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왔다. 어이쿠!”
쿵! 묵직한 것을 마룻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화물 택배로 보내신 먹거리였다. 내 어린 시절엔 지금처럼 문 앞까지 배송하는 택배가 흔하지 않았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딱지가 편지함에 도착하면 직접 화물 터미널까지 가서 찾아와야 했다. 옆구리에 뜻 모를 푸르스름한 한자가 도장 찍혀 있는, 아버지가 굵은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어깨에 짊어지고 온 커다란 쌀 포장용 갈색 포대. 그 안에서 고소한 콩고물을 묻힌 갈색 물렁 엿이며 뽀얀 분이 묻어 수줍은 호두 말이 곶감, 달콤한 조청이 가득 담긴 하얀 단지들, 반짝반짝 윤이 나는 팥, 콩, 수수며 둥글고 점잖은 늙은 호박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난 아버지가 먹거리들을 마루에 꺼내 놓는 몸짓을 눈으로 따르며 앉아 기다렸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알밤이었다. 시골 할머니의 뒷산에서 주운 알밤. 해마다 10월이 되면 기다려지는 작고 동글동글한 다디단 토종 알밤. 아버지는 마룻널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먹거리를 늘어놓으며 짐짓 나를 애태우다가 할머니가 금빛 보자기에 따로 싸놓은 알밤 꾸러미를 내어 놓았다. 덥석 보자기를 잡으니 무게가 상당했다. 할머니는 알밤이 익는 철이면 매일 가파른 뒷산을 올랐다. 손녀에게 알밤 맛을 보여 주려고. 할머니가 꼼꼼하게 묶어놓은 손잡이를 끄르려고 엄마가 손을 보태며 말했다. “천천히. 그러다 다칠라.” 어느새 과일 깎는 작은 칼과 쟁반을 가지고 온 엄마는 그 자리에 앉아 알밤을 깠다. 오도카니 앉아서 입만 벌리면 엄마는 황금빛 알밤을 한 개씩 내 입에 넣어 주었다. “힘들게 터미널에서 택배 찾아온 사람한테도 하나 주지!” 하고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지으시면 “잠깐만요. 거기 일단 곶감이나 하나 드시고 계세요.” 하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계속 알밤을 까고 난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렸다.
생밤도 맛있지만 밤은 역시 군밤이다. 어렸을 땐 마루에 아버지가 설치한 연탄난로에 구웠었는데 이젠 전기로 작동하는 에어 프라이어에 굽는다. 아버지가 목장갑을 끼고 철망을 흔들어가며 구워 껍질에서 알밤만 쏙 꺼내주면 난 입만 벌렸었는데 이젠 내가 목장갑을 끼고 껍질에서 알밤을 꺼낸다. 꺼낸 알밤은 같이 사는 두 사람 입으로 직행한다. 김치냉장고에서 알밤을 꺼내 칼집을 내어 구울 준비를 하면 둘 사이에 묘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남편은 뜬금없이 커피를 타다 주고 아들은 내 앞에 태블릿을 갖다 놓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준다. 알밤이 누구 입에 더 들어갔나가 마치 사랑의 척도가 된다는 듯 둘은 은밀하게 몹시 신경을 쓴다. 내가 사랑받는 계절. 다디단 알밤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