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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Feb 17. 2024

개오바 연습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익숙했는데, 이제 마스크 쓰지 않는 일에 또 익숙해져야 한다. 일상의 회복이라는데, 아직 나는 기침하는 사람이 무섭다.

  아직 병원 같은 곳에 갈 땐 마스크를 챙겨야 한다. 혼란을 지나오면서 다들 조금씩 병든 것 같다. 가정에 남은 마스크가 잔뜩 있고 손 세정제가 아직 현관에 있다. 열이 나면 걱정부터 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 일상으로 돌아갑시다, 누가 말해서 거리로 나왔지만 다들 겁먹은 표정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 나오는 주인공 아서 플랙은 웃는 병이 있다. 발작적인 웃음이 나올 때 그는 희귀한 병을 지녔다는 사실이 적힌 명함을 내민다. 고담이라는 가상의 도시는 양극화 문제, 거리를 지배한 쥐 문제, 치안 문제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따라서 모두가 병들었고 아프다. “모두 소리치고 예의라곤 없다.”는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영화가 슬픈 점은 자신이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인물이 주인공 아서 플랙 혼자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어디서 들었고 누구에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만 어두운 공간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상상도 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자, 그의 상사가 얼마나 시간을 주면 회복하겠나? 묻는 것이다. 그 사람은 여러 생각을 거쳐 반나절 정도를 말한다. 그 사람은 삼십 분 정도 휴식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도약은 그 사람이 십오 년 정도 쉬는 일이다. 물론 말은 백오십 년 정도 말해본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해내야지, 아직은 너무 이르지, 그런 말을 다 뛰어넘어 그 사람을 걱정 없이 십오 년이나 쉬게 하고 싶다.

  그러니까 결국 개오바 연습. 옆자리에서 케이크를 먹던 사람이 너무 맛있어서 건물을 부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가 미안하다고 할 때 진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회사를 십오 년이나 쉬는 남자처럼 아픈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슬픈 사람들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지 않고 슬펐으면 좋겠다. 지친 사람들이 지금 지쳤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것쯤 두 살 난 우리 조카도 안다. 조카는 슬플 때 울어버린다.

  십오 년 쉰다던 사람이 어느 날 웃는 얼굴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영영 사라져 어디선가 행복하다고 해도 좋겠다. 나는 좋은 일을 상상한다. 나는 좋은 일을 상상하면서 운다.

  누군가에게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도 죽을 것 같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그 모든 일이 연습에 불과하다면 마침내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십오 년만 사랑하려고 했던 것을 평생 사랑한 사람처럼, 일이 그렇게 될 줄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울라는 말보다 울지 말라는 말은 곧 잘 사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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