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가 없다고 죽지는 않더라
네 글은 좋아요 많이 나오긴 해?
지인의 질문에 “글쎄, 별로?”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좋아요, 조회 수, 공감 수. 분명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숫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읽히지 않을 때, 반응이 없을 때, ‘내가 잘못 쓴 걸까’, ‘더 이상 쓸 자격이 없나’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나는 글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좋아요가 없다고 해서, 글을 쓰는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쓰기 싫은 그 순간이 가장 강한 글을 낳기도 한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초조함과 외로움, 그런 감정들이 글쓰기의 진짜 원천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긍정적인 감정만 글이 된다고 믿지만, 실제로 많은 이야기들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기쁨보다 상실, 설렘보다 허탈함, 기대보다 좌절. 감정이 정제되지 않았을 때, 글은 더 솔직하고 깊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감정을 글로 바꿀 수 있을까?
아래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감정은 막연할수록 글이 되기 어렵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해 보자.
단순히 ‘우울하다’고 느끼는 감정도, 사실은 ‘무력감’, ‘좌절’, ‘질투’처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글의 첫 문장도 함께 떠오르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라는 질문 하나로도 한 문단이 완성된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쓰는 글은 감정을 정리하고 치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때 너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었니?”라고 묻는 글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쓰는 순간,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다.
글은 감정을 쏟아내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감정을 정리한 후에는 반드시 그 안에서 하나의 통찰이나 해석을 끌어내야 한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이 감정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글을 읽는 독자 역시 감정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감정에서 하나의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을 때, 그 글은 오래 살아남는다.
좋아요가 없어도 쓰는 사람은 쓰고, 남는 글은 남는다.
숫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이 들끓을 때 멈추기보다 오히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정면으로 마주 보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글을 쓰는 우리는 숫자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떤 감정에 관해서든 많을수록 쓸 기록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좋아요가 없어도 괜찮다.
좋아요가 없어서 좋지 않은 하루였어도 그 하루에 관해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