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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어딘가에서 울린 폭발음

by 태연

어젯밤, 잠들기 직전의 아주 얇은 경계 위에서, 내 몸은 천천히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마음은 무심히 하루를 접어 바람에 띄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한 조각의 감정이 마치 젖은 숲을 가르는 번개처럼 지나갔다. 너무 짧아서 붙잡을 수 없었고 너무 커서 피할 수도 없었다.

그 울림은 크고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리고 그 안엔 무언가 오래된 것이 있었다. 말로 하자면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건 감정이 아니라


내 영혼의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이름 없는, 말 없는 진동

이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일상 속에서 느끼던 두려움과는 결이 다르게, 숨결이 다르게, 다가왔다. 누군가을 잃을까 봐, 무언가를 실패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의 종류와는 달랐다. 그것은 빛 자체에 대한 거부였다.

‘빛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

빛이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나는 저항할 수 없는 어떤 본능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너무 선명하게 바라볼까 봐, 너무 많은 눈이 나를 해석하고, 기대하고, 말할까 봐, 나는 그 무게에 깔려 조용히 부서질까 봐 두려웠다. 나를 이야기하는 세계에 내가 놓여졌을 때, 내가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투명한 무게감, 그 감정은 예고 없이, 불꽃처럼 터져 나왔다.

너무나 고요했지만 내 영혼의 깊은 층을 단숨에 꿰뚫고 지나간, 무언의 파열음이었다.


나는 세상에 나를 건네고 싶었다.

내 목소리와 나의 감각을 나누며, 내 안에 맺힌 작은 별빛 조각들을 사람들의 삶 한구석에 조용히 놓아주고 싶었다. 아주 작더라도, 선명하게.

하지만 동시에, 나는 유명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 피부가 타인의 시선에 물들까 봐, 내 감정이 낯선 이름표를 달게 될까 봐, 내 진심이 누군가의 입김 속에서 가볍게 소모되어버릴까 봐.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아닌 얼굴을 입고 내가 아닌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무대 위의 나는 어쩌면 더 자유롭고 더 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디션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나는 마치 벗겨진 나무처럼 모든 껍질을 잃고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시선이 나를 가로지르는 순간,

나는 나의 중심에서 조금씩, 조용히 밀려났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은 서서히 투명해져 갔다.




나는 늘 뭔가를 꿈꾸며, 동시에 그 꿈으로부터 달아났다.

원하면서도 피했고, 나아가면서도 숨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짙은 안개를 가르며 한없이 흐려지는 선처럼 여겼다. 사실 나는 나를 지키고 있었던 거였다.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조용히.

어젯밤의 감정은 그 모든 모순을 하나의 진실로 엮어 보여주었다. 그건 단지 이 생에서만 길러진 감정이 아니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 다른 시간의 나, 혹은 어떤 영혼의 기억이 빛 앞에 다시 서려는 지금의 나를 조심스럽게 일깨우는 신호 같았다.

그것은 두려움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했다.

범접할 수 없는 진동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러나 너무도 선명하게 내 전신을 덮었고,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공허 속에서,
내 존재의 중심이

조용히, 그리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건 감정이 아니었다.
에너지였다.
그리고 기억이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 공포는 너무 익숙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함이었고,

너무, 너무 오래된 것이었다.

너무, 너무 오랫동안 응축되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빛이 아니라,

빛으로 인해 드러나게 될 진짜 나였다는 것을.

그 빛 속에서는 어떤 방어도, 어떤 가면도 통하지 않는다. 그 빛은 나를 투명하게 꿰뚫었고, 숨겨왔던 모든 틈을 드러내었고, 마지막 남은 무장마저 해제시킨다. 그러니, 나라는 껍질을 오래도록 간직해 온 존재에게 그 빛은 때로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파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낡고 마른 에너지들을 산산이 부수고, 내 영혼의 본래 진동을 복원하려고 터져 나온, 이름 없는 ‘파열’이었다. 마치 오래된 얼음이 서서히 금이 가듯, 그러나 동시에 핵폭발처럼 고요하고 강렬하게, 마음속 모든 차원의 세계를 뒤흔드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 파열음 너머에서, 바람처럼 스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길을 선택할 거라면, 준비는 되어 있니?"


"이번에는 너 자신을 잃지 않고, 끝까지 너로 남을 수 있겠니?"




그 질문은 경고가 아니라, 다정한 안내였다. 마치 아주 오래전, 나는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고 돌아온 적이 있었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영혼의 차원에서 나는 이미 그런 선택을 여러 번 해왔고, 이번 생에는, 그 모든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작은 파동처럼 내 안에 고요히 새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느낀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를 잃을 까봐 두려웠던 것임을. 내 말이 변질되고, 내 표정이 해석되고, 내 진심이 소비되는 그 과정에서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구였지?' 하고 되묻게 될까 봐,

그 불안이

나를 은밀하게, 그러나 견고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움이 미워지진 않았다. 오히려, 참 고맙다고 느껴졌다.

그 감정은 단 한 번도 나를 해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너무 빨리 달아나지 않도록,

너무 높이 올라가 휘청이지 않도록,

내 영혼의 걸음에 맞추어

숨을 고르게 만들어준 ‘호흡’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나는 그 두려움을 데리고 갈 것이다. 그 감정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해도 괜찮다.

나는 빛을 선택할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빛 앞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두려움은 나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림자는

내가 빛으로 향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신호였다.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빛나는 것과 투명해지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나는 나로 남을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비추고, 수많은 해석이 나를 지나가고, 예상치 못한 파장이 나를 흔든다 해도, 나는 언제나 나의 중심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내가 선택할 유일한 빛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두려움, 잘 있었다고.
너 덕분에 나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 너를 데리고 함께 걸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어젯밤의 작은 폭발은
사실 내 안의 어둠이 무너진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나를 감싸고 있던 오래된 장막이

서서히 찢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찢긴 틈으로

그때, 나에게 온 말들.


“이제 너는 준비가 되었어”
“빛은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
“그리고 너는 두려움조차 사랑할 수 있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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