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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후 Oct 20. 2024

당신에게 슬픔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당신에게 슬픔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여태껏 반말로 잘 써오던 편지를 갑자기 존댓말로 적는 이유는, 기쁨이나 행복은 누구에게나 즐겁고 사랑스러운 감정이지만, 슬픔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삼켜낸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두의 슬픔엔 일말의 예의와 존중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처럼 제 이야기부터 하자면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슬픔은 그저 속으로만 꾹 눌러 삼키게 됩니다.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이 어딘가 약해 보여서 일까, 남에게 위로받는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서 일까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외치던 열일곱의 어느 날 이후론 좀처럼 남들 앞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사실 슬플 때 눈물 흘리고, 기쁠 때 웃는 사람들이 진짜 어른들인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도 어린아이입니다. 

가끔 밀려오는 슬픔을, 여전히 소리 내어 울어내지 못하니 말입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머리통도, 키도 지금의 절반만 했던 어린아이 땐 오히려 슬픔에 솔직했습니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도,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지 못했을 때도, 가기 싫은 어린이집에 끌려갈 때도 

우렁차게 울어댔으니 말입니다.

그럼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나는,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건가요?

.

.


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울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입니다.


어린 시절 제 인생의 전부였던, 외할머니를 이제 두 번은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입니다.


꾹 눌러서 삼키기엔 너무 컸던 슬픔을 만나면 목 놓아 울게 되는가 봅니다.

그마저도, 나보다 더 슬퍼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다 울어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때 못다 한 울음은, 이따금씩 속으로 삼켜내고 있습니다.


.

.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때마다 슬프다면, 앞으론 즐거울 일보단 슬플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가, 앞으로 사랑할 이들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제 다가올 슬픔엔 소리 내어 울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

.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던데, 내 슬픔은 절반이 되었으니 즐거운 일이지만, 세상에 슬픈 사람이 둘이 되었으니 더욱 슬픈 세상이 된 건 아닌지요?

그래도 이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쪼개고, 저렇게 나누다 보면 어느새 희미해지는 게 슬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채 토해내지 못한 슬픔을 반으로 똑 때어다 주시면, 꿀떡 삼켜다가 잊어드리겠습니다.


부디 당신의 슬픔을 잘 삼켜내고 뱉어내어서, 행복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언제 소리 내어 울었는지 궁금합니다. 슬플 때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우렁차게 울기만 하는 어린아이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저처럼 속으로만 슬픔을 삼키는 인간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속으로만 슬픔을 삼키며 살아가는 인간은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는지요? 뭐라고 이름 붙여주시면, 그런 줄 알고 살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어른이 된 것도 아닌데, 뭐라고 이름 붙여주는 사람이 없으니 더욱 소리 내어 울기가 힘들어집니다. 


청소년인가요? 젊음인가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청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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