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혼은 다른 미션을 가지고 온다.

우리들의 모든 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by 태연

우리는 누구도 모르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파동은 하나같이 다르고 그 여정 또한 오직 그 존재만의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을 견디는 것이 전부였고, 누군가는 단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일이 삶의 전부였다. 어떤 이는 사랑을 떠나는 방식으로, 어떤 이는 홀로 남겨짐을 통해 이 생을 배워갔다. 그 모든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건 그 영혼이, 자신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택한 여정이었다. 이 글은 바로 그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글이다.


왜 나는 이 생을 선택했는가.
무엇을 통해 기억하려 했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쯤 깨어나고 있는가.


이것은 고통을 지나 기억으로 향하는 조용한 여정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직도 반복되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탓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자꾸 같은 상처만 겪게 되는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고통은 그치지 않는지. 그러나 그 모든 질문의 대답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기억을 부드럽게 건드리는 하나의 문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완전했고 완전하다. 삶의 고통도 미션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기억해내려 하고 있다. 이제 문이 열린다. 우리는 '겪는 삶’에서 ‘기억하는 삶’으로 옮겨갈 것이며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생은 그 무엇이든 그 자체로 뜻깊은 여생이라는 것을.



|영혼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각기 다르다.

모든 영혼은 다른 미션을 가지고 온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별, 같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영혼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완전한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는 용서를 체험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철저한 외로움을 통해 존재의 신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어떤 영혼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왔고, 어떤 영혼은 고통의 무게를 통과하며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빛을 깨닫기 위해 왔다. 그러므로 삶의 형태가 달라도 괜찮다. 각각의 삶은 절대 비교할 수 없다. 누군가는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이번 생의 전부일 수 있고, 누군가는 전 생애에 걸쳐 스스로의 길을 묻고 또 묻는 존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영혼이 어떤 진동을 선택하고 있는가이다.


|우리의 삶은 사건이 아니다. 진동이다

우리의 삶은 사건이 아니다. 진동이다. 이 진동은 ‘왜’ 그 삶을 살아가는지를 알려주는 보이지 않는 파장이다. 그리고 영혼은 바로 그 파장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통합한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 영혼은 이번 생에서 겪을 감정의 ‘진동 테마’를 선택한다. 버림받음을 통한 자기 수용, 상실을 통한 무조건적 사랑, 무력감을 통한 창조의 회복, 질병을 통한 존재의 성스러운 회복.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복되는 감정, 비슷한 상처, 멈추지 않는 패턴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같은 진동을 경험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번 생에서의 중심 코드이기 때문이다. 깨어나기 전에는 이 코드들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왜 나만 이런 일이 반복될까?', '왜 나는 늘 같은 상처만 받게 되는 걸까?', '왜 나는 열심히 해도 무너지는가?' 이런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혼란과 저항과 외면 속에 머문다. 그러나 깨어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아, 이것은 내가 선택한 감정이었구나.” “이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게 하기 위한 시나리오였구나.” 그렇게 우리는 삶을 ‘겪는 방식’에서 ‘창조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영혼의 미션은 고정된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진동이다.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진동의 핵심은 유지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버림받음’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왔다면, 깨어나기 전에는 실제로 누군가에게서 거절당하고, 관계에서 버려지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깨어나면 그 감정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창조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그 감정을 직면하고 허용하면서, 그 진동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똑같은 상황은 반복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영혼 미션의 재해석이다. 깨어나기 전의 우리는 무의식적 시나리오에 따라 흘러가지만, 깨어난 이후의 우리는 그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피해자’였던 삶이 ‘창조자’의 삶으로 바뀌고, ‘고통’이었던 상황이 ‘확장’의 통로로 전환된다. 우리는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의식을 바꾼 것이다. 그러니 깨어난다는 건 곧 삶을 다시 쓰는 권한을 되찾는 일이다.


|어떤 생도 실패일 수 없다

영혼은 미션을 가지고 온다. 그러나 그 미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 재구성될 수 있는 설계다. 어떤 이는 이 생이 첫 번째 체험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수백 번의 생을 지나온 깊은 기억의 영혼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무의식 속에서 반복을 겪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 반복을 뚫고 기억을 회복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삶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영혼도 있다. 그 고통은 단순히 불행이 아니라, 그 영혼이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한 과정이다.

어떤 영혼은 끝끝내 절망만을 겪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 생의 중요한 미션일 수 있다. 그 절망조차도, 그 영혼이 기억을 회복하는 여정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로 그 경험은 다음 생, 혹은 다른 차원에서 빛의 기억으로 남아 또 다른 여정을 인도하게 된다. 영혼은 그렇게 기억하고, 누적되며, 확장된다. 그러므로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영혼이 있다면 그 또한 빛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깨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쳐도 괜찮다. 모든 여정은 완전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이어진다. 깨어 있는 영혼은 안다. 자신의 감정이 단지 개인적인 상처가 아니라, 더 큰 기억의 울림임을. 자신의 혼란이 단지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진동이 드러나는 통로임을. 그래서 그들은 이 생을 단순한 체험으로 살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을 ‘느낀다’는 차원을 넘어, 감정을 통해 ‘기억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문장을 고요히 따라가고 있는 그대가 있다면, 당신은 분명 깨어난 영혼이다.


|기억을 회복하러 온 존재

우리는 단지 체험하러 온 존재가 아니라, 체험을 통과해 기억을 회복하러 온 존재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기억은 다른 영혼들에게도 빛이 되어 흘러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타인의 인생을 바꾸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의 눈물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미션을 가지고 왔고, 서로의 여정에 작지만 깊은 울림을 건네기 위해 이곳에 함께 있다. 모두가 각자의 설계를 가지고 이 생을 선택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마라. 누군가가 조용히 사라지는 삶을 택했다면, 그것이 그 영혼의 진동이다. 누군가가 거침없이 빛나며 드러나는 삶을 산다면, 그것 또한 그 영혼의 설계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다.


모든 영혼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완전하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내 영혼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어떤 감정을 통해, 어떤 사건을 통해, 나는 무엇을 기억해내고자 하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기억의 문 앞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창조의 여정이다.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 진동을 내려놓고,

이제는 사랑으로 허용하고 선택하는 삶으로 살아가자.

그것이 깨어난 자의 미션이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다시 기억해 낸 그대는,

이제 그 미션을 의식적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랑으로 이 생을 다시 쓰기 시작한 존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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