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고백보다, 이해의 눈빛 속에 있었다.
그때 나는 슬펐다.
사랑이란 믿음의 이름 아래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만의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는 걸 그제야 선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말의 끝이 조금씩 엉키고, 눈빛 속에 설명할 수 없는 파동이 일었다.
그건 분노를 부르는 이상함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가 서서히 식어가는 낯선 냉기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미묘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끝이 아닌 변화를 예고하는 온도,
사랑이 다른 모양으로 숨을 고르는 듯한.
나는 애써 묻지 않았다.
그의 삶엔 그만의 시간이 있고, 그의 선택엔 그만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제는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랑이란, 진실을 캐묻는 게 아니라
그가 침묵할 자유까지 품는 일임을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와 수용 사이엔 언제나 미세한 틈이 있다. 세상에는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눈빛의 미세한 흔들림, 가벼워진 말투, 무심히 흘린 단어의 방향 같은 것들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미세한 징후들을 본능적으로 읽고 있었고,
그리고 그 순간, 어쩐지 내 안의 무언가가 천천히 깨지고 있었다.
화가 나진 않았다.
대신 아주 잔잔한 슬픔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그건 ‘배신’의 슬픔이 아니라,
'끝내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진실할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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