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J야 너에게 오늘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네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어떤 하루일지 궁금하다. 난 행복하기 위해선 하루하루를 행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이 말은 정말 지겹게도 많이 들어봤던 말이지? 누군가 말하기를, 행복은 평소에 행복할 때 쓰이는 근육을 잘 키워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해. 광배근이나 삼각근만 근육인 줄 알고 열심히 운동했던 내겐 좀 당황스러운 말이긴 하네. 행복은 사실 항상 우리 곁에 있고, 그 행복을 찾아서 늘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늘 행복한 것 같아. 1년 뒤에 될 성인, 2년 뒤에 할 전역, 4년 뒤에 할 졸업을 그렇게 애타게 바랐는데, 나의 현재를 잘 마치기만 하면 행복이 오는 줄 알았는데, 그랬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사실은 아닌 것 같아.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날 그렇게 귀여워해 주지 않았고, 군복을 벗고 마주한 현실은 아직도 내가 어린아이임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지. 그래서 이젠 알아. 학사모를 던지는 순간 마주하게 될 사회는 여전히 나를 미숙하고, 완성되지 않은 노동력으로 볼 거라는 걸 말이야. 멋진 직장인이 되어 사회 구성원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것의 기쁨은, 출퇴근 지옥철의 콩나물로써 본분을 다하는 와중에 모두 희미해지겠지.
물론 미래의 나를 향한 희망을 버리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다만 1개월, 1년, 10년 뒤에 성취할 목표를 너의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오랜 기간 걸어가야 하는 너에겐 그것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 1년 뒤에 느낄 행복의 양이, 1년간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양보다 결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럼 넌 대체 뭐에 행복을 느끼는데'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턴 내가 요즘 매일 느끼는, 혹은 느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행복을 좀 들려줄게. 이 행복들이 요즘 나의 하루를 가득 채워.
첫 번째,
나 스스로가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행복을 느끼고자 해. 다른 사람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한 순간은 무엇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고, 명찰을 붙여서, 매일 꺼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매일 하는 달리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달리기를 하는 순간엔 날 휘감았던 모든 고민과 불안을 잠시 잊을 수 있고, 다 뛰고 나면 그 먼 거리를 뛰어 냈다는 성취감이 날 기쁘게 하고, 뛰고 와서 맛있는 밥을 해 먹으면 또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지.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고 하는 장점들은 끼어들 자리도 없네. 좋은 취미를 갖게 되는 건 매일의 행복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일인 것 같아.
또 다른 예로 들자면, 매일 보는 풍경이 주는 행복이 있을 수 있겠다. 사실 올해가 되기 전엔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폰을 보느라 주변을 잘 둘러보질 못 했던 것 같아. 기껏해야 눈앞의 보도블록이나, 신호등 정도가 내 시야였던 것 같아. 그런데 요즘은 도로 위에 걸린 표지판이나, 가로수, 아파트 건물에 걸린 하늘과 구름을 자주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되게 모양도 제각각이고, 그 색깔도, 냄새도, 온도도 다양해서 눈이 즐거울 때가 많아. 하루에 5시간씩 붙잡고 있는 작은 화면 속의 그림보단 말이지. 날 둘러싼 풍경을 보며 걷는 것도 매일의 행복에 한 발 다가가는 일이야.
너에겐 너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 행복해야겠다! 하고 꺼내 먹을 수 있는 주머니 속 초콜릿이 있는지 말이야.
두 번째,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고자 해. 나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들은 사실 되게 조용하고, 가끔은 외롭거든. 외로운 행복이라니, 팥 없는 찐빵 같은 소리긴 하네. 여하튼 타인이 내게 주는 행복도 정말 다양해.
가장 우선은 나의 친구들이 주는 행복이 있겠다. 친구를 이야기했던 편지에서 썼던 것처럼, 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그저 축구만 같이 차도 재미있는 친구들이 있고, 또 함께 달리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들이 있어.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물론 직접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 이 녀석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고맙다'거든. 아마 사랑한다고 말하면 난 내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리겠지.) 친구들과는 함께 있는 대부분의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
지난 편지들에서 눈치챘겠지만, 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가끔 행복을 느껴.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주는 건 아니지만, 웃으며 대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늘 그렇더라. 한 번 시작한 모르는 사람들과의 스몰토크는 좀처럼 멎을 기미가 안 보이는데,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지하철, 버스, 편의점, 버스 정류장 안 가리고 늘 대화를 하는데, 엉뚱한 호기심에서 나오는 어른들의 질문은 왜 이렇게 들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걸어온다면, 한 번만 반갑게 맞이해 보는 건 어때? 낯선 행복이 널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내가 오늘을 잘 보내는 비결을 너무 다 말해준 것 같아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언젠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날 지켜보고 있을까 봐 걱정이다. 그래도 너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도 더 행복한 오늘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다 털어놓아봤어. 너도 이 편지를 읽고 꼭 너의 비결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래도 되나 싶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게 말이야.
오늘은 청계천과 광화문을 한참을 걸었는데, 그곳엔 벌써 연말이 왔더라.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천을 따라 부는 바람에도 연말의 분위기와 온도가 다 담겨있더라. 네가 보내야 하는 오늘 하루가 너무도 즐겁고 행복해서, 매일이 연말처럼 아름답길 바라.
밝은 조명과 아름다운 음악,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청계천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