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언어는 늘 차갑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 닿는 순간
피와 숨결의 온도로 바뀐다.
그 따뜻한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묻는다.
어디까지가 책임감일까.
그 질문은 유리창에 묻은 손자국처럼 오래 남아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닦아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자국처럼, 나는 늘 책임이라는 단어를 손끝에 묻히고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키는 사람으로,
누군가가 비틀거리면 내 어깨를 비우고,
누군가가 슬퍼하면 내 숨을 줄여 그들의 호흡을 맞추고,
누군가가 떠나면 그 빈자리를 내 몸의 일부처럼 여기며 채워야 한다고 믿었다.
책임감은 오래도록 내게 생존의 의무처럼 자리해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이해관계, 증명할 수 없는 사랑,
되돌릴 수 없는 상처들이 모두 이 단어 아래 엉켜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책임감에 집착했을까.
그게 집착인지도 몰랐으면서.
책임감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마도 그 시작은 아주 오래된 순간일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던졌던 “네가 잘해야 한다”, “네가 챙겨야 한다”, “네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들이 어린 시절의 내 심장에 작은 못처럼 박혀 철심이 되어버렸던 게 아닐까.
나는 그 철심을 뽑아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한 번도 그 철심을 ‘나’의 일부가 아님을 의심해보지 않았다. 그건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착각하며 그 무게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 철심은 ‘책임’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나를 잃을까 봐,
사랑을 잃을까 봐,
남겨질까 봐,
버림받을까 봐.
책임이라는 이름은 단단해 보이니까, 그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이 스스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오랫동안 그 철심을 꽉 움켜쥐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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