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J야 너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떤 친구보다 오래 함께 했기에 누구보다 가장 친한 친구인지, 가족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어색한 사이인지, 이젠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이인지 말이야. 내가 아는 가족의 형태도 정말 다양하네. 어떤 가족의 모습이 좋고, 나쁜지는 감히 판단할 수 없지만, 넌 어떤 가족과 함께 살아왔는지, 또 살아갈 건지 궁금하다.
어젠 근처 학원가로 달리기를 하는데, 엄마는 학원이 끝난 고등학생 딸아이의 가방을 앞으로 매고, 앳된 얼굴을 한 딸은 그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하고 있더라. 늘 스쳐가는 장면이었는데, 문득 비 오는 날 학원에서 기다리던 날 차를 타고 데리러 오던 아빠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린이집이 끝나고 선생님들과 놀고 있던 나를 데리러 왔던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더라. 친구나 선생님 같은 타인들 속에 있다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얼굴은,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반가운 얼굴이었던 것 같네.
그렇게 한 10분을 집에 가는 길은 아빠 차의 에어컨 바람에 다 젖어버린 옷과 발가락이 시원하게 마르고, 집에선 하지 못했던 진지한 얘기들을 사뭇 꺼내게 되더라. 아빤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찾아서 열심히 해라, 아니면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하고 무뚝뚝하게 얘기하시곤, 나의 성적에 대해선 캐묻지 않으셨어. 그래서 아빠에겐 속 편하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시원하게 마른 발가락과 오래 맡으면 멀미가 나는 레몬향 방향제 냄새, 그때 나누던 사뭇 진지한 이야기들은 한 장의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
엄마의 회사가 좀 늦게 끝난 날이면, 비슷한 이유로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놀면서 기다리곤 했어. 하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여기저기 불이 꺼진 어린이집은 조금은 고요했고, 조금은 외로웠던 것 같아. 이제는 좀 무서워졌을 때쯤 만난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는 어렸던 나의 세상을 환하게 밝혀줬어. 너무 늦게 날 데리러 온 날은 눈물도 조금 흘렸지만 말이야. 키가 엄마의 허리께에 조금 못 미치던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한 손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초코 아이스크림을 들고, 온 입에 초코를 묻히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다 떠들어 댔어. 어린이집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으니, 내가 사는 세상을 몽땅 다 엄마에게 앵알앵알 떠들어댔던 거지. 엄마는 한 번도 지루한 기색 없이 내 이야길 들어주고는, 집에 들어가 온몸을 빡빡 씻기고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한가득 차려다 주셨어.
이게 내가 추억하는 어린 시절의 가족이야. 몰래 피시방에 다니다 걸려서 종아리를 호되게 맞은 적도, 대들다가 집 밖으로 쫓겨난 기억들도 물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는 건 이런 좋은 기억들 뿐이네(몰래 피시방에 다니고, 부모님께 대들었으니 맞을 만도, 쫓겨날 만도 하잖아?).
그런데 스스로 '아 이젠 나도 다 큰 어른이다! 소주도 먹고! 피시방에서 밤도 새니깐 말이지!'하고 생각하던 언젠가부턴,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빠와 사뭇 진지한 얘기를 속 편하게 했던 기억도 잘 나지 않아. 누구보다 친한 친구였고, 누구보다 조건 없이 날 이해해 줄 가족들과 더욱 오래 봤으니 더욱 편해져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마음을 표현하기도, 진심이 담긴 말을 하기도 힘들어지네. 무튼 나에게 가족이란 이런 존재야. 누구보다 친하고 편한 사이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미안함이 커지는, 그래서 전처럼 어린아이 같을 수 없는 관계인 거지.
아 참, 나에겐 8살이나 어린 막냇동생이 있는데, 이 녀석 얘기를 까먹을뻔했다. 말도 참 안 듣고, 형아 형아 하며 쫓아다니던 태권도복 입은 사과 머리의 동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내겐 8살 어리고, 챙겨주고 싶은, 여전히 귀여운 나의 친구야. 이젠 키가 다 자랐으니 같이 달리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은데, 동생의 취미는 자동차 옵션처럼 마음대로 더하고 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지. 그래도 대한민국을 사는 17세 중에 가장 아끼는 사람이야.
그럼 너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정말 친구 같은 사이일지, 어색한 사이인지, 서로 기댈 수 있는 사이인지, 그렇지 못한지 궁금하다. 때론 가족이 너무 미울 때가 있을 텐데,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내 엄마가 되어보는 건 처음이고, 아빠도 내 아빠가 되어보기는 처음이니까 말이야. 나 또한 부모님의 아들이길 처음이고, 막내동생의 형이 되어보긴 처음이니까 말이야.
가족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들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삶에 행복이 가득했으면 해.
평생 함께해야 할 가족과의 여정에 행복만 가득하길 바랄 순 없지만, 슬픔은 좀 덜하고, 행복은 좀 더한 여정이길 바라.
또 이 편지를 마저 다 읽으면, 가족에게 네 진심을 전해봤으면 좋겠다. 말이 되었든, 행동이 되었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