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유

by 태연

처음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생각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다.
단지 존재로 살아 있었고, 감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세상은 곧 이름을 주고, 역할을 가르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를 주입했다. 그 의미는 말이 아닌 감정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눈빛, 아빠의 말투, 사람들의 반응. 이 모든 것들이 언어보다 먼저 우리 안에 새겨졌다.

특히 0세부터 7세까지, 우리는 세상의 모든 메시지를 비판력 없이 그대로 흡수했다. 그 시기 형성된 감정적 기억들은 곧 ‘믿음’이 되었고, 그 믿음은 지금도 생각의 뿌리로 작동하고 있다.

생각은 단지 떠오르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내가 어릴 때 배운 믿음들을 지키기 위한 자동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나는 조용히 있어야 안전해.'
'나는 도움이 되어야 사랑받아.'
'나는 완벽해야 인정받을 수 있어.'
이런 믿음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면, 생각은 그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지금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 선택은 나에게 안전할까?', '이 행동은 비난받지 않을까?' 이런 식의 생각은 모두
내가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정체성의 경계를 보호하려는 마음의 반사작용이다.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누구(무엇)가 실행하고 있을까?

그 중심에는 에고가 있다.

에고는 내가 이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자아’다.

“나는 ○○이다.”

“나는 이런 성격이고, 이런 과거를 가졌고, 이런 미래를 원한다.”

이 모든 자기 서사가 바로 에고를 구성하는 골격이다. 그런데 이 에고는 실체가 아니다. 진짜 ‘나’가 아니기 때문에 늘 생각을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유지하려 한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사람들이 날 좋아할까?', '이건 내 탓일까?' 이런 생각은 모두 에고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작동시키는 보호 메커니즘이다. 생각은 그 에고의 연장선이고, 그 에고는 믿음의 저장소인 마음 프로그램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머릿속의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가 망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정교하게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이 캐릭터로 살아남기 위한 반복적 가상훈련이자, 나라는 허상을 유지하기 위한 에고의 자가방어 장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스템을 ‘처음’ 설계한 이는 누구일까?

바로 진짜 나,

한계 없는 의식으로서의 참된 나다.

왜 그렇게 했는가?
단 하나의 이유, 나 아닌 것을 체험함으로써 진짜 나를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 게임은 실수도, 잘못도 아니었다. 에고도, 마음도, 생각도 모두 의식의 무한한 실험이자, 귀환의 설계도였던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을 위한 망각이었고, 진실을 위한 우회였다. 생각이 고통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처음엔 단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 절실한 갈망이 우리를 파고들게 한다.
왜 이렇게 괴로운가, 왜 이 생각에 나는 붙잡혀 있는가. 그렇게 묻고 또 묻다가, 마침내 닿게 되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 순간부터 생각은 중심이 되지 않는다. 생각은 여전히 떠오르지만, 더 이상 나를 대표하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는 존재로, 고요히 물러나 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말이 아닌 감각으로 나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생각이 아니구나. 나는 에고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이야기도 아니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 너머의 나였구나.”
그 깨달음의 순간,
비로소
머릿속은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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