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도무지 몸살이나 열이 불덩이처럼 오르는 독감에 걸린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

점점 타오르는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엄마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약이라도 입에 넣어야 안정이 될 터였다. 


언니 우정이가 자다 말고, 중얼거린다.


“멍청이”


동생이 아프다는 데 저것은 또 나를 질책하고 수준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한다. 

어차피 대꾸할 가치 없는 말이다. 난 열병에 걸렸다. 

곧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안방 문 앞에 멈췄다.


“엄마아, 엄마아”


내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언니 우정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안방 문을 용감하게 열고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일어나 봐, 얘 아픈 가봐”


언니 우정이는 엎드려 있는 나를 본다. 

태양에 익은 나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었고 크림으로 인해 번쩍거렸다. 우정이가 웃었다.


“아 정말 미치겠다 야, 너 진짜 골 때려”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또다시 엄마의 욕 사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나의 귀는 순간 닫혔다. 

엄마는 진통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수건으로 얼음을 돌돌 말아 내게 건넸다. 

나는 기어서 겨우 식탁 의자에 앉았다. 


“미친년”


엄마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선하고 약한 욕이다. 

나는 진통제 두 알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끼워 넣었다.


“앗 차가”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엄마는 강압적으로 체온계를 비틀어 넣었다. 

오르는 열로 나는 입이 계속 말랐다. 한참 후 엄마는 열을 확인하며 말했다.


“열이 떨어지고 있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치겠다. 이 순간에 할아버지 방에서 요강에 소변을 보는 소리가 들리다니, 이 망할 그림을 그리는 상상력 같으니, 미칠 지경이다. 


다행히 얼굴에서 발열하는 열은 멈추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얼굴색은 아직도 홍시의 색이라는 것이다. 

절망적이었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괜히 나에게 신경질을 냈다. 

나는 아프다는 소리도 반찬 투정도 하지 않는다. 왜 내게 이유 없이 화풀이 상대가 나만 되어야 하는지, 이제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집을 나서기 전 엄마가 다시 또 화를 낸다면 난 문을 있는 힘껏 세게 닫고 나갈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현관문을 향해 나가는 나를 엄마가 불러 세웠다. 


아, 제발 부르지 말아요!


“약 갖고 가”


돌아보니 해열제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나의 입술이 그렇게 티가 나도록 튀어나와 있었을까? 

나는 해열제를 챙겨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아침부터 인상 그렇게 쓰고 다녀라, 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로 소리 질렀다. 

정말 말속에 어떤 한 부분에서도 숨을 쉬지 않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곳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누가먼저신경질을냈는데그래?내가뭘잘못했다고맨날맨날나한테만짜증내고그러는건데바보같이가만있으니까내가제일만만하지?”


콰아아 앙.


문을 얼마나 세게 밀쳤는지 1층까지 문 닫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아빠라도 있었다면 오늘 학교 가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 뻔했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내게 그러는 것처럼 나도 엄마에게 그렇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아빠에게는 하지 못할 짓을 말이다.


위가 갑자기 뒤틀리며 통증이 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엄마에게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예감에 일 층까지 계단으로 냅다 달렸다.

나는 왠지 등이 따끔거렸다. 위를 올려 보았다. 


헉, 엄마가 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상체를 숙이며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뭔가 호된 말을 뱉을 줄 알았지만, 엄마는 나를 보기만 했다. 

난 잘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눈을 흘기며 또다시 뛰었다. 


주책맞은 눈물이 줄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침부터 더위는 말썽이다. 계단을 뛰어 내려온 나의 목덜미가 벌써부터 끈적거린다. 

그 먼 길을 나는 또 떠나야만 한다.

하악하악, 거리면서.


이상하다. 정희 호연 수진이의 얼굴은 말짱한 것이 아닌가.

나는 물었다.


“어제 안 아팠어?”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열이 너무 올라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왜 나만 그래?”


정희가 말했다.


“너만 어제 그늘에 앉지 않았잖아? 


수박 먹을 때도 그렇고 차를 잡는다고 태양을 보며 뒤로 걸어 놓고는”


“그랬나?”


수진이가 말했다.


“너 뭐야 하루 사이 얼굴 살이 쑥, 빠졌어”


“난 어젯밤 정말 태양 속에 얼굴을 묻은 것만 같고
 불에 온몸이 활활 타올라서 지옥에 떨어진 줄 알았어”


나는 점심을 먹고 엄마가 챙겨 준 해열제를 먹었다. 

갑자기 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꾀를 내어 양호실에서 곤한 몸을 뉘며 고독한 시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5교시는 담임의 과목이다. 슬프지만 기운을 내 보았다. 

왜냐면 6교시는 내가 사랑하는 문학 시간이니까.


담임은 웬일인지 자습을 하라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담임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다. 

우리는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 드디어 자리를 비워준 담임 덕에 진짜 자율 학습을 했다. 

나는 나름 집중을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한 건 아니었지만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다.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또 말도 안 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숨겨가면서. 누가 보기라도 할까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써 내려갔는지 모른다.

늘 주인공 남자 이름은 영어 이름이다. 

내 입으로 지금 말하려 하니 징글맞아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교실 안이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린다. 

이러다가 담임이 오기라도 한다면 우린 분명 전체 기합이나 발바닥을 맞을 것이다. 

반장은 뭐 하는 거지? 나는 반장을 돌아보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체, 지 공부할 것만 하며 학급의 분위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이러다 또 단체로 맞는다니까?”


귀를 틀어막은 반장은 고개도 채 들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이기적인 면을 갖고 있는 애가 반장이 되었을까? 

만약 단체로 맞게 된다면 나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아니면 요즘 나의 심리를 비추어 보면 딱 맞아떨어지는 이유를 대며 맞기 싫다고 담임에게 박박 대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나만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새기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 집중하고 싶었다.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은, 우정이의 뉴질랜드 펜팔 친구 이름이다. 

영어로 편지를 하며 친구를 사귀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난 운명처럼 그 아이의 이름을 나만의 글짓기에 대입했다. 

우정이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나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 

내가 해열제에 빠져 졸고 있을 때다. 

담임이 앞문을 열더니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나는 분명 담임의 기분 좋지 않은 얼굴을 확인했었다. 

이 사단을 미리 직감이라도 한 듯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큰일이다. 담임은 그 크고 넓적한 눈으로 아래위로 번뜩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고 있는 얼굴로 말했다.


“전체 일어서”


나는 우선 시간을 확인했다. 

일 분 정도만 버티면 쉬는 시간이고 문학 시간이다. 설마 그 시간까지 담임이 우리를 벌주지는 않겠지.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일어섬과 동시에 아이들의 후회 섞인, 한탄이 섞인 신음이 울렸다.


“어디서 소리를 내?”


나는 다시 뒤돌아 반장을 보았다. 

그제야 이어폰을 빼고 남의 일이 냥, 일어선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 가관이다. 

나는 결심했다. 

이 순간 얌전하게 내 일을 했던 나로서 만약 발바닥을 체벌받게 된다면 저 반장을 꼭 응징할 것이다.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


홍시의 내 얼굴은 분명 더 붉어졌을 것이다. 


“니들, 내가 분명 말했지? 
 자습할 시간을 줬으면 조용히 해야 할 것 아냐?
 니들 떠드는 소리가 교무실까지 다 들려, 알아? 
 단체로 발바닥 두 대씩, 억울한 사람은 손 들어?”


나는 정말 손을 들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의 성격상 억울하다고 손을 든다면 분명 이기적인 놈이라고 나의 발바닥만 때리고 내가 대표로 맞은 거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손을 번쩍,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근데 그때 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 강주아가 담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뭐야?”


“억울해요, 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고
 늘 이렇게 단체로 체벌받는다면 억울한 사람은 계속 억울할 수밖에 없어요
 수업을 하지 않은 건 선생님이잖아요”


이번 일은 매우 강했다. 

담임의 얼굴이 태양에 그을린 내 얼굴과 같아졌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담임은 속에 있는 감정을 가릴 수 없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친구 강주아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야 강주아,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투가 왜 그래?”


그렇지, 꼭 선생들은 자신들이 궁지에 몰리면 버릇, 또는 교육, 아직 어리다, 뭘 알아?라는 단어들로 포장하며 자신이 한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 궁지에 몰린 꽤 괜찮았던 담임도 이 같은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고 담임은 우리들의 체벌에서 관심이 사라진 상태이다.


“모두 책상에서 내려와, 모두 종례 때 보자
 그리고 강주아, 너는 지금 교무실로 따라와”


우선 다행인 건 문학 시간까지 빼앗아 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혈액 순환이 필요하지 않은 내 얼굴을 위해 발바닥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주아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문학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역시 문학 선생님의 설명과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도 강주아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까지 못 들어오게 하는 건 정말 반칙이다. 

이 수업을 담임이 개인적으로 복습해 줄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수업이 막 끝나려던 찰나 강주아가 문학 선생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강주아의 얼굴은 분명 눈물이 마르지 않아 보였다. 

설마 담임이 강주아를 말도 안 되게 체벌했을 리는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정말 궁금했다. 이 궁금증을 나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풀 수 있었다. 


여름 방학이 끝난 후, 여전히 현아와 나는 짝꿍을 유지했다. 

뜨거운 바람이 시원한 바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계절은 늘 약속을 잘 지킨다. 

이날은 무슨 날이었는지 거의 모든 과목을 하루 종일 자율 학습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겨울 방학이 오기 전까지 교과서의 진도를 맞추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지금의 시스템과 비교하자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현아와 나는 기막힌 생각을 했다. 

지금부터 점심시간까지 우리는 자유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우린 도시라고 불리는 내가 사는 곳의 시내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는 극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타는 버스를 친구들과 함께 타고 다시 돌아오고 또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조금 위압감이 들긴 했지만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시원한 바람과 반짝거리는 태양만으로도 너무 낭만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전 버스 안은 생각대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진은 어린아이처럼 계속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보았다. 

늘 혼자 타던 버스는 마치 저 먼 우주까지 홀로 가는 것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졸다 보면 도착하는 곳이 다시 먼 길이 시작되는 긴 밭고랑이다. 하지만 오늘은 완벽하게 달랐다.


어느새 우린 시내 중심가에 도착했다. 

우린 신이 나서 영화표를 예매하고 먹을 것을 사 들고 극장 안으로 향했다. 

우리의 집중력은 최대치다. 영화를 보는 것도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던 그 시간처럼 아주 빠르게 흘렀다. 

지구에 외계인들이 침범하고 아주 큰 운석과 지구가 부딪혀 결국 지구는 소멸하리라, 는 전제를 두고 영화를 보았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영화였다. 

오 분마다 사람의 죽음이 개미 한 마리 죽는 것처럼 아주 쉽게 죽어갔다. 

또한 가끔 갑자기 튀어나오는 외계인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지만, 우린 겁나는 게 없었다. 

두 시간 정도의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끝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이 죽는 것과, 외계인의 존재 유, 무에 대해, 온갖 상상과 질문과 답을 나누었다.


우린 빨간색으로 맵다는 것을 시각으로 정의를 내리지만 일단 입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적절히 배합된 양념의 감칠맛과 매콤함 달콤함, 그리고 아삭거리며 씹히는 파와 말랑한 어묵, 그것을 마주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빨간 오뎅(어묵)은 이곳의 명물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어묵을 우리는 오뎅이라고 불렀다.


우린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현아는 팔을 창틀에 올린 후 기대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난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유, 무가 비 확실하거나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궁금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할 수도 있다. 때론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외계인도 그렇겠지만 귀신 또는 영혼도 마찬가지다. 

난 어릴 때부터 그 세상이 궁금했다. 그리고 난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연립 아파트의 놀이터 화장실의 몸통 없는 귀신이나, 내 꿈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미지의 그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늘 마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종류의 것들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 


난 나의 사후 세계도 궁금했다. 

그리고 나,라는 자아가 궁금하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또는 스스로 느끼는 고통과 통증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연립 아파트의 그 몸통 없는 귀신처럼 그렇게 나타날까? 

그 생각을 하다 보면 나,라는 건 뭐지?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거울을 보면 이게 나야, 이건 나다. 

내가 죽게 되면 이 몸이, 눈과 입이 머리카락이 팔, 다리가 없어지는 거다. 라며 끊임없이 묻기도 했다.


나는 수진이에게 물었다.


“수진아, 만약 우리가 죽는다면 누가 먼저 죽을까?”


“갑자기 뭔 소리야?”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그렇지”


“만약에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꼭 네 앞에 나타날게”


수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나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긴다.


“아 진짜 뭐래?”


“이 말에도 놀라는데? 죽은 내가 나타나면 너 진짜 놀라겠다?”


“영화를 잘못 봤네”


나는 수진이의 손을 잡았다.


“아니야, 봐봐 나 진심이야
 내가 만약에 먼저 죽는다면 너무 슬퍼 마
 네 앞에 꼭 나타날 테니까 대신 놀라지 않기, 도망가지 않기 내가 시간을 줄 테니까
 응? 그렇게 해 줄 거지?”


“아, 정말 넌 늘, 이상한 소리만 해”


“대답해 봐 그렇게 해 줄 거지?”


수진이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응, 할 수는 있지, 대신 너무 놀라게 하진 마”


“죽었는데 나타난 거 자체로 네가 놀라겠지, 하지만 그건 잠시일 거야”


“근데 안 보일 수도 있잖아?”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잠시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차이점이 뭔지, 생각해야 했다. 

또는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과의 차이점도 말이다.


수진이가 나처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정말 누가 먼저 죽든, 나타나면 좋을 거 같긴 해
 처음엔 무서워도 그것도 너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너도 내가 먼저 죽으면 나타날 테니까 도망가면 안 된다?”


“응, 그것도 너니까”


우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지금도 우리의 그 약속이 유효한지 모르겠다. 


큰일이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돌아오긴 했지만, 반장이 감정 없는 외계인처럼 말했다.


“담임이 너희들 보면 교무실로 오래”


담임이 수업 시간마다 와서 출석 체크를 한 모양이다. 

나는 오늘 우리가 본 영화와 우리가 심오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맥을 싹둑, 잘려 버릴 위기에 처했다. 

한 시간도 아닌, 거의 네 시간이 넘는 시간을 우리는 그야말로 땡땡이, 란 것을 저질렀다.


내가 생각해도 저지르고 나니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 들,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아주 천천히 교무실에 앉아 있는 담임에게 다가갔다. 

담임은 오늘따라 장난기 어린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담임은 담임처럼 짧은 몽둥이를 들었다. 

망했다. 

이 짧은 몽둥이는 거대하게 큰 몽둥이보다 매웠으니까.


“니들 어디 갔다 왔어?”


우린 솔직히 말해야 했다. 

내가 먼저 대답했다.


“영화 봤어요”


담임의 표정은 황당해 보였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 참나, 니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리고 내가 너희를 혼내지 않으면 그게 평등하다고 생각하냐?
 다른 아이들은 뭐 교실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앉아 있겠냐?”


담임의 전라도 사투리는 꼭 말끝이 길어진다. 

나는 얼마 전 강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담임은 그때 강주아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나의 담임은 단체로 혼나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날 이후, 담임의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다. 


학생이 한 말로 인해서 선생의 생각이 바뀐다고?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칭찬할 만한 좋은 소식이다. 

고정관념을 깨트린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들어오던 강주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 셋은 노래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담임에게 죄송합니다, 는 말을 했다. 

담임은 긴 생각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니들, 오늘 선생님한테 손바닥 열대씩 맞은 거다? 알아들어?”


우린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담임은 맞은 거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우린 체벌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니들 셋은 맞은 거라고, 알았어?”


이렇게 담임이 말하는 평등은 공평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네”


우리는 담임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참, 현아 너 머리 감았어?”


순간 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담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인상을 찡그려? 잘 감고 다녀라 알았냐”


“네에”


수진이와 나는 키득거리다 담임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반 아이들의 평등을 위해 손바닥을 비비며 아픈 척을 했다. 

현아의 연기는 수준급이다. 

반장은 우리를 흘긋거린다. 맞았다는 것을 꼭 확인하고 말겠다는 의지의 눈빛으로 훑더니 자기 할 일을 한다. 생각해 보니 강주아도 담임과 긴 대화로 끝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담임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아닌 듯 보이지만, 학생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 아닌가,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나는 남은 시간을 또 고민했다. 주인공의 이름을 크리스라고 쓸지 크리스토퍼라고 쓸지, 지우고 쓰고, 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우울한 집에 갈 시간이다.


우린 여느 때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정희와 호연이가 슈퍼마켓을 들어간 사이 수진이 물었다.


“우재야”


“어”


“너 그렇다고 너무 일찍 죽지는 마”


나는 수진의 말속에 나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녀석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 너도”


“그래도 우린 행운이야, 죽어도 서로 알아볼 거니까 도망칠 필요 없이”


“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아주 멀고 먼 일이야”


수진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우린 버스를 탔고 호연이는 과자 봉지에 손을 넣으면 바삭, 거리며 잘도 먹는다. 

수진이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이날은 유난히도 수진이가 반짝거렸던 것 같다.         

 

나는 오늘 집에 돌아가면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걷지 말고 최대한 웅크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열기가 싹 사라진 얼굴은 아주 가뿐했다. 


꼭 시험 기간만 되면 남자 학교 학생들이 내가 내리기 십 분 전에 꼭 버스를 탄다. 

오늘도 난 잘못 걸렸다. 버스 안은 금세 가득 찼고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려 봐도 퀴퀴한 냄새와 푸석한 남자 학생들의 얼굴이다. 나는 늘 그렇듯 빠르게 내릴 준비를 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오늘따라 내리는 뒷문까지 남자애들로 가득 찼다. 나는 내릴 차례가 되어 버튼을 눌렀다. 


여기저기서 쉰 듯, 굵은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아, 이런 버스에서 내리려던 순간, 가방이 남자애들 사이사이로 끼어 제시간에 내릴 수가 없었다. 

기사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가 닫는 순간은 찰나였다.


“아저씨 내릴 거예요”


나의 입으로 말이 나왔을 땐 버스가 이미 다시 출발한 상태였다. 

욕이 나왔다. 

이 냄새나고 예의 없는 코딱지라는 단어나 운운하는 남자애들 때문에 나의 다리가 아픈 일이, 고난의 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걸어갈 작정이다. 나는 운이 없는 아이인지, 나쁜 운을 타고난 아이인지, 이쯤 되면 내가 태어났을 때 왜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는지 알 만도 하다. 

버튼을 눌렀지만, 다음 정거장은 나의 목적지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뒤로 맨 가방을 아예 안고 어렵게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곳은 세 번째 집에 이사한 후 내가 단 한 번도 걸어 보지 않은,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그런 곳이다. 

나는 쓸쓸했고 다시 고단했다.


나는 걷는 나의 발에 맞추어 리듬을 타며 욕을 했다.


“에이 씨, 에이 코딱지 같은 새끼들, 머저리 같은 새끼들, 에이 씨”


욕이란 사람의 화난 감정을 개운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그러고 보니 늘 욱하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발을 맞춰 걷다 보면 꼭, 글자의 수가 홀수로 끝나는 때가 있어서 발걸음이 하나가 남는다. 

나는 그럴 때 치욕스러운 기억, 교련 시간의 발 바꿔 가, 란 것을 읊으며 발을 바꾸어 가며 다시 짝수로 걸으며 욕을 맞춰 뱉었다. 


몸에 밴 습관이나 쓸모없는 기억은 정말이지 무서운 것이다. 

그토록 싫었던 교련 시간에서 배운 것들을 생각해 내며 자연스럽게 행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흘렀다. 너무 힘이 든다. 

심리적으로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제 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이 오르막길만 가면 나는 그만 걸어도 된다. 


“하아...”


집 앞 경비실 불빛이 나를 이렇게 안도하게 할 줄이야. 

나는 눈물을 닦고 현관문을 열었다. 청국장 냄새가 지독하게 콧속을 뚫고 들어왔다. 

집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숨이 막힌다.


“야, 너 시간이 지금 몇 시야? 
 어? 왜 이제 들어와?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하든가
 얘가 진짜 요즘 안 하던 짓을 자꾸 하네?”


나는 한숨을 쉰다.


“하...”


나는 정말 힘들었다. 

엄마가 소리치는 저 입 모양과 손가락 그리고 눈빛은 나를 벼랑 끝에서 서둘러 밀어내려는 그런 강압적인 것으로만 느껴졌다. 언제부터 나를 걱정했던가.


“어디서 한숨이야?”


어디서라니, 어른들 앞에서는 한숨 좀 쉬면 안 되는 건가?

애들이 무슨 한숨이야,라고 말하는 어른들, 어른들과 이기심은 같은 뜻이니까 내가 이해하자. 

내가 한글 사전을 만든다면 어른이라는 뜻 옆에 이런 예를 들어 놓고 작은 글씨로 이기심이라고 적어 놓았을 것이다. 또는 어린, 이라는 단어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님, 이라든가, 양보, 라든가, 샌드위치, 또는 샌드백이라고 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이런 설명을 한다면 나를 이해할까? 

모르겠다. 엄마가 또다시 심장을 주먹으로 두 번 친다. 아픔을 느끼려고 치는 걸까? 

그렇게 해서 내가 얼마나 답답한 아이인지 가르쳐 주려는 자세다.


“아우 답답해 진짜, 야 어디 갔다 왔냐고 묻잖아?”


“집에 왔잖아”


“뭐?”


엄마의 표정이 험악하다. 

아빠가 방에서 나왔다. 난 지금 시간이 아빠의 근무 시간인 줄 알았다. 

나는 최대한 예의 있게 대답해야 한다.


“내려야 할 때를 놓쳤어, 그래서 걸어오느라”


엄마는 그 정거장이 어디인 줄 아는 모양이다.


“뭐? 거기서 걸어왔다고? 너 바보야? 잤어? 
 아니면 진짜 너 바보 아니니?
 거기서 오는 버스가 얼마나 많은데, 바로 집 앞까지 타고 오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것이 내게 얼마나 고통인지 엄마는 정말 모른다. 

나는 고통을 웃음으로 웃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다. 


엄마는 빠르게 내게 다가와 나의 등 짝을 날렸다. 

가방을 메고 있을걸, 이라는 후회를 했다. 흔해 빠진 눈물이 또 흐른다. 

나는 억울하다. 그리고 아빠의 존재도 이제는 나의 분노를 가라앉기에는 늦어 버렸다.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엄마가 나한테 용돈을 줘? 
 딸랑 맨날 차비뿐인데 어떻게 또 버스를 타고 와? 
 내가 우정이라면, 엄마는 우정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기다렸겠지
 점심 저녁 사 먹는 돈이 모자를 까, 더 손에 쥐어 주겠지”


나는 씩씩거렸다. 

나의 두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나의 분노다. 아침의 분노가 지금까지, 아니 내일, 또는 모레, 아니, 일 년까지 진행될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더 어깨를, 분노를 들썩거렸다. 


“이 지지배가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씩씩거려?
 어디서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어? 응?”


“뭐? 또 어디서, 어디서 맨날 어디서, 내가 뭘 잘못했어? 
 돈 없어서 걸어온 게 잘못이야?"


엄마가 이번에는 나의 머리통을 때렸다. 

이건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더 이상 내 입에서 옳은 말이 나오지 않게 만들자는 행동이다. 

나는 엄마를 아주 잘 안다. 그와 반대로 엄마는 나를 모른다. 

난 말을 더 해야 했다. 아빠는 거실에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듣고 있었다. 

이건 뭔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일 것이다.


“버스를 타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리고 그 밭고랑이랑 오르막길을 걸어 다니는 건 쉬운지 알아? 
 어두울 때는? 상상해 봤어? 
 비가 오기라도 하면, 흐엉, 얼마나 얼마나, 무섭고, 축축한지 알아?
 내가 아니라면 우성, 우정이라면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걔들은 미리부터 여기서 학교라도 다니지, 나는 뭔데?
 왜, 나는 자꾸만 개밥에 도토리야? 흐엉”


내 눈물은 이미 거실 바닥까지 흥건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잘못이라는 듯, 표정은 나를 떠밀며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구박을 해? 
 밥을 안 줘? 학교를 안 보내? 응? 
 늦어서 걱정됐다는 말인데도 못 알아듣고 하지도 않는 악다구니를 써? 
 어디서 배운 거야? 학교에서 가르치디?”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엄마 같지도 않아 내 엄마가 아니야”


나는 처음으로 모든 것을 다 쏟아냈다. 

나의 기억에서 잘 익은 복숭아를 건네준 친절하고 따뜻한 나의 엄마는 이날, 죽었다. 

그리고 그날의 따뜻했던 엄마가 영혼으로 내게 나타나도 나는 도망갈 것이다. 

엄마는 뒤 베란다에서 빗자루를 들고 왔다. 

나는 예상한 바다. 나의 입을 닫을 도구다.


아빠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들어 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아빠는 무섭게 소리쳤다.


“이 사람아 들어 가”


우성이는 눈치를 살피며 엄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너 우재 가방 놓고 와”


나는 가방을 놓고 나의 고통이 담긴 콧물과 나의 분노가 담긴 눈물을 닦았다. 

찬 바람을 맞은 볼이 터서 휴지가 지나간 자리가 다시 붉어졌고 따끔거렸다. 

난 아빠 앞에 섰다.


“앉아”


나는 털썩 앉았다. 

아빠가 소리친다.


“뭘 잘했다고, 무릎 꿇고 앉아”


난 잘못한 게 없다 잘못한 거라고는 엄마와 아빠의 딸, 둘째로 태어난 것이겠지.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지만 꿇고 있는 나의 무릎이 소리친다. 

일어서라고, 넌 잘못한 게 없다고.


나는 아빠를 보지 않았다. 분명 듣지 않았는가? 내가 이제까지 말한 것을, 그렇다면 정말 무엇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빠가 더 잘 것이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난 다시 한번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이 두 사람은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너 엄마한테 왜 말 함부로 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사건은 이제 내가 엄마에게 말한 말버릇, 이것이 주원인이 되는 거다. 

내가 힘겹게 뱉은 말은, 아빠의 기억 속에서 다 잊은 거다. 그저 내 말버릇이 잘못 인 거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자기의 말이 옳다는 것을 뇌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잘못했다는 말을 끌어내고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할 것이다. 

난 지지 않을 거다. 

절대 지지 않겠다.


“대답 안 해?”


무슨 대답을 하라는 건지, 도통 이치에 맞지도 않고 문장에도 맞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아빠의 얼굴을 아빠의 눈을 보았다. 

정말 모르겠다, 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물론 버스에서 잘못 내려서 오래 걸린 건 알아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지
 왜 말대답에 소리까지 쳐?”


“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소리친 건 엄마라고요
 아빠도 봤잖아요?
 소리친 게 잘못이면 엄마가 먼저 잘못한 거예요”


아빠는 그 작은 눈, 우정이와 같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착한 아이의 코스프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를 처음 대하는 아빠의 얼굴이다. 

놀랄 법도 하다. 처음엔 엄마의 표정도 이러했다.


나는 안다. 이때 아빠는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른은 꼭, 어른의 존재가 아이의 앞에서 위엄과 권위를 떨어뜨리면 안 되는 건 줄 안다. 

억지스러워도 너는 잘못했다, 는 것을 인식시키려 애를 쓴다. 

난 어른이 되면 내가 잘못한 일이라면 세 살 아이 앞에서도 무릎을 꿇을 것이다. 꼭.


“아무리 그래도 엄마한테 엄마도 아니라는 말을 어떻게 해?
 그건 잘못이 아니란 말이냐?”


나는 억울하다. 무어라 떠들어도 우리는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빌든가, 이 길로 밖으로 뛰어나가 다시는 들어오지 않는 것뿐, 방법은 없다. 

나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고 눈앞이 흐릿했다. 

아빠는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서며 말했다.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방으로 들어가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손들고 무릎 꿇고 벽에 기대어 있어”


아빠는 화장실 옆 벽을 가리켰다. 

그럼 그렇지, 역시 아빠 다운 생각이다. 아빠가 스스로 결정을 낼 필요 없이 내가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손도 벽에 딱 기대어 팔꿈치를 굽히지도 않고 내 자존심만큼 온전한 모습으로 들었다. 

아주 꼿꼿하고 빳빳하게. 


모든 건 처음에만 자신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른 후 알았다. 

아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엄마와 우성이가 방에서 나와 마치 내가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다정하게 앉아서 사과를 깎아 먹는다. 내게는 먹어 보라는 소리도 없다.

언제부터 인가 동생 우성이 저놈도 인정머리가 꼭, 우정이처럼 닮아 간다.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세 시간이 흘렀다. 

언니 우정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 나를 보며 비웃는다.


“야, 넌 또 뭐냐?”


나름 성인이 된 이 언니는 여전히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도 같이 비웃어 줬다. 나는 요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예전에 내가 아니란 말이다.


“야 웃음이 나오냐?”


“신경 꺼”


“아 저 싸가지, 저러니까 맨날 혼나지”


“웃기네, 내가 맨날 혼나냐? 싸가지 너보단 덜하지”


사실 우정이는 정말 엄마에게 많이 혼이 났다. 하지만 정말 내가 봐도 우정이는 그렇게 잘못을 혼이 날 만큼 저질렀다. 우정이가 잘못을 한 거에 비하면 정말이지 혼나는 건 겉치레에 불과했다. 

그래서 저런 이기적인 비 현실주의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이다. 


“닥쳐라”


난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니가 먼저 닥쳐라”


우정이는 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시늉을 했다. 

당연히 난 인상을 찡그리고 맞지도 않은 머리통을 옆으로 피하며 비웃어줬다.

우정이 덧붙인다.


“이런 멍청이”


우정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 잠갔다. 찰칵.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정이 일찍 일찍 다녀라 응?”


우정이가 소리치며 답했다.


“네에에”


모두가 방에 들어갔고 우성이는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우성이를 보고 있자니 사과를 입안에 넣으며 오물거리던 얄미운 생각은 사라지고 이 쓸데없는 오지랖은 거실에서 잠든 우성이가 안타깝다. 

괜히 가만히 있는 할아버지를 또 미워했다. 


시간은 흘러 자정이다. 나의 꼿꼿했던 두 팔은 항아리 모양처럼 기울어졌고 발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두 허벅지의 살이 나의 살이 아닌 것처럼 말캉거린다. 집 안은 고요하다. 

덜컥, 안방 문이 열리고 부스스한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내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나의 감정이 아니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이 눈물이라니. 

엄마의 한숨이 길어진다.


“하아아아, 넌 누굴 닮아서 고집이 이러냐, 응?
 가서 자, 얼른”


"난 잘못하지 않았어"


난 꼼짝하지 않고 두 팔을 남은 힘을 다해 높이 들었다.


“하... 불 꺼 버릴 거야 들어가라고
 아니 다른 애들은 걷는 것만 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데
 넌 내 배로 낳았지만 정말 모르겠다”


엄마의 그 말은 더욱 나를 아프게 큰 바늘로 찔렀다. 

아빠는 엄마의 말에 보탰다.


“지가 잘못한 게 없으니 그러고 있는 거지, 그냥 둬”


엄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당신도 무슨 애랑 누구 고집이 더 센지 내기라도 해?
 달래든가, 대체 원, 김우재
 너 빨리 들어가라 했지? 불 끌 거야
 아휴 지겨워 지겨워”


엄마는 울고 있는 나를 두고 정말 불을 끄고 들어가 버렸다.
캄캄했다. 무서움이 몰려오는 와중에 할아버지의 방문이 삐익, 하고 열렸다.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방으로 빠르게 달렸다. 젠장 문이 잠겼다. 

난 소리를 쳤다.


“야, 문 열어”


이렇게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우정이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나 엄마의 귀에 들어갈 만한 소리를 내야, 빗자루의 매운맛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당연히 문이 열렸다. 우정이는 나를 흘겨보았다. 

난 뭐라고 대꾸하려 했지만, 나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 있는 상태다. 

그날 밤, 난 온갖 귀신들과 외계인을 꿈에서 만났다. 


그림을 그리고 악역인지, 아니었는지 가를 판국이다. 

꿈에서 내내 시달리며 눈뜬 시간은 새벽 네 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난 목이 말랐고 다리도 아팠다. 하지만 물을 먹기 위해서는 어둠을 뚫고 나가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완전한 한국형 귀신들이 나를 쫓아온다.


나는 깨닫는다. 

꿈에서 달리기를 뛴다면 실제로도 체력이 바닥난다는 것을 말이다.


미루어 보아, 나의 사춘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불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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