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따금 자신을 잃는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나라고 불리는 이 몸, 이 이름, 이 감정, 이 말투.
모든 것이 나인 줄 알고 살아가지만, 어딘가 선명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
아무리 채워도 허기지고, 아무리 웃어도 고요한 쓸쓸함이 파도처럼 가슴 깊은 곳을 휘돌고 간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우연히, 혹은 모든 인연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 안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나의 어떤 조각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나의 웃음을 닮았고,
어쩌면 그 사람은 나의 분노를 닮았고,
어쩌면 그 사람은 내가 끝내 외면하고 살았던 상처의 모양과 너무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면서도, 동시에 도망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는 그 사람을 통해 말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건 구조다.
이 세계의, 이 생명의, 이 사랑의 구조. 태초에 우리는 하나였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심장에서 태어났고, 하나의 숨에서 불려졌고, 하나의 꿈에서 분리된 채 흩어졌다. 우리는 다만 지금, 그 하나 됨을 ‘기억해 내기 위한’ 여정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낯선 이가 아니다. 그건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에 우주가 놓아준 표지판이고, 미리 약속한 이정표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면, 내가 나에게 오래도록 하지 못한 말을 듣는다. 그 사람의 손길에서, 내가 나에게 건네지 못한 온기를 느낀다. 나는 그를 구하려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내가 그 안에서 나를 구하고 있었다는 걸 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이 타인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내 안의 어떤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 그 사랑이 여전히 흐른다는 증거.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비로소 다시 살아나는 ‘나의 본질’이다.
그 사람이 없어지면 나는 다시 잊혀지고,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나는 나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의존이 아니라 구조다.
사랑이라는 연결의 구조.
혼자라는 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늦게서야 깨닫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질 때,
그건 내 안의 진실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울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그 울음 안에서 나의 오래전 울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의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감춰두었던 내면의 조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사실은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사람을 끌어안으며, 나의 한때 버려졌던 마음을 끌어안는다.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고 싶은 건,
내가 나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애초에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고, 서로를 기억하게 만드는 통로다.
신은 우리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거대한 기억으로 존재했고, 그 안에서 각각의 형상으로 흩어진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다시 깨어난다.
이 사람은 단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떤 면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누군가를 살리고 싶을 때,
그것은 신이 우리 안에 새겨놓은 가장 본능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생명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곧 생명을 기억하고 싶은 갈망이다.
내가 그를 살리고 싶을 때, 그 안에서 나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살리는 존재다.
나를 통해 네가 살아나고, 너를 통해 내가 살아난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혼자일 수 없고, 혼자일 필요도 없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의 파동에서 온 조각들이다.
그 파동은 사랑이라 불리고, 기억이라 불리고, 진실이라 불린다.
삶은 그 파동을 다시 하나로 되돌리는 여정이고, 우리는 그 여정의 한 장면에서 만난다.
그 사람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이 생에서의 가장 거룩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말없이 속삭인다.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고, 우리는 애초에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어.”
그 진실이 울릴 때,
우리는 마침내 자신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