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꼭 해야 할까

by 구육오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연애 이야기,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을 하고 있건, 하고 있지 않건 사랑 이야기는 늘 재미있고, 아프면 아플수록,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흥미롭게 느껴진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늘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도 '끝난 사랑 이야기'는 사랑과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그들을 볼 때 느낀 그들의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싫어하면서 좋아한다." 물론 "그들"에는 나도 포함된다.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그 반응은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고, 이야기 속 주인공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과거 기억과 대조하며 상상하거나, 너무 싫다고 욕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고 싶어 하는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정말 싫기만 했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피하려 하고, 꺼내지 않았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싫어만 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문 것 같다. 심지어 글이나 이야기의 주제가 사랑이나 연애이기만 해도 주목을 끄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글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건 사람들은 그만큼 사랑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냥 '사랑'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보고 듣는 사랑 이야기, 정확하게는 '끝난 사랑 이야기'가 진행되는 패턴 중 하나는 이렇다.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생기고, 만나서 뜸을 들인다. 이야기하기 좋은 공간에 가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보통 담담하게 시작한다. 듣는 사람은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을 쉬기도, 감탄을 내뱉기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진실의 미간'같은 표정을 짓기도, 욕을 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는 자리라면 눈물이 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듣는 이의 '그랬구나, 나는 너를 이해한다.'와 같은 마음이 담긴 듯한 토닥임도 볼 수 있다. 그 토닥임은 마치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묵묵히 들어주기도 하고, 위로의 말들을 해주거나, 이야기 속 누군가를 비판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끔은 원래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나온 사람보다 더 힘든 표정을 짓거나, 이야기를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시간이 몇 십분, 몇 시간 정도 지나고 집에 갈 때가 되면, 무언가 담담한 표정이 되거나 후련한 표정이 되기도, 아예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나쁘다거나, 너무 뻔해서 싫다거나,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내 대화 패턴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시간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다. 나는 연애가 하고 싶지 않다는 지금 내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다. 나는 지금 연애가 하고 싶지 않다. 위에 써둔 그런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이 연애를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남들은 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랑 이야기"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니까. 다만 지금의 나는 그런 절절하고 흥미로운 사랑이 하고 싶지 않다. 뭔가 그 연애의 메커니즘에 질려버렸다. 지금의 나는 연애의 장점을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의 장점이 연애의 단점을 다 커버할 수 없는 것 같다. 연애를 하면서 얻는 스트레스는 당연하게도 연애를 시작하면서 생겨난다. 연애를 안 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된다. 이것만 해도 나에겐 작지 않은 이유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 좋지만, 애초에 그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연애라는 행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꼭 연애를 해야 할까? 스트레스가 0에 수렴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삶을 살면 당연히 스트레스는 생길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면 된다. 솔직히 시간만 지나도 풀린다. 난 그런 당연한 스트레스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커다란 어려움이나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친구들과 나름의 수단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연애는 스트레스를 추가로 받고, 그 추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추가적 행동을 동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 추가적 행동에서 오는 행복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스트레스를 애초에 안 받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당연히 연애는 행복하려고, 좋으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좋기만 할 수는 없다. 나는 연애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큰 행복보다 연애를 할 때 찾아오게 될 스트레스와 피로, 고민 등을 얻지 않는 것이 내 행복에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지금은 없고, 그렇다고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연애를 시작하면 신경 쓸 사람, 그것도 꽤나 많이 신경 쓸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 물론 가족, 친구, 연애, 직장, 결혼, 육아 등 다양한 관계를 가지게 되면 당연하게 해야 할 일 중 하나임을 알고 있다. 만약 '그렇게 다른 사람 신경 쓰는 게 싫냐?'라고 묻는다면, 오히려 나는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고 고민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로 인해 타인이 행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을 느낀다. 다만 내가 겪어본 관계 중에서는 오직 연애만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이나 육아는 물론 연애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아직 겪어보지 않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연애는 하기 싫어도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연애라는 관계 자체에도 뭔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우리는 연인!" 하고 나면 갑자기 서로를 1순위, 심지어는 0순위로 생각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음은 물론, 별것도 아닌 것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에서 설명한 "사랑 이야기"의 단골 주제가 되는 것들을 겪게 된다. 물론 반대로 별것도 아닌 것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음을 알고 있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감동, 따뜻함, 특별함, 그런 것을 특별히 추가적으로 느끼지 않아도 나는 이미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한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려서 고민이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나의 상태와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지금 내 감정의 그래프에는 커다란 기복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래프가 높은 날도, 낮은 날도 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 그 그래프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삶만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고, 가끔 찾아오는 불행은 잘 넘기면 그만이다.

반면 연애를 한다는 것은 내 감정 그래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그래프도 신경 쓰게 만드는 것 같다. 상대의 그래프는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연애의 아름다운 점이 만약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내가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진다. 만약 정말 그것이 연애의 아름다운 점 중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라면, 지금의 나는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살릴 수 없는 사람이고,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누구인지 모를 상대와 나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 기준이 만약 그것이라면, 그 기준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상대의 그래프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나의 그래프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상처를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낫다. 물론 상처를 받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굳이 둘 중에 고르자면 상대 때문에 받은 상처나 스트레스를 내 스스로 나아지게 하는 것은 그나마 할만한 일이다. 나는 나로 인해 상처받거나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싫다. 겁이 많은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 감정은 정말 겪고 싶지 않다. 내가 상처를 준 상황이라 하더라도, 상처받은 모습을 보면서 나도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자기가 상처 줘놓고 왜 그래?'라고 한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그냥 성격이 그런 것을.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로 인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의 주된 목적이 상처 덜 주면서 만나기가 아닌 것도 알고, 나도 나 때문에 누군가가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꼭 연애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생각이나 고민이 많아서 겁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생각과 고민이 많아서 생기는 장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점은 꽤나 크게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나는 그런 내 성격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겁이 많다. 내 마음을 100% 준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 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나는 '나'만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것이 가능한, 혹은 그 이상이 가능한 상황이 결혼이나 육아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를 나만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다만 만약 미래에 나와 만난 누군가가 "왜 나를 너만큼 사랑하지 않아?"라고 한다면, 그건 좀 무서울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에게도 질투를 느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뭐 '왜 넌 항상 네 생각만 해?, 왜 항상 네가 먼저야?'라는 의도로 말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도가 어찌 되었건, 아직까지는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해명은 하지 않겠다.

어쨌든 나는 결혼은 하고 싶다. 연애의 최종 목표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려면 연애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연애를 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모든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만남이 지속된 이후에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혼은 나에게 안정감, 편안함, 책임감 등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좋은 일만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나는 만약 필요하다면 내 가족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 끝에 사랑하는 내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결혼을 하려면 연애를 해야 할 것이다. 참 문제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연애는 하기 싫다. 내 주변에는 이미 이 글에 나온 내용을 말로 들은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반응 중 하나는 "아직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하면 지금까지의 연애와 또 다른 연애를 하게 될 것이다."이다. 물론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다를 것 같다. 만약 다시 연애를 한다면 높은 확률로 이전과 다른 연애를 경험하게 될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정말 아니길 바라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내 연애니까 내가 가장 아니길 바란다. 만약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또 똑같다면 아마 나는 지금보다 연애가 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질려버릴 것 같다. 심지어 알면서 했는데 또 그랬다? 진짜 싫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어찌 보면 나는 사실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SNS에서 본 글 중에 "살기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살기 싫은 거겠지"라는 글이 있었는데, 나도 사실 그런 상태인 건 아닐까? 누구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생기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연애를 시작할 때, 아니 만나기도 전부터 이것저것 잰다고 생각한다. 또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또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서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까. 또 아프기 싫으니까.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의 사랑, 혹은 첫사랑 등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재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랑했던 시절, 그 사람, 혹은 그 시절의 자신을 사랑하거나 추억하거나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렬히 사랑하고 아팠던 그 시절이 아름답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 겁을 먹어버린 자신,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자신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아닐까?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같은 아픔을 또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합쳐져서 누군가를 만날 때 이것저것 묻고 재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고, '내가 속물이 된 건가?',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재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고민하게 되어버린 애매한 어른이 된, 아니 그냥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아프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어딘가에도 여전히 순수함은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애도, 어른도, 애어른도, 아프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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