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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7. 2023

막대기를 찾아 들고 계속 갑니다

  스페이스 바가 있으면 스페이스 바를 누른다. 스페이스 바가 있다. 찰싹 달라붙은 문장과 숫자를 의도에 맞게 떨어뜨려 준다. 그게 얼마만큼의 공간인지 누르는 사람도 모르고 스페이스 바도 모른다. 

  ‘수풀 속의 호랑이’라는 문장에 가해진 스페이스 바의 힘을 생각해 본다. 작은 힘으로 자연과 야수, 현상과 본능이 생겨났다.

  지난 인생이 책상에 쓰러져 뜨거운 이마로 스페이스 바를 계속 누른 시간처럼 느껴진다. 무의미한 공간만 계속 이어지는 하얗고 뻔뻔한 우주. 뜨거운 여름이었고 침침한 교실이다. 창밖의 빛이 지나치게 밝았기 때문에 교실은 어두웠다. 커튼이 넘실거리자, 선생님은 그것 좀 묶어두라고 말한다. 거기에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라는 내가 있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들을 황망히 바라보면서.

  작문 시간엔 할 말을 다 썼는데, 남아있는 빈칸이 겸연쩍어서 억지로 말을 지어냈다. 톡 건드리면 작게 웃는 네가 있고 단정한 뒤통수가 나란한 세계. 질문이 가득한 책이 펼쳐져 있다. 선생님은 다들 집중하라고 흥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발표를 위해 앞으로 나간 사람이 증명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다는 듯 빈 노트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조용한 교실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이 책상 아래로 사라진다.

  막대기를 들고 있던 시절의 나는 나뭇가지처럼 얇은 팔로 막대기를 붕붕 휘둘렀다.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서 별을 자주 그렸는데, 별은 오망성을 한 획으로 긋는 것이 그리기 쉬웠다. 삭막한 우주였다. 공원에 깃든 악이라도 쫓으려는지 오망성을 계속 그리다 보면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별과 별의 사이는 생각보다 멀다. 그래서 막대기를 수풀에 감춰두고 돌아갔다가 다른 날 찾으면 막대기는 없다.

  스페이스 바를 누를 때마다 멀어지는 두 사물을 상정해 본다. 몇 번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두 사물은 상관없는 두 사물이 될까. 그것은 스페이스 바와 상관없다. 상관없는 두 사물을 두 사물로 놔둔 채 내가 아직 교실에 서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을 닫고 학교를 나선다.

  지긋한 힘이 두부를 만드는 것처럼 내 엄지는 스페이스 바 위에 있다. 약간의 힘만 주면 스페이스 바가 눌린다. 나는 공백과 망설임이 모두 내 선택이었음을 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서 무언가 가득 채우려 한다면 그곳이 얼마나 가득 채워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바퀴 달린 들것은 통제를 잃고 내리막으로 굴러간다. 망각을 가득 집어먹고 쓰러진 나를 싣고서.

  현대의 표기법과 한글 맞춤법은 띄어쓰기를 기본으로 한다. 띄어쓰기는 생각보다 어려워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기 망설여진다. 그 거대한 오류와 공백을 내버려 두고 계속 어디론가 가는 내가 있다. 중력이 기억을 누르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끼면서. 그것이 두렵다.

  막대기. 어제 내가 수풀에 숨긴 막대기가 다른 아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모래에 아름답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라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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