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계절이 무색할 만큼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계절은 구분되지 않는다. 봄의 따스함은 완전히 오지 않았고,
겨울의 찬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마치 세상은 어떤 감정을 머금은 채, 미처 끝맺지 못한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벚꽃 잎이 내려앉은 길 위에 눈꽃송이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꽃잎 위로, 또 다른 꽃이... 하지만 차가운, 사라지는 속도로 쌓이는 그 무언가가 포개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숨이 막혔다.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견디기 힘들 만큼, 어딘지 아픈 아름다움이었다.
'이 세상이 어쩌면 나와 함께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날을 두고 ‘이상한 날씨’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모순의 풍경 안에서 나를 보았다.
살아 있음과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
가슴 뛰는 일을 했고, 사람들은 말했다.
“너는 참 멋지게 살고 있어.”
“네가 가고 싶은 길에 닿았구나.”
“부럽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나를 더욱 조용한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성취의 순간에도, 빛나는 나날 속에서도, 나는 늘 같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여긴 어딜 까.'
그곳엔 환희보다 더 멀고, 닿을 수 없는 공허가 있었다. 빛은 강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라지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리를 채우는 법보다, 텅 비우는 법에 익숙한 존재. 그래서 어딘가에 도착하면 할수록, 나는 또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현실 속 선명한 그래픽이 깨졌다. 이미지가 흐트러지고 정신이 생소한 이질감에 휘청이던 그때, 나는 이 세계의 끝이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벽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내 마음의 어딘가에서 이미 부딪히고 있는 것. 모든 것들이 진짜라고 외칠 수록, 나는 점점 더 현실의 가장자리를 의심하게 됐다.
'왜 이렇게 답답해?'
'왜 이렇게 공기가 무거워?'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자꾸 사라지고 싶지?'
나는 나에게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존재의 무게 그 자체였다. 숨 쉬는 것도, 말하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모두 다 똑같이 버거운 순간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병이 아니라, 귀향의 신호라는 것을.
삶이라는 세계가 너무 작아졌고, 그 세계 안의 나라는 존재는 이제 이 껍질을 벗어나야만 하는 순간에 와 있었던 것이다. 사라지고 싶다는 건, 정확히 말하면 없어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진짜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그 갈망은, 벚꽃과 눈송이가 겹쳐지는 바로 그날, 조용히 내 안에서 터졌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현실은 하나의 층위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이 층위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 하지만 벗어나는 길은 언제나 안으로 향한다.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 천천히 잠겨드는 것. 그 안에는 끝이 아닌 시작, 무너짐이 아닌 깨어남이 있었다.
봄인데 눈이 왔다.
벚꽃이 피었는데, 그 위에 차가운 것들이 쌓였다. 그 풍경은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죽음과 삶, 허무와 희망, 소멸과 탄생은 사실 같은 숨결이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나는 이제 계절을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흐려지는 경계를 신뢰한다.
모든 것이 스며드는 방식.
이름 없는 감정들이 서로를 감싸며 피어나는 방식.
그 흐름 안에서 나는 살아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벚꽃 위에 눈이 내리는 이 풍경을,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이 마음을,
그리고 성공 이후의 허무를.
하지만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삶의 자리라고.
나는 여기 있다.
벚꽃이 피어난 이 계절에,
눈을 본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나를 알아본 사람으로서.
△
혹시 당신도,
벚꽃과 눈꽃이 겹쳐진 그 날의 마음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_
우리는 어쩌면,
같은 계절의 어딘가를 함께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