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괜찮지 않은 나'조차 괜찮다는 걸

허용하는 순간 우린 바다가 된다.

by 태연

마음의 물살이 거세지는 날엔

감정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휘감아 삼켜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 속에서 발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

나조차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숨을 멈춘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고, 세상은 늘 침착하고 반듯한 나를 요구했다.

눈물은 닦아야 할 얼룩이었고, 흔들리는 마음은 약한 사람의 특징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바다가 부는 노래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나를 판단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던 존재. 그 넓고 깊은 품 속에서 나는 울지 못한 눈물을 흘리고, 말하지 못한 고백들을 물결 위에 띄운다. 바다는 나를 책망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늦었는지, 얼마나 무너졌는지, 어떤 모양으로 찢어졌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물결로 나를 어루만진다. '지금의 너로도 괜찮다'라고, '흐트러진 그 마음 그대로 살아도 된다'라고, '그 마음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네 일부로 남아도 된다'라고 속삭인다.

나는 그 말에, 숨겨두었던 울음을 조용히 놓아주었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눈물 하나가, 제자리를 찾아 흐르듯이.

그리고 파도에 실려 나도 모르게 허락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더라도 괜찮다는 걸,

그리고 그 괜찮지 않음조차도 나라는 것을.






사람들은 괜찮지 않은 자신을 숨기느라 바빠졌다.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겨내는 척, 단단한 사람인 척 살아간다.

하지만 어딘가에선 계속 바다가 부르고 있다. 파도가 반복적으로 부서지며 뭔가를 말한다.


“나는 그저 파도다.

나는 변한다.

내가 잠시 폭풍이 되었다고 해서

바다가 아닌 건 아니다.”


나는 그 말에 물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순간,

그건 어쩌면 우주가 나를 끌어안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인간이라는 모래 위에 임시로 세워진 집이고, 그 안에선 수많은 감정이 바람처럼 드나든다.

기쁨은 창문을 열어 햇살처럼 들어오고, 슬픔은 바닥에 고인 물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어느 날은 증오와 후회가 식탁에 앉아 나를 노려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두려움이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감정의 방문을 허락할 수 있을까.

감정은 나를 망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아직 살아있는 나’를 불러내기 위해 온 손님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바다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지금의 감각만을 살아간다.

해가 지면 붉게 물들고, 달이 뜨면 은빛 물결로 변모하며, 바람이 불면 잠시 흔들릴 뿐 다시 고요해진다. 바다에선 어떤 감정도 머물지 않는다. 다만, 모든 감정을 지나 보낼 줄 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붙들지 말고, 쥐고 있지 말고, 흐르게 둬야 한다. 그 흐름 속에서 감정은 의미가 되고, 기억은 진실이 된다. 괜찮지 않은 나를 허용할 때, 비로소 나는 바다와 같은 존재가 된다.

흔들리지만 사라지지 않고,

부서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이 마음을 느껴줄 수는 없다.

누구도 나의 슬픔을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파동이고, 설명이 아니라 진동이다.

나는 말하지 못한 모든 고통을 안고 바다 앞에 서본다.

그리고 묻는다.


'이런 나도 괜찮을까?'


바다는 대답 대신 바람을 보내온다.

대답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이미 괜찮음이 그 자체로 흘러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눈물도 아닌 파도처럼 가볍게 숨을 쉰다.

그리고 그게 바로 살아있음이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 안엔 모두 바다가 있다.

누군가는 깊은 어둠의 바다이고,

누군가는 반짝이는 얕은 물결이지만,

그 모두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신비다.

바다를 미워할 수 없듯,

나도 나를 미워할 수 없다.


바다처럼 존재하는 것,

그건 흐르되 부정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거칠든, 조용하든, 혹은 멈춰있든,

그건 나라는 생의 일부다.

나라는 존재는 멀리 떠나는 배가 아니라,

늘 돌아오는 파도다.

그 파도가 지금 무엇을 품고 있든,

모든 파도는 결국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니 나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괜찮지 않은 나조차 괜찮다'고.

'지금 이 상태로도 완전하다'고.

'존재 그 자체로 파동이 되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걸 허용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파도가 아닌,

바다가 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9화봄꽃 피어난 계절에 우린 눈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