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올인 세계관에 놓인 사과 봉인해제
이번 설 명절부터 삼일절 연휴까지 macOS 생태계에 발을 들인 월간입니다. 지난 반년 간의 자바 웹개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기다리는 3월 수업에 앞선 마음가짐의 준비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육할인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기존에 쓰던 삼성 노트북은 CPU와 램사양, 메모리용량이 부족하다는 말도 차지 않을 만큼 DB를 연결하고 각종 환경에서 빌드하는 게 기적이었습니다.
Eclipse 프로세스만 실행하면 작업관리자에 CPU 100%, 메모리 90% 점유율을 보이며 모니터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순간이 반복되었습니다.(제 PC가 성능에 맞는 용도로 쓰지 않는 호스트를 잘못 만나서 유감입니다.)
마침 램값의 폭등 소식이 들리고 신제품 출시 전 막차라는 말도 떠돌더군요. 맥북 에어 M4를 제 용도에 맞는 옵션으로 구입했습니다. 요즘 유행 중인 패닉바잉을 하고 말았습니다. 랩탑을 사면서 제일 먼저 고민한 건 케이스였습니다. 투명한 걸로 골라 '정서불안 김햄찌' 스티커를 붙일 자리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휴대폰부터 손목 위에서 알람을 울리는 워치, 출퇴근 시간에 귀를 맡기는 이어폰과 태블릿, 노트북 등 모든 자리에 삼성 기기를 두었던 제가 맥북을 "왜 샀는지", "어떻게 쓸 건지", "언제부터 썼는지"에 대해 한 달 사용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하루에 스마트폰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손이 가는 기기는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해방감을 느낀 건 환경변수 설정이었습니다. 윈도우에서 시스템 제어판을 열고, 고급 탭을 찾아 환경변수 창을 띄워 설치파일 경로를 지정해야 가능했던 일련의 과정이 맥 OS로 오면서 터미널에서 한 줄로 정리되었습니다.
관리자 권한 팝업으로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붙여 넣는 것도, Docker 컨테이너 세팅부터 실행까지 버벅거리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시대의 문법을 읽어보고자 팀 프로젝트 디버깅과 리팩터링을 할 때 github code AI Agent를 활용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팀원이 3명이 돼...)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 있었습니다. 서랍 속에 포맷 후 마지막 충전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아이패드와의 생산성 있는 작업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뜻밖에 제가 가진 버전부터 Sidecar 기능 지원이 되어 맥북과 연결하여 듀얼 모니터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진정한 럭키비키 아닐까요)
손이 기억하는 습관은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스크롤 방향이 반대로 움직이고, 드래그를 할 때 끌어서 왔다 갔다 조정하는 게 아니라 세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더군요. 제가 컴퓨터에 맞추기에 들여온 시간이 너무 길기에 마우스 옵션, 버튼, 키, 감도를 전부 윈도우 노트북 기준으로 돌려놓고, command ·ctrl 키의 역할을 뒤바꾸었습니다.
텅 빈 바탕화면에 작업표시줄이 아닌 메뉴바 구조가 낯설었습니다. 결국 리셋된 개발환경부터 다시 구축하고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바로가기로 만들었습니다. 바뀐 상황에 적응하는데 드는 노력을 최소화하여 지금하고 있는 작업에 집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C포트만 있고 USB-A포트의 부재는 아직 불편합니다. 허브/번들을 가지고 다니지만 잃어버리기 딱 좋은 만큼 정해진 위치에 약속처럼 보관해야 할 듯합니다.
ms word를 대체하는 pages라는 문서작업 프로그램은 다행히 google docs와 기능적으로 호환이 잘 되어 익숙해질 때까지 잘 활용하면 되겠습니다. 안드로이드 폰과의 연동을 위해 google drive가 없으면 안 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삼성 올인을 외치던 저는 맥북을 질렀고, 녹차를 아주 약간 싫어하던 제가 장안의 화제, 말차라떼에도 성급하게 빠졌습니다. 그런 걸 보면 영원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나 봅니다.
생각보다 많은 게 바뀌었고, 생각보다 많은 게 그대로였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맞추나요, 아니면 환경을 스스로에게 맞추나요?
여담으로 5월 중순에는 회사 동료 클로버님 덕분에 함께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RUN 행사(https://upluslegolandrun.com/)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벚꽃이 질 무렵 4월의 중간고사 후기와 늦봄 5월의 러닝 에피소드를 들고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쉰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 있다면 참고해 보고 싶었다. 비워야지 채울 수 있다. 어느날 벼락같이 한 중국 드라마에 빠졌고 조금 살 맛이 났다. 내 속도대로 버틴 자신이 대견했다. 이것은 살기 위해 쉬어가는 이야기다.
과부하로 죽을 것 같을 때 더 힘든 일을 하면서 다른 저부하 프로그램을 강제종료시키는 '초집중 상태'로 버텨왔는데 그것도 이제 한계인 것 같다. 눈물도 안나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안든다. 지금 내가 원하고, 원한다고 생각하고, 나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현재 상태가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민음사 편집부, 한편 14호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