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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후 Aug 25. 2024

아저씨와의 스몰토크

아버지

한 가지 더 고백할 것이 있다면


아저씨들과의 스몰 토크를 정말 즐겨 합니다.


주말 오후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생활이 한 몫 한 듯 합니다.


달리 아주머니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주말 오후 5시에 술에 달큰히 취해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를 사람은


아저씨들 뿐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아저씨도 단순히 아저씨라기보단


배도 좀 불룩 나오고, 


두 달에 한 번 새치 염색도 해야 하는,


주말이면 등산복을 걸치고 전국을 누비는,


장성한 자식을 둔 아저씨들입니다.


그들과의 대화가 왜 이렇게 재미있나 생각해 보면,.


자식은 다 커서 출가하고


30년 넘게 다닌 회사는 재밌을 리 만무합니다


오래 다닌 회사는 그저 관성으로,


가족을 위해 매일 새벽 나갈 뿐입니다.


평일엔 사회에 나가 시달리고


주말엔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들에게 시달리니


차가운 소주 한 잔


시큰한 막걸리 한 잔 


안 할 수가 없으신가 봅니다.


그렇게 한잔 두 잔 


한 병 두병 들이키면


그렇게 재밌는 개그맨이 됩니다.




3년 넘게 주말마다 얼굴을 보던 아저씨들이라 그럴지도 모릅니다.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술술 나오는 것이


아마 내가 능글맞고 실실 잘 웃는 탓일지도 모릅니다.


얼굴만 보면 딱 맞는 담배를 꺼내주는 내가


이제는 좀 반가울지도 모릅니다.




고장난 아파트 엘리베이터 얘기


30년을 돈을 벌었는데 용돈은 쥐꼬랑만 하단 얘기


바가지 긁는 와이프가 참 힘들다는 얘기


그럼에도 결혼은 꼭 하시라는 얘기


아파트 단지에 등장한 오소리 얘기


매일 무리 지어 다니는 시끄러운 초등학생들 얘기


술 먹고 통째로 잃어버린 지갑 얘기

(직접 여기저기 전화해서 카드를 정지시켜 드린 이후론 거의 친아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 좋은 학점을 받아내고 있다는 사랑하는 딸 얘기


.

.

.


자주 오는 아저씨들 담배 좀 외우고


실없는 개그에 실없이 웃어줬을 뿐인데요


더 없는 친구가 된 기분입니다.


달리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술 사달라고 하면 당장에 막걸리 한 잔 사주실 분들입니다.



어딜 가나 아저씨들은 배가 좀 나와있고


술이 좀 취해있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아마 젊은 날의 당신께서 그랬던 것처럼


급하게,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까요?


그들 어깨에 달린 사랑하는 아내와 쥐망울같은 자식들의 무게에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오래


앞으로 가야 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여유를 가진 아저씨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습니다


얼굴 볼 때마다 따봉을 날려주시는 아저씨도 있고


많이 팔라고 해주시는 아저씨도 있고


좋아 보인다고 해주시는 아저씨도 있습니다



오래 맞아온 세월의 풍파에


표정은 되게 뚱하고 무서워 보이는데


막상 대화 나눠보면 그들만큼 재밌는 개그맨들이 없습니다.


줌마개그, 할매개그는 없어도


아재개그는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저만 재미있어하는 건 아닐 겁니다.


.

.

.



사실 


배도 불룩 나왔고


좀 술에 취해 있고


두 달에 한 번은 새치 염색을 하고


주말엔 등산복을 차려입는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들입니다.



술만 먹으면 젊은 날을 추억하는


실없는 농담들을 던지곤 하는 아저씨들은


우리 아빠입니다.


밖에서 만나는 아버지들이랑은 


실없이 웃을 수 있고 


실없이 떠들 수 있는데


집에 있는 아버지랑은 생각만큼 실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내 키가 이만큼 자라는데 


아버지가 포기해야 했을 것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 머리가 채워지는데


아버지가 들여야 했을 노력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전부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무게를 좀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


아버지와는 좀 더 실없기가 힘듭니다.


그 무게를 말없이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나 존경심 때문 일지도 모릅니다.



성장판이 채 안 닫힌 초등학생이나


귀여운 막내딸이면 또 모르겠는데


성인이 된지도 한참 지난 아들은


마냥 철부지 같을 순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아버지와의 스몰 토크도 즐기는 중입니다.


아버지도 결국 아저씨 아닌가요?


술에 취한 아버지의 주정을 좀 받아주고


같이 소파에 앉아 야구도 좀 보고


날씨 얘기도 좀 하다 보면


아빠가 꺼내는 얘기를 귀담아듣다 보면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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