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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ug 28. 2023

절망은 간판처럼 불이 들어온다

  팔을 아무리 걷어붙여도 어깨까지 잠그면 젖는다.

  얼어붙은 땅에 온다면, 무슨 목적이 있어 땅을 파헤쳐야 한다면 땅의 주인인 억센 뿌리들과 싸워야 한다. 그걸 절망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대학의 강의실, 어떤 시인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면 계속 시를 쓰겠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사실 저는요, 절망도 잘 못 쓰거든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를 왜 읽는 걸까? 시엔 무엇이 있나, 무엇이 남았나.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는 시가 있고 느낌이 오지만 내부까지 안내받지 못하는 시도 있다. 시에는 절망이 있다. 기어코 절망을 찾아내서 입에 넣고 쓰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이 없는 사람도 있나? 절망이 없는 사람을 찾으려고 시집을 들면 반드시 후회한다. 정말이지 절망절망절망 거리지만, 절망은 사소하고 아주 작은 절망도 절망이라고 할 수 있어서 사장님, 이것도 절망인가요?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절망 전당포 같다. 

  온라인 게임을 해보면 마을 근처에 출몰하는 도적을 열 명이나 죽여달라는 주민이 있고 열한 명을 죽이든 열두 명을 죽이든 상관없지만, 아홉 명을 죽이고 돌아가면 안 된다고 한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기왕 한 명을 죽였으면 끝까지 죽여야 하는 세계. 반짝이는 상자에서 절망의 망치라는 이름의 무기가 나오면 누가 절망이 붙은 물건을 사겠어, 대형마트에서 절망의 아보카도, 절망의 수세미, 절망의 요술 공주 미미를 팔면 좋겠어? 이건 정말 절망이야. 슬프지만, 절망의 성능은 좋았다.

  내가 연극배우라면 오늘 객석에 절망은 오지 않았나, 확인할 것 같다. 절망 없는 이야기는 도무지 듣고 있기 힘들다. 절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망을 손쉽게 다룬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창문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시를 읽을 때 하나의 절망을 찾아낸다면 절망, 너 거기 있었구나! 알은 채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절망이 날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절망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완성할 수 없는 절망 대백과 편집위원회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나도 절망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지금은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은 상황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절망에 발을 들이지도 않는다. 절망을 싫어하는 방법을 모를 뿐.

  나는 그냥 삶을 말할 뿐인데 절망이 맨날 온다. 절망은 내 얘기를 좋아하나?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 따위의 질문은 진절머리가 난다. 동토의 억센 뿌리를 뽑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이건 사람 불러야 해, 말도 해보며 도시락이나 까먹고 돌아가고 싶다. 절망의 뿌리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삶에 대해 말할 뿐. 거기에 절망은 억센 뿌리를 내린다.

  절망을 알아내려면 누구보다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 절망은 온다. 온다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는 입만 열면 세상의 멸망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선량한 세상에 좋은 마음들이 가득하다고 믿으면서 그곳에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는 절망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절망을 휘둘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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