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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없어도 계속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내가 기다린다

by 윤채


지금 이 글을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표현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쓰는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이걸 왜 계속 써야 하지?’



이런 회의감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창작자는 열심히 쓴 글에 관한 반응이 없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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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처럼 조회수나 ‘좋아요’ 수치가 글의 가치를 대신 평가하는 시대엔 읽히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마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글쓰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자.



모든 글이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에 글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타인을 위한 전달 이전에 자신을 이해하고 정리해 첫 독자인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글쓰기의 매력이다. 읽히지 않는 글이 의미 없다는 믿음은 글의 기능을 지나치게 외적인 평가에만 의존한 결과다.



실제로 수많은 작가들이 읽히지 않던 시기를 통과해 왔다. 그들이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의 반응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961379ilsdl.jpg As you like it, I, 2 (1901-1911)_Henry James Haley (English, 1874–1964)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축적된다.



1) 사고력이 정제된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이 명료해진다.

2) 감정이 정돈된다. 혼란스럽던 감정이 문장으로 정리되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된다.

3) 지속성이라는 내공이 쌓인다. 쓰는 사람이 멈추지 않을 때, 글쓰기는 결국 하나의 ‘능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글은 반드시 읽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읽히지 않아도 의미가 차곡차곡 쌓이는 글쓰기는 분명히 존재하며 그 의미는 무엇보다 글을 쓰는 자신에게 가장 깊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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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존재하지만 지금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더라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누군가가 기다려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글을 기다릴 수 있다면, 그것은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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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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