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J야 너에게 후회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네가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며 어떤 후회를 해 왔는지 궁금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공부 열심히 해라' 만큼이나 인생을 살며 자주 듣는 조언은 '후회 없이 살아라' 아닐까? 늘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어른들은 왜 우리들에게 후회 없이 살라고 말하는 거고, 왜 그런 조언을 듣고 자란 우리들은 여전히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사는 걸까?
후회의 뜻은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라고 해. 난 후회가 밀려올 때면, 내가 과거에 했던 잘못 들을 뒤늦게 깨닫고, (잘못을 하자마자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하곤 해. 이건 누구나 그렇겠지. 너의 후회들을 되돌아보려면, 또 내 후회를 먼저 꺼내놓아야 할 것 같아. 너무 큰 후회들은 좀 나중에 꺼내도록 하고, 몇 가지 귀여운 후회들만 좀 꺼내볼게. 내 작은 후회들을 보고 그냥 편지를 덮지 말고, 꼭 너의 후회들도 잘 되돌아보고, 보살펴 줬으면 좋겠다.
첫 번째 작은 후회는,
한참 키가 자라던 시절인 중학생 때 좀 일찍 일찍 잠자리에 들걸, 하는 후회야. 그땐 매일 뙤약볕에 나가 운동만 하고, 공부는 좀 덜 했으니 밤에 늦게 잘 이유가 참 없었는데, 밤엔 뭐가 그렇게 재밌는 일들이 많고, 밤에 나누는 대화들은 왜 이렇게 즐거운 건지. 매일 12시가 되기 전에 꼬박꼬박 잠에 들었다면 아마 키도 한 190까진 크고, 중학생 때 꿈이었던 농구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농구공을 손에 쥐고 다녔으니까 말이야. 잠을 자는 것의 중요성을 몰랐던 나는 결국 조금은 날랜 슈팅가드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농구선수의 꿈을 접었어.
두 번째 작은 후회는,
공부를 꼭 열심히 해야 했던 고등학생 때 운동을 좀 덜 할걸, 하는 후회야. 물론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중요한 시기에 뙤약볕에 나가 땀은 좀 덜 흘리고, 펜을 더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더 좋은 대학에, 원하는 학과에 입학해 잘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결국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못했던 나는, 수능을 한 번 더 보게 되어버렸어. 수능을 한 번 더 보겠다는 이 선택마저도 후회스러운데, 이건 차마 가볍게 얘기하지 못하겠다.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이 정도면 참 귀여운 축에 속하는 후회들이라고 생각해. 후회스러운 선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난 어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고, 즐거운 대학 생활도 하고 있으니 말이야.
사실 나의 두 가지 후회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 후회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로 이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는 거야. 후회로 가득한 지금의 내가 하는 이기적인 자기 위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잠을 좀 일찍 잤다고 해서 키가 컸을지는, 그때 운동 대신 공부를 더 했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지는, 누구
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너도, 나도, 신도 모르는 일이지.
또 다른 공통점은, 내가 했던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들은, 지금의 나에게 결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거야. 최선의 선택이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결과에 비해서 좀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뿐인 거지. 중학생 때 나의 밤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은 여전히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고, 고등학생 때 했던 운동들은 내가 평생 운동이라는 취미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어.
난 이게 후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과거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무엇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고, 우리가 했던 차선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는 거지. 그런 우리가 과거의 행동들을 자책하고, 비난하고, 힐난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이 최선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다만 후회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선택들에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생각해. 나는 위의 두 가지 작은 후회들을 통해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는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 이런 후회들이 쌓여서 좀 더 완연한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라'보다는, '이전의 잘못을 잘 깨우치고 뉘우쳐라' , 더 간결하게는 '후회를 정말 잘 해라' 하는 조언을 좀 더 새겨야 하는 우리라고 생각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건 사실 불가능하고,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후회를 할 땐 정말 알차고 정확하게 해서, 다음엔 좀 더 나은 우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후회의 방법이 아닐까?
후회를 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차선의 삶을 살고 있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지, 온전히 최선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야. 늘 차선으로 살고 있는 한, 후회는 늘 우리와 함께 할 테니 말이야.
부디 너의 삶엔 건강한 후회가 가득하길
너의 후회엔 아프지 않은 자책이 함께하길
그 후회의 끝엔 행복한 네가 있길.
p.s. 어느덧 열 번째 편지를 적게 되었네, 내 편지들이 네가 행복에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내 감정들에 느꼈던 감상을 네가 읽고, 너의 감정들을 잘 보살피고 정리해서, 더 행복한 네가 되었으면 해. 주위에 행복한 사람이 가득하면 나도 좀 더 행복해질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