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랑이 1
처음 이 생명을 만난 것은 2021년 겨울이었다. 내가 본가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계부는 엄마와 떨어져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애써서 가꾼 농작물을 쥐들이 망쳐놓아 고양이를 구하고 있었다.
" 너무 큰 고양이로 데려오면 사람 손을 아예 안 타니까 좀 덜 큰(덜 자란) 놈으로 데려와줘."
시골에 사는 계부는 엄마가 사는 아파트 주민인 A 아저씨에게 고양이 분양을 부탁했다. 운 좋은 고양이 하나가 유기묘 센터에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A 아저씨는 강아지를 키웠다. 택배 박스에 강아지 배변패드를 깔았고, 거기에 사료와 고양이를 담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박스에서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이 생명은 부러질 듯 가벼웠다. 이 손바닥만 한 생명은 아직 고양이가 되지 못했는지 야옹야옹이 아니라 삐약삐약 울었다.
내 움직임을 쫓아다니는 회색 눈동자. 검은색 코 아래로 분홍 빛을 띠는 입. 삐쭉삐쭉 제 멋대로 자란 것처럼 보이는 털은 한없이 보송보송했다.
솜털 같은 이 생명이 내 가슴에 무겁게 자리했다. 이내 화가 났다.
"쥐보다 작은데 얘가 어떻게 쥐를 잡아. 쥐한테 잡아먹히겠다."
나는 계부를 닮은 열악한 시골집을 떠올렸다. 얘는 내려가면 금방 죽을 거다. 확실했다.
"고양이는 아기 때 체온 조절이 잘 되지 않는대. 겨울이라도 지나면 그때 내려보내자, 엄마. 뭐? 알아서 할 거라고? 알아서 하긴. 저번에 오리들을 그렇게 다 얼어 죽었잖아."
작년에 계부가 불쌍하다고 도로에서 새끼오리들을 주워왔다가 일주일 동안 6마리를 차례대로 자연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뒤뚱거리며 걸었던 새끼오리들은 물이 아닌 하늘로 돌아갔다. 체온조절을 꼭 해주라는 내 말은 매번 그러했듯 허공으로 사라졌고- 다만 내가 산 오리의 사료, 집, 장식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 - 돈 들어가게 뭐 하려고 병원을 데려가. 얘는 그냥 시골에서 막 자라는 애야."
계부가 말하는 시골에서 막 자란다는 의미를 나는 익히 알고 있다. 그가 키우는 강아지,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똥개들'을 보면 모를 수 없었다. 그들은 연명하며 생존한다. 그들은 가족, 집사가 아닌 주인을 가지며, 자유, 행복 따위를 주인에게 구걸할 수 없다.
"내가 그 돈. 다 낸다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낸다고.
"30만 원 넘는다며, 그 돈 나나 줘라."
계부는 맡겨놓은 것처럼 왕왕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그 장난기 많은 목소리 속 진심이 있을 거라고 나는 의심했다.
"다른데 쓸 거잖아."
"당연하지."
병원 가기 전부터 고양이 밥, 밥그릇, 화장실, 모래, 삽, 발톱깎이, 고양이전용티슈, 목욕용품 등 이것저것을 사느라 30만 원 이상을 훌쩍 넘겼다. 시골에 데려갈 건데 뭐 하러 돈을 쓰냐는 타박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다가 가야지."
"이렇게 부유하게 살다가 가면 오히려 적응 못하고 더 불행할 수도 있어."
엄마의 말에 꾹 입을 다물었다. 엄마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였다. 잠깐 맛본 따뜻함이 사라지면 더 춥게 느껴지겠지. 그건 당연한거였다. 그렇다고해서 사랑을 전혀 모르고 사는게 낫나?
뭐가 이 생명에게 더 나을까?
쥐잡이용 고양이로 데려온 이 천진한 생명을 보면서 매일 밤마다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겨울은 금방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