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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Dec 19. 2023

너의 슬픔은 우물만큼의 깊이

  “너의 슬픔은 우물만큼의 깊이. 나는 오늘 한 동이 눈물 퍼내고.”

  나는 어느 새벽 노트에 적어놓은 문장을 열거했지. 너는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이 문장을 넣어 시를 썼을 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늘 우물 정자가 궁금했다. 어떤 자동 응답은 샵 버튼을 눌러달라고 하고 때로 우물 정자를 눌러달라고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물 정자를 제치고 샵 버튼을 누르라는 요청이 늘어나는 것 같다. 한자 사용이 줄어들기 때문일까. 이때 누르라는 버튼은 샤프가 아니다. 샤프는 악보에 쓰이는 것이고 여기에 쓰이는 문자는 해시다. 해시태그에 쓰이는 그것이다. 해시는 입력을 마무리하는 데 쓰인다. 번호를 누르고 마지막으로 해시를 누르는 것은 입력을 마쳤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과거엔 이런 문자표에 익숙지 않았고 해시태그 또한 없었기에 비슷한 모양의 우물 정자와 샤프를 이용해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누르라는 우물 정자가 해시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 한쪽 구석의 버튼은 나에게 있어 늘 우물 정자였다. 우물 정자는 우물을 위에서 본 모습이다. 나는 우물을 본 기억이 없다. 영화에 나온 우물은 많이 봤다. 그건 항상 돌을 쌓아 만든 둥근 우물이었다. 우물가에서 활기찬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주고받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숨는 장소였다. 우물 뚜껑을 열어 두레박을 내려보지만, 올라오는 것은 매캐한 흙덩이뿐인 것으로 황량한 폐허를 설명하는 장면도 있었다.

  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전화를 끊었다. 음성사서함이라는 건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서비스겠지, 통화료는 얼마나 부과되는 걸까. 1억이라는 돈도 아닐 텐데. 너의 슬픔에 우물 정자를 눌러주고 싶었다. 반복되는 자동 응답 메시지처럼 자주 읽어도 괜찮은 문장을 쓰고 싶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였습니다. 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었습니다.”

  노트에 이어 적었다. 그리고 불평했다. 어디서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쓰다 보면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지도 않는 장면이 계속 이어져서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고. 다른 불평도 했다. 끝나버리면, 정말 길 따라 쭉 가버리면 서운하고 불안할 것 같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처럼 역시 무대가 끝나고 객석에 남는 건 쓸쓸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우물에서 한 남자가 기어 나와 인생을 완전히 낭비했군! 하고 말한다 해도 그를 대신해 설명할 자신도 없고. 우물에서 도대체 뭐 하고 계셨던 겁니까? 물어본들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물고기를 낚을 때마다 1cm씩 커지는 낚시터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신이 났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가본 적 없는 음성사서함을 생각하다가 우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물 뚜껑을 봤을 때 상수원의 오염을 방지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우물에서 무언가 올라올까 봐 덮어둔다고 착각했다. 생각하다가 음성사서함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은 밥에 국을 부어 훌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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