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J야 너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며 다짐했던 오늘의 목표나, 1년간 준비했던 자격증이나,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 지난 나의 편지들을 읽었다면, 아마 너는 내가 꿈도, 목표도 없이 오늘 하루만 재밌게 사는 쾌락주의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살고 싶긴 한데, 그렇게 살면 아마 10년 뒤에 난 빈 수레가 되어 어디 요란하게 다니지도 못하고 고물상에 박혀있겠지. 작은 목표든, 커다란 목표든, 단기 목표든 장기 목표이든 사람은 누구나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해 1월의 첫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가슴에 새겼던 목표가 지금은 좀 희미해졌는지, 아니면 더욱 뚜렷해져 눈앞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네.
늘 그렇듯, 목표가 없으면 게으른 사람이라던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다만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행복도 정말 크니까, 또 우린 행복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주고받는 거니까, 또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우리 목표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거지. 아무래도 내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게 편할 테니까, 또 내 이야기부터 해볼게.
내 목표를 좀 나누어 보면, 이미 이룬 목표들과,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인 목표들, 언젠가 꼭 이루기 위해 노트에 꾹꾹 눌러쓴 목표들이 있어.
첫 번째로 이미 이룬 목표들부터 보면,
10km를 50분 안에 뛰겠다는 목표를 이루었네. '에이 뭐 그런 것도 목표라고 할 수 있나?' 하진 말아줘. 꼭 거창해야만 목표는 아니잖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00km를, 시간으론 100시간을 줄곧 뛰었으니, 나에겐 이만한 성과가 없다고 할 수 있지. 달리기의 재미나, 즐거움이나, 신남이나 좋은 점들은 줄곧 얘기해왔으니 여기선 얘기하지 않기로 할게. 사실 달리기가 그냥 두 다리가 가는 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 되는 것 같잖아? 하지만 3km, 5km 이상의 거리를 뛰기 시작하면 10개의 발가락과 2개의 발꿈치, 2개의 무릎과 엉덩이가 모두 잘 조화를 이루어야 좀 덜 고통스럽고, 훨씬 쉽게 달릴 수 있어. 무게중심을 앞과 뒤 중 어디에 두고 뛰어야 할 지도 잘 선택해야 하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실을지, 중지 발가락에 힘을 실을지도 잘 결정해야 하지. 숨은 언제 들이쉬고 내쉴지, 팔과 어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는 어디에 둘지도 모두 달리기를 하며 새롭게 선택해야 해. 100시간을 달리며 결정한 나의 선택들은 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준비물이 되어주었고, 준비물을 다 모았을 땐 아득히 멀어 보였던 그 기록을 너무도 쉽게 깨버릴 수 있었어.
'목표들'을 보자고 했으니, 내가 이룬 목표를 한 개는 더 써야만 할 텐데, 막상 생각해 보니 마땅하게 적을 만한 목표가 없네. 나름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노트에 적혀 있는 목표들이 너무 높이 서 있는 까닭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올해가 가기 전엔 더 많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야.
두 번째로 내가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인 목표들을 보면,
우선 완연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야. 나이 듦에 대해 얘기했던 편지에서 얘기했듯이 잘 나이 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나 혼자서 많이 쓰고, 읽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이해해 보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좀 더 완연한 내가 되어 보려고 노력 중이야. 지금보다 한참은 더 완연한 내가 되어서, 내가 지금 만나는 좋은 어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직 한참은 부족한 어른이야. 툭하고 짜증이 튀어나올 때도 있고, 가끔은 꼭꼭 숨겨놨던 고집이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어. 정말 힘들 땐 이기적인 내가 될 때도 있어서, 스스로가 미울 때도 있지. 그래도 늘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생각하면서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야.
또 한 가지 노력 중인 목표를 생각해 보자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건강한 몸이 돼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싶어. 물론 지금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지만, 밥도 좀만 줄이고, 소주도 좀 줄여서 여기저기 윗옷도 벗고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멋있는 몸을 가지고 싶다.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 차서 비 오는 산을 뛰어다니는 인스타그램 속 형들처럼 되고 싶다는 거지. 사실 몸을 만드는 목표야말로 끝이 없는 목표지만, 그래서 더욱 노력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아마 지금 하고 있는 달리기는, 두 무릎이 다 닳아서 뼈끼리 맞닿기 전까지는 늘 하지 않을까 싶네. 언젠가 그런 몸이 된다면, 꼭 윗옷을 다 벗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말 테야.
세 번째로 아직 닿기엔 너무도 멀어서, 노트에만 꾹꾹 눌러써서 담은 목표들이 있어.
그런데 이건 아직 나조차도 꺼내서 읽기 어려울 만큼 멀리 가있고, 또 너무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야. 그래서 안 알려줄래. 하하
언젠가 나이가 든 내가 싱글 생글 웃고만 있다면, 늘 행복해 보인다면 날 붙잡고 물어봐 줘. 눌러 담은 목표들을 이루었냐고 말이야.
올해 첫해가 떴을 때 했던 너의 다짐이나, 성인이 되며 세웠던 멋진 계획들, 담임선생님이 시켜서 적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아름다운 꿈들은, 너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색이 다 바래서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지, 잘 새기고 다져서 한 발씩 가까워지고 있는지 궁금하네.
편지엔 늘 내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또 내 이야기만 줄곧 하다가 너한텐 허무맹랑한 질문만 던지고 편지를 마치는 것 같아 미안해. 그래도 내가 먼저 말하면 네가 좀 대답하기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자꾸 털어놓게 된다. 네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탓이기도 하고.
가을비가 그치면 이젠 쌀쌀해질 텐데, 쌀쌀해지면 연말이 그만 와버리고 말 텐데, 올해의 목표를 꼭 다 이루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하기라도 말이야.
늘 배가 통통 불러오고, 선선한 가을 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