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려 했던 순간일수록
빛이 먼저 눌어붙는다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남긴 온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밤의 가장 깊은 층에서
아직도 네 이름을 불러낸다
소리가 아니라
그림자의 숨결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냈다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조용한 새벽
다시 돌아와 내 손등을 스치면,
나는 멈춰 선다
바람이 지난 자리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선명한 흔적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 오래 머문다는 건
그것이
나의 한 조각이었다는 뜻
사라짐의 표면 아래
여전히 숨을 쉬는 진실,
잊히기보다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어떤 감정
무엇이든 완전히 떠난 적은 없다
떠난 것들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곳에 가서
나를 대신해 살아 있다
빛과 그림자가 엇갈리는 순간마다
그 이름은 다시 피어나
하루를 아주 느리게 물들인다
사라지는 것들도
사라지지 않은 채
우리 안의 다른 방에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그리움이란
지속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방식의
아주 긴 파동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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